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입구 앞 작은 분수 매력적…한국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역사 담겨

 이래봬도 ‘공공 도서관’입니다, 손기정문화도서관 [MZ 공간]
중구에는 손기정 체육공원이 있다. 누군가는 달리기 위해, 누군가는 축구를 하기 위해 찾는 체육공원 구석에 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도서관이 있다. 작은 정자가 있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이곳은 어디에든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공간에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정겨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래봬도 ‘공공 도서관’입니다, 손기정문화도서관 [MZ 공간]
물결치는 책장
손기정문화도서관은 작년 11월 기존의 작은 도서관을 3배 확장해 공공 도서관으로 승격시켰다. 걸어서 3분이면 서울로 7017에 닿을 수 있고 옛 서울역사 옥상으로 바로 연결되는 공중보행길로도 쉽게 갈 수 있어 높은 접근성을 자랑한다.

손기정문화도서관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벽은 담쟁이덩굴로 감싸져 있어서 그럴까. 어쩐지 시골에 온 듯한 한적함이 느껴진다. 오래된 건물 분위기와 달리 도서관 내부는 가히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현대적’이라는 것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 사이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진을 찍기 좋은 스폿은 도서관 입구 앞 작은 분수다. 이름은 ‘물의 정원’이다. 작은 수영장을 가져다 놓은 듯한 분수에는 사람의 목소리도, 음악 소리도 없이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분수마저도 이곳에서는 자연의 일부라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다. 물의 정원과 통유리 사이에 작은 복도가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곳에 앉아 독서를 즐겨 보길 권한다. 선선한 바람과 분수의 작은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잔물결)이 공간이 주는 위로를 경험할 수 있다.

1층 라운지는 카페로 만들어졌지만 현재 운영을 잠시 멈춘 상태다. 그 대신 음악회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니 사전에 정보를 확인해 본 후 방문해 보길 권한다. 벽면에는 미디월이 설치돼 있어 영화 감상도 할 수 있고 여러 정기 간행물도 비치돼 있다. 또한 북 큐레이션 코너에는 손기정문화도서관의 역사와 이달의 책이 전시돼 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주민들에게 도서관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친절함이 느껴진다.

2층으로 올라가면 공공 도서관답게 벽마다 가득 채워진 책장을 만날 수 있다. 책장은 고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코스를 표현하려고 했을까. 가만히 보면 물의 정원의 물결이 커져 책장에 마련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래봬도 ‘공공 도서관’입니다, 손기정문화도서관 [MZ 공간]
공공 도서관의 이미지 탈피

도서관은 특유의 냄새가 있다. 오래된 종이의 냄새와 함께 오랜 세월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냄새가 배어 있다고나 할까. 그걸 인문(人文)의 냄새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 냄새를 찾아 오랜 도서관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 어린이 도서관에서 맡았던, 수험생 시절 지긋지긋하게 맡았던 그 향수를 찾는 발걸음 말이다.

사실 공공 도서관이라고 하면 응당 갖고 있는 이미지가 있다. 넓은 나무 책상에 다닥다닥 붙어 앉거나 책상마다 칸막이가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손기정문화도서관은 오히려 북카페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모든 자리가 자유분방하다. 캠핑 의자와 책상을 가져와 캠핑장 분위기를 연출한 캠핑석, 몸을 한껏 뉘일 수 있는 안락한 소파,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1인용 책상과 의자 등 공공 도서관이라면 가져야 할 특유의 이미지가 손기정문화도서관에는 남아 있지 않다.

공공 도서관은 아주 오래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로마시대에는 공공 도서관은 유독 공중목욕탕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중목욕탕과 공공 도서관이 그리 잘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목욕탕이 놀이터로 쓰였다는 것으로 볼 때 책 읽기는 무거운 짐이 아닌 하나의 유흥거리였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손기정문화도서관은 책 읽기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하나의 문화로서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손기정을 기리며
손기정문화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손기정 체육공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손기정 체육공원은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고 손기정 선수(1912∼2002년)의 마라톤 정신을 기리기 위해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탄생한 체육공원이다. 체육공원 근처에는 ‘러닝러닝센터’가 육상 꿈나무들을 위한 거점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러닝 트랙과 라운지를 비롯해 카페·라커룸·샤워실 등을 갖췄다.

손기정 선수와 체육관은 어딘가 당연한 듯한 연결고리지만 도서관이라니…. 손기정 선수를 떠올릴 때 책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라도 공통점을 찾아보면 ‘자부심’을 떠올릴 수 있다. 책은 우리에게 자부심을 선사한다. 책은 생각하는 힘을 키워 주기 때문이랄까. 매일 같이 지겹도록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인간을 머나먼 곳을 떠오르게 만든다. 머나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인권을 생각하게 하고 지구의 탄생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떠오르게 한다. 상념은 돌고 돌아 ‘나’라는 인간이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자부심과 자존감을 온전히 누리게 해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 국가 대표로 달렸다. 그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 있었고 금메달을 손에 쥐었지만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승리했다는 쾌거보다 나라를 잃었다는 슬픔, 개인의 승리보다 국가를 잃은 슬픔,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게 한다. 고 손기정 선수는 단상에 올랐을 때 가슴의 일장기를 월계수로 가렸다. 물론 수치스러웠지만 그의 우승 소식은 식민치하의 조선인들에게는 한없는 자부심을 선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책과 손기정 선수는 동떨어진 단어가 아닌가 보다.

만약 오늘 발길이 도서관으로 향한다면 읽기로 결심한 책을 찾아가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책을 찾아 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책을 향한 발걸음만으로도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마음의 양식을 쌓기 위한 한 걸음에 스스로를 칭찬해도 큰 무리는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작은 도서관의 변신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크나큰 자극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이민희 한경무크팀 기자 min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