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실종된 암호화폐의 스타들, 도망치기 바쁜 기관투자가들…‘신뢰’ 찾기 오랜 시간 걸릴 듯
[스페셜 리포트-코인시장 바닥인가 나락인가] 2022년은 암호화폐 시장에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금’이라고 불리며 화려한 시대를 열었던 암호화폐의 ‘제국’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루나 사태에 이어 FTX 사태가 연이어 암호화폐 시장을 강타했다. 암호화폐 생태계의 취약한 시스템과 도덕적 해이 등이 드러나며 그 여파는 더 커지고 있다. 암호화폐의 기축 통화로 일컬어지는 비트코인의 가격은 2년 전인 2020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놀란 투자자들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 갈수록 심화되는 조짐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등의 연쇄 파산이 현실화되고 있다. 암호화폐 시장의 존폐 위기까지 거론된다.
암호화폐 제국은 이대로 몰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섣불리 그 답을 내릴 수 없다. 오히려 지금 이 위기를 암호화폐 시장이 슬기롭게 넘어선다면 보다 건전하면서도 튼튼한 ‘디지털 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금융 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암호화폐가 투자자들에게 믿을 만한 ‘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루나 사태와 FTX 사태로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다.
불확실이 가득한 암호화폐 시장에서 확실한 대답 하나는 무너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흥망성쇠와 함께 지금의 FTX발 위기가 암호화폐 산업에 갖는 의미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키워드1 기관- 2021년 전성기 이끈 ‘기관투자가’
전 세계적으로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시작된 것은 대략 2016년 무렵부터다. 당시 비트코인은 거래량이 하루 2조원 규모에 달했고 결제 수단으로도 유용성을 인정받은 분위기였다. ‘디지털 화폐’의 가치에 주목한 개인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비트코인은 2011년 3월 처음 1달러를 넘어선 이후 2017년 1월 1000달러를 넘어섰다. 1년이 채 안 된 2017년 12월 비트코인 가격은 2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다다랐다. 1년 수익률 300%가 우습던 시절이었다.
2018년 이후 약세장을 맞아 3000달러 선까지 하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후 등락을 거듭하더니 2020년 말 1만 달러를 넘어서며 화려한 부활에 성공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인한 유동성 파티 효과 덕분이었다. 주식과 부동산 할 것 없이 자산 가치가 치솟았고 암호화폐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1년 11월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6만4000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0년 3월 비트코인 가격이 약 4900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1년 7개월 사이에 13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 역시 908억 달러에서 1조 달러를 넘어서며 14배 급증했다. 이 기간 자산 가치가 급상승한 것은 비트코인뿐만은 아니었다. 시총 2위 암호화폐인 이더리움 역시 같은 기간 개당 4700달러까지 치솟는 등 대부분의 코인 가격이 급등했다. 2017년 첫째 비트코인 호황기와 2021년 둘째 호황기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2017년 투자 열풍이 개인 투자자들의 시장 참여를 중심으로 동력을 얻었다면 2021년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가격의 급상승에는 고액 자산가와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이 컸다.
실제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거래 규모는 2019년 80조 달러에서 2021년 1671조 달러로 급증했다. 이 기간 기관투자가의 비율은 56%에서 68%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또 2021년 발간된 ‘피델리티 디지털 에셋’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조사 대상 기관투자가 중 52%가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선임연구원은 “암호화폐의 높은 수익률, 인플레이션 방어 수단 등을 목적으로 많은 기관투자가들이 암호화폐를 대체 투자의 일환으로 접근해 왔다”며 “직접적인 가상 자산 투자보다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이기는 하지만 주요 연기금들 역시 가상 자산 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등 기관투자가들의 참여로 인해 암호화폐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키워드2 해킹- 화폐로서의 위상 흔든 ‘해킹’
비트코인은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가명)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디지털 화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에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 비트코인의 첫째 블록인 제네시스 블록(genesis block)에 ‘재무장관·은행에 둘째 구제 금융 임박’이라는 문장이 기록돼 있다. 이 문장은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2009년 1월 3일 기사 제목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위기에 처한 은행들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이 야기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위기를 자초한 금융권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가 돈을 찍어 내는 상황을 비판하며 탈중앙화된 화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문구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 시스템은 국가기관이나 은행이 화폐 발행을 보증해 주지 않더라도 누구나 믿을 수 있는 화폐 시스템을 제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이 믿음과 열광은 화폐로서의 신뢰와 가치로 이어졌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지폐나 동전처럼 물리적인 형태가 존재하지 않고 검증받은 발행 기관도 없다. 태생적으로 ‘화폐’로서의 신뢰와 가치를 증명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암호화폐가 과연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비트코인이 탄생하던 순간부터 따라다녔던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시스템이다. 올해 루나 사태와 FTX 사태 이전에도 ‘화폐로서의 암호화폐’의 가능성을 뒤흔들었던 위기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2014년 마운트 곡스 해킹 사건이다. 마운트 곡스는 2010년 7월 일본 도쿄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다. 2014년 해킹 사건이 있기 전까지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8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다. 하지만 해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당시 시가로 4억500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 85만 개를 도난당했다. 이 중 75만 개의 비트코인이 마운트 곡스 이용자들이 맡긴 것이었다.
