애플·인텔 등 주요 고객사, 전략 수정으로 반도체 주문량 확 줄여…“삼성전자, 시간 벌었다”
반도체 비메모리 중 하나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것은 초미세 공정인 3나노(nm, 1nm는 10억분의 1m) 시장을 어떤 기업이 선점할지 여부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1위 기업인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이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최근까지는 TSMC가 승기를 잡는 분위기였다. 삼성전자가 TSMC를 제치고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했지만 글로벌 주요 고객사들이 TSMC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TSMC가 당초 9월 예정인 3나노 양산 계획을 재차 연기했다. 주요 고객사로 알려진 애플과 인텔 등이 3나노 주문량을 줄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기회를 잡아 3나노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오고 있다. 이 승부는 결국 ‘수율 ’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전략 수정한 애플과 인텔11월 10일 대만경제일보·연합신문망(UDN) 등 현지 외신에 따르면 최근 TSMC는 주요 고객사가 3나노 주문을 취소하면서 3나노 생산량을 크게 줄였다. 이에 따라 웨이퍼(반도체 집적 회로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기판)와 장비, 그 외 소모품 등 주문도 최대 50% 감소했다.
TSMC 주요 고객들은 3분기 말부터 주문량을 줄였고 올해 4분기와 내년 1분기에도 주문량을 조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TSMC는 올해 연말까지 3나노 공정에서 월 4만4000장을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주문량이 급감해 월 1만 장 생산에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
주된 원인은 3나노 공정의 주요 고객사인 애플과 인텔의 전략 수정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애플은 당초 연내 M2 칩을 탑재한 맥북 프로 14·16인치를 출시할 계획이었지만 시장 수요가 많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출시 시기를 내년 1분기로 미뤘다는 관측이다.
UDN은 “업계 애널리스트들은 고객사인 애플과 인텔이 주문을 미루고 있는 것이라는 시각”이라며 “이에 따라 TSMC가 올해는 M2 칩의 대량 생산을 지원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인텔은 자체 기술의 한계로 새로운 플랫폼 개발을 최소 1년 이상 지연시킬 수 있고 이로 인해 TSMC의 생산량이 조정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밖에 TSMC의 6나노와 7나노 공정 가동률도 스마트폰 수요 부진으로 하락했다. 미디어텍·엔비디아·AMD 등 주요 고객사들이 3분기부터 주문을 줄인 영향이다.
더 큰 문제는 TSMC가 예정된 양산 시기도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TSMC는 공식 홈페이지 내 기술 설명 카테고리에서 “기술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대량 생산은 올 하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초 TSMC는 3분기(9월)부터 3나노 공정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었지만 수율(전체 제품 가운데 결함이 없는 합격품 비율)이 개선되지 않아 양산을 미루고 있다. 수율은 특정 공정에서 ‘불량률’을 얼마나 낮췄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초도 양산에선 수율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수율을 끌어올려야 생산성이 향상되고 수익성도 개선할 수 있다.
TSMC는 연내 양산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TSMC는 10월 개최한 기업 설명회에서 기대 수준으로 3나노 공정 수율을 끌어올린 만큼 4분기에는 대량 양산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2020년 5나노 초도 양산 당시 매출 기여도와 비교할 때 내년 3나노 매출 기여도는 더 높을 것”이라며 “내년 3나노 매출 점유율은 한 자릿수 중반 정도 나올 것으로 예측한다”고 밝혔다. ‘초미세화’ 경쟁하는 삼성에 ‘득’ 되려면관심은 ‘삼성전자’에 쏠리고 있다. TSMC와 초미세화 경쟁에 나서는 삼성전자가 3나노 시장에서 반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업황 악화로 인해 삼성전자 역시 주문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대만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매출 기준)은 올해 2분기 53.4%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점유율 16.5%로 2위를 기록했지만 양 사의 격차는 크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점유율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만년 2위’에 머물러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업계는 신뢰가 중요한 곳”이라며 “이전의 거래로 쌓아 온 신뢰가 다음 거래로 이어지기 때문에 파운드리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가 1위와의 격차를 좁히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TSMC보다 빠르게 3나노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GAA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양산을 시작했다. GAA는 반도체를 구성하는 트랜지스터(반도체 소자)에서 전류가 흐르는 채널 4개면을 게이트가 둘러싸는 형태다. TSMC가 11월 내에 양산을 시작한다고 해도 삼성전자가 5개월 더 빠른 셈이다.
9월까지만 해도 시장에서는 TSMC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했다. 양산 시점은 늦어도 수율 면에서는 TSMC가 앞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TSMC가 애플·인텔·퀄컴·미디어텍·엔비디아·브로드컴·AMD 등 대형 고객사를 먼저 확보했다고 보도되면서 3나노 시장도 선도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TSMC가 3나노 양산을 지속 연기하고 최근에는 고객사의 주문량까지 급감하면서 이미 양산에 나선 삼성전자가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가 필요한 시점에 양산하지 못한다면 삼성전자에도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3나노 공정 개선도 함께 진행 중이다. 2024년에는 3나노 GAA 2세대 공정 양산을 시도할 방침이다. 2세대 3나노 공정은 같은 기준으로 전력 50% 절감, 성능 30% 향상, 면적 35% 축소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부정적인 의견도 공존한다. 삼성전자가 단시간 내 수율을 개선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이다.
그간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낮은 수율은 꾸준히 문제로 꼽혀 왔다. 4나노 공정 수율은 올해 초까지 30~40% 수준에서 머물렀지만 최근 50%대까지 개선했다고 알려졌다.
반면 TSMC 4나노 공정 수율은 70% 이상이고 3나노 수율은 80%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TSMC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수율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 부분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한 시장 전반이 어렵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반도체 전문 업체 트렌드포스는 “전자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가 약화하면서 재고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며 “파운드리도 그 영향을 받아 올해 2분기 상위 10개 파운드리 업체의 분기 성장률은 3.9%로 다소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올해 1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8.2% 성장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점유율 과반을 확보한 독보적 1위 업체의 주문량 급감은 결국 업황 약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삼성전자 역시 주문량 감소를 피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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