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펀더멘털 대비 신용 리스크 고려한 통화 긴축 신중론 부각
[머니 인사이트] 올해는 금융 시장 역사에 남을 한 해가 될 것이다. 펀더멘털은 2020년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당시가 어려웠지만 강력한 유동성 공급 조치로 금융 시장은 2021년 말까지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올해 들어 반대 급부로 고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급격히 진행된 긴축 정책은 위험 자산, 안전 자산 할 것 없이 수익성을 악화시켰다.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두 자릿수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험은 대공황 이후 처음이다. 투자자들에게는 최악의 한 해였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와의 사투와 긴축 정책에 대한 공포는 아직도 남아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과도한 긴축으로 안전 자산인 채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제 글로벌 평균 무위험 수익률은 3%를 넘어섰다.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고물가 부담 극복하기일시적일 것으로 판단했던 물가 상승은 1980년 오일쇼크 이후 역사적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은 6월 전년 대비 9%에서 정점을 확인한 듯 보이지만 이후에도 8%대에서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에너지와 전기요금 등 공급 물가 충격이 큰 유럽은 아직 전년 대비 10%대로 상승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 기관들은 현재 물가 패턴이 자칫 1980년대와 같이 통제되지 않은 경로를 갈 수 있는 위험을 가늠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부터 제시했던 물가 전망 경로는 올해 들어 매우 가파른 경로로 상향 조정됐고 정점을 확인했다고 하기에는 ‘금리는 높고 길게(higher for longer)’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락 경로도 자신이 없다. 올해 3분기 정도에 물가가 정점을 타진하면서 통화 정책 피벗(pivot)을 기대하며 금리가 반락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올해 물가 전망조차 상승이 끝나지 않았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물가 전망을 예단(forward)하지 않고 신중하게(backward) 바라보겠다고 한 것은 추세 물가의 반전 정도를 확인하겠다는 의미다.
사실 2023년 1분기까지 물가 안정 범위 상단으로 여겨지는 4%대까지 반락을 자신하지 못하는 가운데 실제 물가에 선행하는 시장 거래 기대 인플레이션인 기대 인플레이션(BEI)조차 다시 2% 중반을 넘어섰다. 적어도 2023년 1분기까지 고물가 부담에서 통화 긴축 부담, 채권·금융 시장 위축 부담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물가 전망 정보는 하락 방향을 비교적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긴축 정책에 따른 유동성 축소로 인한 인플레이션 총알이 줄어들고 있고 높은 임금 상승세는 기업들이 지지하기 어려워 향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조사가 늘고 있다. 주택 경기 둔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서비스 물가 상승을 주도하는 주거비 상승 부담도 정점은 지난 것으로 평가된다. 재화 중 식품과 신차는 재고가 늘기 시작하면서 상승세가 이미 꺾인 상황이다. 이를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운임이 2021년 수준보다 낮아지면서 공급망 충격 우려도 낮아졌다. 한 번 붙은 인플레이션의 불길을 잡기 위해 과도한 대응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이제는 그 열기를 견딜 수 있는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
물가 상승을 예측하지 못한 금융 시장과 통화 정책 당국의 올해 행보는 ‘고난의 행군’ 그 자체였다. Fed는 매 분기 제시하는 점도표에서 급격한 상향 조정을 실시해야 할 정도로 정책 신뢰성을 저버렸다. 심지어 1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파월 의장은 “지난 9월 제시한 전망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는 매파 발언을 내놓았다.
Fed의 통화 정책 불확실성이 상방쪽인 것은 현실이지만 주요 투자은행(IB)들의 전망이 5% 내외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부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국 연방 금리가 5% 내외 수준이 적정 한계 수준이라는 것을 추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채권 시장의 기대도 현 수준에서 추가 반영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장은 금리 인상이 종료된 이후 통화 정책 완화로의 전환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추정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5~6개월이면 기조가 전환됐다. 양적 축소와 같은 직접 유동성 환수가 이전과 달리 안전 자산 선호에 따른 금리 상승을 억제한 것과 달리 금리를 높였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고물가와 고강도 긴축 정책의 여파로 금융 시장이 먼저 타격을 받았지만 2023년은 실물 경제 둔화 우려가 커 보인다. 주요 기관들의 글로벌·주요국 성장 전망은 침체까지는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이 0% 내외의 부진한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델리티가 추정하는 글로벌 경기 사이클은 대부분 부진 영역에 진입했다.