마운트 곡스는 잃어 버린 85만 개 비트코인 가운데 이후 20만 개는 찾았지만 65만 개는 되찾지 못했다. 마운트 곡스는 해킹 사건 이후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마운트 곡스는 해킹 사건 직후 블록체인 암호망이 뚫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탈중앙화 디지털 화폐의 근간을 위협하는 주장이었다. 물론 이후 밝혀진 내용은 달랐다. 2011년 마운트 곡스의 자체 개인 키가 도난을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커들이 이 데이터 파일을 복제한 뒤 거래소의 지갑을 털어 버린 것으로 판명됐다.
2016년에는 더 다오(The DAO) 해킹 사건이 있었다. 다오는 공동 목표를 가진 탈중앙화 자율 조직을 일컫는다. 더 다오는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이나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한 일종의 탈중앙화된 벤처캐피털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가격 기준으로 1억5000만 달러 상당의 이더리움이 투자 자금으로 모였다.
하지만 첫 투자를 집행하기도 전에 문제가 터졌다. 더 다오의 스마트 콘트랙트상의 치명적인 취약점으로 인해 660억원 상당의 금액이 해커의 손에 넘어갈 위험에 처했다. 다행히 사전에 설정해 놓은 이더리움 이체 유예 기간 덕분에 해킹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마운트 곡스’ 사건의 해킹 공포를 다시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키워드3 도덕성- 권도형과 SBF, 혁신을 위한 시행착오 혹은 의도된 사기?
‘마운트곡스 사건은 비극적이었지만 스스로 기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루나나 FTX는 그 반대다. 도덕성 부재다.’ FTX 사태가 불거진 이후인 11월 12일 이더리움 공동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자신의 트위터에 밝힌 의견이다.
과거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들었던 해킹 사건들은 암호화폐 시장의 리스크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취약한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이 연구됐고 시도됐다. 하지만 올해 암호화폐 시장을 강타한 루나 사태와 FTX 사태는 본질적으로 이와는 달랐다. 해킹 사건은 ‘시스템’의 문제인 반면 루나와 FTX는 ‘사람’의 문제라는 뜻이다. 지난 5월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테라와 루나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루나는 5월 초까지 시가 총액 기준으로 전 세계 암호화폐 중 8위를 기록했다. 한국 거래소에서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던 인기 종목이었다. 루나와 테라는 가격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두 암호화폐가 짝을 이루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다. 1테라(UST)는 1달러(USD)에 연동돼 있다. 1테라의 가치를 1달러에 고정하기 위해 일반적으로는 실물 담보를 활용한다. 하지만 테라는 별도 담보 없이 자매 코인인 루나를 통해 ‘차익 거래’를 유도함으로써 테라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시장에 테라가 넘쳐 1달러보다 싸지면 시장에서 테라를 회수하고 그 대신 루나를 발행해 테라의 가격을 1달러에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루나와 테라의 가격이 동반 하락할 때 생겼다. 특정 자산 가치의 하락이 연동된 다른 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죽음의 소용돌이’ 현상이 나타났다. 올해 초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시장이 위축되면서 암호화폐 가치가 일제히 하락했다. 테라와 루나 또한 그 여파를 피해 갈 수 없었다.
