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산업별 핵심 키워드 반도체는 ‘공급 축소’, 배터리는 ‘유럽 전력비’

세계 경제에 놓인 ‘7가지 덫’…2023 산업 대전망
‘인플레이션은 언제 잡힐까’, ‘세계 주가와 집값은 어떻게 될까’, ‘저성장 속에서도 성장할 산업은 무엇일까.’

2023년 토끼의 해를 앞두고 각종 예측이 또다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나 믿어야 할 것인지’를 놓고 많은 투자자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 한경무크는 저성장 시대에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투자자들을 위한 지침서 ‘2023 산업 대전망’을 발간했다. 위기를 거친 후 살아남을 진짜 승자에 대한 판단을 돕는다.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과 한경비즈니스, 각 업종 애널리스트들이 세계 경제를 둘러싼 난제들과 30개 산업의 시장 동향과 핵심 기업 분석을 담았다. 세계 경제를 둘러싼 ‘7가지 덫’먼저 세계 경제를 둘러싼 ‘7가지 덫’을 파헤쳤다. 한상춘 위원은 내년 가장 큰 고비가 ‘인플레 덫’이라고 말한다. 각국의 물가는 30~40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면서 세계는 인플레이션 몸살을 앓고 있다. 2021년 1분기까지만 하더라도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암울했던 세계 경제가 같은 해 4월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자 갑작스럽게 인플레이션 논쟁이 불거졌다. 미국 중앙은행(Fed)조차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봤던 인플레이션은 지난 1년 동안 강도가 강해져 세계 경제의 최대 난제로 부상했다.

이 책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벌어진 인플레이션 현상을 이론적 배경에 따라 설명하고 향후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세계가 직면한 둘째 고비는 ‘저성장의 덫’이다. 세계 양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저성장의 덫’에 빠지고 있다. 미국 경제는 2022년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1.6%로 급락한 데 이어 2분기 성장률도 마이너스 0.6%에 그쳤다. 지난 9월 Fed가 내놓은 수정 전망에서는 연간 성장률을 0.2%로 내다봐 사실상 제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의 경제 상황은 더하다. 2021년 1분기 18.3%에 달했던 성장률이 2022년 1분기에는 4.8%로 급락한 데 이어 경제 봉쇄 조치가 집중된 2분기에는 0.4%로 추락했다.

셋째, 경기가 침체되면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 잡기에 나서더라도 금리 인상 등을 쉽게 추진하지 못하는 ‘출구 전략의 덫’에 빠진다. 특히 인플레 진단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는 Fed는 뒤늦게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지만 또 하나의 목표인 고용을 희생시킬 우려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다음은 인플레이션 안정에 최우선을 둔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림에 따라 세계 경제는 ‘부채의 덫’에 빠지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총부채는 2007년 113조 달러에서 2022년 3분기 말에는 250조 달러를 넘어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제가 부채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복합 불황’에 빠질 확률이 높다.

환율의 덫도 쳐져 있다. 각국은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확률이 낮아지자 다른 국가에 전가하기 위해 자국의 통화 가치를 적극적으로 조절해 보지만 ‘환율의 덫’에 빠져 오히려 스태그플레이션을 미궁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1930년대 같은 대공황을 우려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인구 절벽도 중요한 문제다. 세계 인구는 20세기 이후 120년 동안 지속돼 온 팽창 시대가 마무리되고 있다. 인구 증가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빈국만 높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 경제포럼(WEF)이 2015년부터 단골 메뉴로 다뤄 오고 있는 ‘디스토피아의 덫’이다. 디스토피아, 그 자체가 불확실성을 내포해 위험이 상수항이 되는 2020년대 남은 기간에 모든 경제 주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최고 덕목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경무크 ‘2023 산업 대전망’은 세계 경제가 당면한 테일리스크, 일곱 가지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1980년대 초 스태그플래이션과 2008년 금융 위기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SF 복합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오징어 게임’을 닮은 역환율 전쟁2023년 벌어질 역환율 전쟁은 ‘오징어 게임’에 비유했다. 감독은 Fed와 미국 재무부, 주연은 달러화, 조연은 원화를 비롯한 각국의 통화, 시나리오 구성은 서바이벌 데스 게임이다. 상대방의 최후 저지선이 뚫리면 환투기 세력의 집중 타깃이 돼 추락한다.

