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효율성 증명된 유일한 저탄소 전력 생산 방식…기존 단점 보완한 ‘원자력 배터리’
[FuturePlay's Signal]2122년 인류가 살아남아 위인전을 남긴다면 그 인물 중 한 명은 분명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일 것이다. 사업가로서의 엄청난 재능과 미래를 보는 혜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만 같은 호기심과 지식은 필자와 같은 관찰하는 사람으로서는 매번 놀라운 일이다.
물론 2021년 이혼 과정에서 알려진 것과 같이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 실패했고 제프리 앱스타인 게이트에 연루돼 있어 개인의 도덕성이 의심되지만 어쨌든 전 인류 차원에서 게이츠 창업자가 장시간 동안 세계 최고 부자였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게이츠 창업자의 인생과 미래관 등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하나 있다. 넷플릭스의 ‘인사이드 빌게이츠(Inside Bill’s Brain)’다. 제삼국의 식수 공급 문제, 새로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에 대한 대응, 기후 변화 등 인류가 풀어야 할 다수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019년 이 다큐를 보면서 처음 접한 개념이 소형 원자로(SMR : Small Modular Reactor)다.
‘원자력’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
일단 원자로라는 단어에서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갖는다. 그간 원전과 관련해 너무 무시무시한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동일본 대지진 등 너무나도 아픈 상처다. 피폭은 수십, 수백년간 해당 지역의 생태계를 초토화시킨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EU), 심지어 미국에서도 탈원전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2050년까지 92기의 원전을 모두 폐쇄해야 한다. 한국도 지난 정권에서 원전 비율을 현 30%에서 2030년 18%까지 낮추는 탈원전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필자는 ‘원자력이 사람이라면 꽤나 억울하겠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비행기·자동차 콤플렉스와 비슷하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망자는 역사적으로 수천 명이다. 화력 발전(석탄 연료) 관련 사망자는 매년 80만 명이 넘는다. 원자력이 안전하지 않지만 더 위험한 옵션을 우리가 훨씬 가까이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도 안 된다. 아직도 석탄 발전이 전 세계 전기 생산의 40% 가까이를 차지한다. 사실 원전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옵션이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에너지 부족 문제와 기후 변화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기후 변화를 의식하지 않은 채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는 시대다.
다행히도 풍력·태양광 발전의 단가가 점점 낮아지고 있지만 한국 기준으로 신재생에너지는 원자력에 비해 5배 정도 높은 단가를 보인다. 비용뿐만 아니라 실효성에서도 태양광과 풍력은 완전한 해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양광은 초원이나 숲을 훼손하고 만드는 발전소의 친환경성, 풍력은 한국 바람의 풍질 대비 효율 등 설명돼야 할 영역이다.
이런 가운데 2019년 기준 전체 전기 생산량에서 화석 연료 기반이 60% 가까이 차지한다. 우리가 말하는 풍력·태양광·지열·파력 등 대체 에너지는 7% 정도, 원자력은 10% 정도다. 여기에서 화석 연료 기반을 제외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 세계 저탄소 발전의 29%를, 미국 저탄소 발전의 55%를 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다. 실제로 비용 효율과 실효성이 증명된 저탄소 전력 생산 방식은 원자력이 거의 유일하다.
SMR 스타트업과 협업 늘려 가는 한국 대기업들
만약 원자력의 단점을 거의 모두 보완한 새로운 원자력 발전이 가능하다면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금의 원전의 기본 콘셉트는 근 60년간 거의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안전성에 엄청나게 개선돼 왔지만 근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
SMR은 일종의 원자력 배터리처럼 작동한다. 한 번의 연료 충전으로 10년간 계속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존의 원전은 안정화를 위해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데 비해 SMR은 촛불처럼 천천히 연료를 소진하도록 설계돼 안정적으로 장시간 운영할 수 있다. 10년의 생애 이후 연료를 충전할 수 있고 또는 전체를 폐기할 수 있다. 전체를 폐기하더라도 피폭의 위험이 기존 원전의 10% 미만이다. 기존의 원전은 ‘초대형 공사 프로젝트’가 필수다. 일반적으로 6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혐오 시설로 인식돼 부지 선정 등에 큰 제약을 받는다. 반면 SMR은 공장에서 ‘제조’된다. 대략 트럭으로 이동이 가능한 사이즈로 어디든 전기가 필요한 곳에 쉽게 설치할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이는 모두 SMR을 만드는 이들의 주장에서 따온 내용이다.
분야가 분야인 만큼 엄청난 투자와 두뇌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삼성물산·두산에너빌리티·GS에너지 등의 대기업들이 도전하고 있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이미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인증 받은 100MW 규모의 SMART라는 모델을 가지고 있다.
역시 스타트업의 도전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게이츠 창업자가 주도하고 있는 테라 파워(Terra Power)가 가장 눈에 띈다. 올해 8월 7억5000만 달러를 투자 받으며 한 번 더 주목받았다. 이때 투자를 주도한 곳이 (주)SK와 SK이노베이션이다.
또 눈에 띄는 곳은 미국의 엑스에너지(X-Energy)다. 이곳 역시 두산중공업이 원자로 설계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관련 스타트업과 협업을 늘려 가는 한국 대기업의 행보가 도드라져 기분 좋으면서도 ‘스타트업으로서 이런 큰 규모의 실험을 이루기 어려운 우리 토양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는다.
안지윤 퓨처플레이 전략기획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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