5월 9일 테라의 가치가 하락하며 1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이후 테라의 가격은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테라와 루나의 가격은 계속 내려갔다. 불안해진 투자자들의 ‘뱅크런’이 가속화되며 루나의 가격은 하루아침에 약 92% 폭락했다. 5월 12일 루나와 테라의 시세가 99.99% 폭락했고 다음 날인 5월 13일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루나 거래를 중단했다.
불과 6개월 만인 11월 초에 터진 FTX 사태는 루나 사태로 인해 겨울을 맞은 암호화폐 시장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었다. FTX는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다. 그런데 FTX의 계열사인 알라메다리서치를 살펴보니 자산의 상당 부분을 FTT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FTT는 FTX가 발행한 암호화폐다. 암호화폐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FTT의 가치가 하락하면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에는 큰 구멍이 뚫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1월 4일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FTX가 그동안 FTT를 동시에 매수·매도하는 방식으로 거래량을 부풀리며 가격을 높여 왔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가 FTX의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하루가 채 안 돼 이를 번복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졌고 ‘뱅크런’이 본격화됐다. 11월 11일 FTX는 미국 델라웨어 주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루나와 FTX, 암호화폐 시장을 위기에 몰아넣은 두 사태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CEO)와 샘 뱅크먼 프리드 FTX CEO다. 루나 사태가 불거지기 전 루나와 테라를 세계 10위 암호화폐로 키우는 데, 또 암호화폐 FTT를 기반으로 FTX를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로 키우는 데 이들 CEO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 CEO는 한때 ‘한국의 엘론 머스크’로 불렸다. 루나의 가격이 200원에서 14만원까지 치솟으면서 그는 암호화폐 시장의 천재 혹은 신처럼 여겨졌다. 루나-테라와 같은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의견들도 많았지만 권 CEO는 “난 가난한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는다”고 받아쳤을 정도다. FTX의 프리드 CEO 또한 한때 암호화폐 시장의 ‘워런 버핏’으로 불렸다. 그는 본명보다 SBF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FTX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글로벌 투자 기관들로부터 거액의 투자 자금을 끌어온 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블랙록, 일본 소프트뱅크, 세콰이어캐피털 등 자산 운용사는 물론 연기금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캐나다 온타리온 교직원연기금까지 FTX의 가능성에 투자했다.
SBF는 특히 암호화폐 시장의 주요 로비스트로도 유명했다. 11월 초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미 정부의 규제가 FTX에 유리하도록 하는 법안을 위해 정치인들에게 40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만한 CEO와 무조건적으로 그들을 따르던 추종자들이 만들어 낸 허상은 모래성이 됐다. 모래성 위에 쌓아 올린 이들의 명성과 기업 가치 그리고 자산 가치는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키워드4 도미노 현상 – 제네시스부터 제미니까지, 파산 우려 현실화
FTX 사태의 후폭풍은 일파만파다. FTX는 구조 조정 전문가인 존 J. 레이 3세를 새로운 CEO로 맞아 본격적인 사태 수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FTX의 파산 후 더 큰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레이 3세 CEO가 “40년간 구조 조정 경험에 이렇게 기업 통제가 완전히 실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재무 정보가 전혀 없는 곳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심각한 것은 FTX발 연쇄 파산 우려의 현실화다. FTX 사태로 인해 불안감이 높아진 투자자들의 ‘뱅크런’이 연쇄적으로 다른 암호화폐 업체들을 유동성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불러왔던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 6개월간 시장의 반응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FTX 사태 직후 파산설에 휩쓸렸던 세계 15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크립토닷컴은 보유 자금을 공개했고 암호화폐 대부 업체 블록파이는 직원 감축과 함께 파산 보호 신청을 준비 중이다.
특히 글로벌 암호화폐 대출 업체인 제네시스의 파산 가능성은 우려를 키운다. 11월 16일 제네시스가 잠재적 투자자들에게 유동성 위기로 파산 신청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제네시스는 FTX에 약 1억7500만 달러를 예치해 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FTX에 돈이 묶인 상태에서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자 유동성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제네시스는 최근 대출 상환을 중단한 상태다.