책 속에서 첫 무대에 오른 게임 참가자는 달러화와 엔화다. 결과는 관객이 긴장할 틈도 없이 너무 빨리, 너무 싱겁게 끝나 버렸다. 엔·달러 환율은 1차 저지선인 구로다 라인(125엔), 2차 저지선인 미스터 엔 라인(130엔)이 잇달아 뚫린 데 이어 최후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플라자 라인(142엔)마저 무너졌다. 엔화가 추락한 데는 정치, 행정 규제, 국가 채무, 젠더, 글로벌 분야에서 일본이 5대 선진국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함정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던 국가가 중진국으로 추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을 아랑곳하지 않은 일본 은행의 울트라 금융 완화 정책 고집도 패배 요인으로 가세하고 있다.

달러화의 다음 상대인 유로화도 최후 저지선인 ‘패러티 라인(1유로=1달러)’이 힘없이 무너졌다. 유로화 가치는 2016년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당시 한 차례 붕괴될 위험에 몰린 적이 있지만 2021년 말까지는 유지됐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피해가 집중되면서 유럽 경제가 침체되자 맥없이 붕괴됐다.

영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던 치욕적인 사태가 발생한 이후 50년이 되는 2022년 9월을 맞아 파운드화가 또다시 무너졌다. 파운드화는 엘리자베스 트러스 정부의 대규모 감세와 재정 지출로 영국발 금융 위기가 우려되고 있는 만큼 최후 저지선인 ‘1파운드=1달러’선이 뚫리면서 달러화에 완전히 먹힐 가능성이 높다.

모든 통화 중 가장 늦게까지 버틸 것으로 여겨졌던 위안화도 ‘포치라인’이라고 부르는 달러당 0.7위안 선이 무너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시황제 야망이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 선수인 원화. ‘캉드시 라인(1달러=1400원)’을 넘은 원·달러 환율 역시 2023년에도 안정을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론을 맺어 보자. 역환율 전쟁에서 벌어지는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는 달러화가 될 것인가. 지금까지 가장 잘 버티는 통화가 러시아 루블화라는 점이 미국으로서는 편하지 않은 대목이다. 물가를 잡기 위한 달러 강세는 대표적인 근린 궁핍화 정책으로 2023년에는 피해를 당한 국가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반격하는 부메랑 효과도 예상된다.
내년 반도체·배터리 전망은?30가지 산업에 대한 시장 전망과 핵심 기업 분석도 담겼다. ‘2023 산업 대전망’은 내년 반도체 산업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다. “역대급 수요 급감을 역대급 공급 축소로 방어한다.”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다. 글로벌 거시 경제가 좋으면 반도체 수요가 늘면서 호황기를 맞이하고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 반도체 수요가 줄면서 메모리 하락 사이클이 진행된다. 주문 축소→재고 증가→가격 하락의 악순환이다.

이번 사이클은 지난 3년간 상승 사이클이었던 만큼 재고 부담도 매우 높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각 생산 업체들은 과거 대비 빠르게 공급 및 설비 투자(CAPEX) 축소 전략을 검토 중이다. 메모리 사이클 회복 시그널을 읽으려면 2023년 1분기 주문 확대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2차전지 산업은 중·장기 성장성이 확고하다는 전망이 담겼다. 글로벌 전기차 침투율이 여전히 10% 내외인 만큼 향후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른 2차전지 산업의 실적 성장성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유럽 전기요금 상승과 겨울철 추가 상승 우려는 향후 유럽 전기차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 내 전력 도매 가격은 2020년 1월 대비 788% 올랐는데 이는 같은 기간 고급 휘발유 가격 상승률 29% 대비 759%포인트 높은 수치다. 한국의 배터리 3사는 전기차 배터리 매출 중 유럽용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향후 실적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럽 전기요금 상승에 따른 타격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유럽 전기요금 상승의 근본적 원인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 수순으로 가는 시그널이 포착될 때 유럽발 매출 비율이 높고 유럽 내 대규모 공장을 가동 중인 한국의 배터리 공급망 주가가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자동차 산업은 내년 공급망 차질과 물류난이 완화되면서 고성장에 시동을 건다. 2023년 다수의 전기차 모델이 출시되면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30% 성장하고 전기차 비율은 14%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주택 시장은 가파른 금리 인상과 공사비 증가에 따라 전반적인 사업 비용이 증가하면서 2023년에도 냉각기를 벗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진단했다. 특히 2022년 6월을 기점으로 악성 재고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증가 추세다. 반면 해외 업황은 회복세다. 중동을 중심으로 수주 파이프라인이 건축, 인프라 부문으로 확대되고 있고 가스 부문과 대형 석유화학 프로젝트까지 이어지고 있다.

‘2023 산업 대전망’은 이 밖에 30개 산업에 대한 꼼꼼한 시장 동향과 핵심 기업 분석, 알짜배기 투자 정보를 담았다. 필진은 “위기를 거치고 나면 진짜 승자가 판가름 난다”며 “전망을 통해 기회를 포착하고 가능성에 대비하라”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