이번 고물가 국면을 가장 잘 예측한 것으로 알려진 전 미국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현재 경기 연착륙이 아닌 경착륙 전망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Fed의 실기를 비판하던 쪽에서 최근 들어 ‘5%대 연방 금리 기대를 반영한 상황이라면 충분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긴축 정책의 피로도가 정점에 이른 것을 암시했다.
기업 활동 위축→타이트한 고용 여건의 완화→소비 둔화의 실물 경기 연결고리에 실물 자산의 핵심인 부동산 경기가 글로벌하게 위축되는 부분도 ‘행복하지 않은 경기’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호주와 같은 일부 국가는 벌써 부동산 시장 위축과 과도한 변동 금리 대출 부담으로 통화 긴축에 신중해야 할 상황이 됐다.안전 자산 지위 회복물가는 예단해서는 안 되지만 하향 기조가 이어지고 통화 정책이 임계치 수준에서 추가적인 부담이 없다면 이제 정책의 초점은 경기 둔화 혹은 침체에 맞춰져야 한다. 2023년 유동성의 여건은 다시 조금씩 풀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고 높아진 이자 수익을 기반으로 채권 시장의 안정을 도모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채권 시장이 이렇게 손실을 기록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인플레이션 부담과 위험 자산(주식)이 피벗 기대에 연동돼 움직인다는 점에서 전향적인 정책 기조 전환을 기대하기에는 이르다. 과도한 Fed의 긴축은 물가 기대를 통제하고 과도했던 위험 추구 현상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금융 시장에 안전 자산인 국채마저 기피하게 할 정도로 과도했다.
물가 예측 실패→과도한 긴축→달러 강세 유발로 외국인들이 미국채 매수를 꺼리게 됐다. 은행들의 건전성 규제(SLR)는 미국 내 채권 매수를 줄이도록 만들어 금융 시장에 피난처가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2023년 1분기에 글로벌 물가 안정과 경기 둔화가 명확해지기 전까지 통화 정책 기대 전환은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파월 의장도 강조했던 선도 금리에 반영된 Fed의 정책 여력은 이미 대부분 소진됐다. 연방 금리는 5% 내외에서 그 종착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금리 인상 끝에는 일드 커브(장단기 국채 수익률 곡선) 역전이 연출됐다. 미국채 10년물 금리와 연방 금리 역전 폭은 일반적으로 100bp(1bp=0.01%포인트) 정도 역전되는 것이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를 감안하고 연방 금리 5.25%를 반영해 미국채 10년 상단 4.3% 정도를 제시하고 있다. 이후 경로는 블룸버그 시나리오 분석에도 나오지만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중립 금리인 2% 중반을 향해 시장 금리는 안정 경로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리가 급등하는 경로에서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남아 있는 물가 압력과 대외 금리 차의 부담 속에 11월에도 50bp의 빅 스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수 있다. 하지만 금리는 물가와 환율의 대외 요인보다 한국의 불안 요인을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3년에도 한국의 물가는 정책 기관들이 3% 중·후반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고 현재 원화 약세로 내년 1분기까지 전년 대비 5%대를 기록할 위험도 존재한다. 하지만 성장 둔화 우려가 높아져 기존 2%대 예상보다 낮은 1% 중·후반(메리츠증권 1.7%) 정도로 위험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보험사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상환까지 빠른 통화 긴축의 부작용이 한국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아직은 물가 안정과 가계 부채 등의 통제를 위해 긴축 기조를 섣불리 선회하면 안 되겠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한 단계라는 판단이다.
긴축 재정으로 2023년 국고채 발행 부담이 큰 폭으로 줄어들지만 단기 자금 시장 위축과 보험사들의 자산 감소 같은 수요 약화 요인이 부담이다. 이 때문에 현재 큰 틀의 통화 정책은 2023년 1분기까지 인상 기조를 이어 가되 속도 조절과 자금 시장 충격 여부를 점검하면서 대응해야 한다.
역사적인 저금리와 완화적 통화 정책을 겪고 그 반대 급부로 급격한 긴축이 진행되는 채권 시장에 찾기 힘든 금리 변동성 구간이다. 모든 것이 적정이 있고 임계치를 감안할 때 2023년은 우선 안전 자산인 채권부터 그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
보고서 ‘2023년 전망시리즈 3 퀀트(채권): Era of Un-, 안전자산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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