제네시스의 위기가 시장에 더욱 큰 파급력을 갖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간 암호화폐 시장의 ‘큰손’인 제네시스의 재정 건전성은 업계 전반의 재정 건전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져 왔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몇몇 기업의 위기를 넘어 암호화폐업계 전반의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제네시스 측은 “파산 신청 없이 현재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시장의 공포는 더욱 확산되는 중이다. 같은 날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도 고객 자금의 상환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제미니에서는 제네시스의 대출 상환 중단 소식이 알려지자 단 하루 동안 4억8500만 달러의 자금이 인출됐다. 제미니는 ‘제미니 언’이라는 이자 지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었는데 제네시스는 이 프로그램의 운영 파트너였다.
제미니는 하버드대 출신의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가 2014년 설립한 거래소다. 세계 6위 암호화폐 거래소이지만 존재감은 그보다 크다. 암호화폐 시장에 기관투자가들을 끌어들이는 데 윙클보스 형제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 제미니는 개인 투자자들보다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
키워드5 규제-‘규제 강화’로 신뢰 회복할 수 있을까
루나 사태 이전인 올해 4월 비트코인 가격은 4만5000달러 근처였다. 금리 인상 이후 이미 하락세에 접어든 상황이었지만 3만~4만 달러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의 위기를 거치며 비트코인 가격은 고꾸라졌다. 루나 사태 이후 지난 6월 3만 달러 밑으로 떨어진 비트코인 가격은 FTX 사태 이후 심리적 지지선인 2만 달러도 붕괴됐다. 11월 21일 1만5000 달러까지 떨어졌다 소폭 상승해 11월 23일 기준 1만6000달러에서 거래되는 중이다. 신뢰가 무너진 암호화폐 시장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11월 13일 미국 월스트리트의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암호화폐를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뉴욕 증시에 상장하는 등 암호화폐 투자가 급속도로 제도권에 편입되며 안정적인 투자 자산으로 정착하는 듯 보였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간체이스는 장기적으로 암호화폐가 금을 밀어내며 비트코인 가격이 14만6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나 사태와 FTX 사태를 거치며 암호화폐 투자는 ‘손실 규모가 너무 크고’ ‘시장 구조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1만300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비관론으로 가득 찬 암호화폐 시장이지만 여전히 낙관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이들이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암호화폐 업계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이다. FTX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규제와 관련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은 “기존 금융 체계에 대한 규제처럼 레버리지·유동성·소비자 자산 보호 부문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도 “주요 7개국(G7) 권고 사항에 따라 암호화폐 규제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암호화폐 규제 입법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11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사업자의 임의적인 입출금 차단으로 투자자가 피해를 볼 경우 배상을 의무화하는 투자자 보호 법안을 수용했다.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이미 탈중앙화된 암호화폐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과 기술은 그 안정성을 입증하고 검증을 거쳤다”며 “FTX 문제는 금융 자산으로서 규제가 미비했던 데서 불거진 문제”라고 설명했다. FTX는 ‘사기’가 맞지만 그것이 ‘탈중앙화된 금융’이라는 거대한 아이디어의 실패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FTX 사태가 장기적으로 암호화폐 인프라와 기술을 강화하는 ‘뜻밖의 행운’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우드 CEO는 FTX 사태 이후 대표적 암호화폐 관련주인 코인베이스와 실버게이트를 추가 매수했다.
월가의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헤지펀드 ‘큰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CEO는 11월 21일 트위터를 통해 “암호화폐가 폭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회가 있다”며 “암호화폐가 향후 전화와 인터넷만큼 사회와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몇몇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연구한 후 암호화폐를 통한 기술 개발과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믿게 됐다는 것이다.
애크먼 CEO는 암호화폐 시장을 규제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지나친 규제’가 불러올 수 있는 시장의 경직성에 대해서도 동시에 경고하고 나섰다. 신기술에 대한 모든 규제가 산업 발전의 저해 요소는 아니지만 신기술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규제는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을 위험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그는 “암호화폐로 사기를 치려는 이들로 인해 규제 개입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면 암호화폐의 긍정적인 잠재력도 후퇴할 수 있다”며 “암호화폐 생태계의 모든 합법적인 참가자들이 이와 같은 사기를 폭로하면 높은 인센티브를 주는 등 ‘시장 내 자정 작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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