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통기획으로 35층룰 폐지·재건축 속도 내는 단지 등장...안전진단 규제 완화도 핵심
“여의도 시범아파트 신통기획안 확정”“대치 은마아파트 재건축 심의 통과”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재건축 밑그림”
여의도·대치동·목동 등 서울을 상징하는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재건축 밑그림’, ‘재건축 신호탄’, ‘재건축 본격화’ 등 제목만 보면 30년 넘게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킨 아파트 단지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헌 집을 주고 새집을 받는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은마아파트가 대표적 사례다. 2003년 재건축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7년 만인 2010년 안전 진단을 통과하고 19년 만인 올해에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심의를 통과했다. 그만큼 험난하다는 말이다.
은마아파트는 이제 막 재개발을 위한 첫발을 뗀 셈이다. 아직 공식적인 조합도 설립되지 않았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본격적인 시행 단계로 볼 수 있는 ‘조합설립인가’를 받을 계획이다. 조합설립인가 이후에는 재건축에 본격 시동이 걸린다고 볼 수 있다. 이후에도 건축 심의, 시공사 선정 등 수많은 난관을 뚫어야 한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는 재건축 기사마다 ‘밑그림’, ‘청사진’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목동 재건축 계획안이 만들어진 건 2018년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가 집값 급등을 우려하며 제동을 걸면서 모든 절차가 중단됐다. 서울시는 최근까지 세부 보완을 거친 지구단위계획안을 마련해 4년여 만에 절차를 재개했다. 재개발에는 정부의 정책 리스크까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동이다.
지구단위계획안은 재건축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서울시는 이번 결정을 통해 목동 아파트 14개 단지를 각각 별도의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하고 단지별로 재건축 정비계획(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창의적인 건축 계획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다. 목동 아파트 14개 단지에 재건축을 위한 물꼬가 터진 셈이다. 고비 하나 넘을 때마다 2년에서 5년 재건축 구역으로 지정되고 공사를 하고 입주하기까지 7년에서 20년 이상 걸리는 만큼 과정도 복잡하다. 과정마다 등장하는 용어도 어렵다. 뉴스에 등장하는 단어만으로는 재건축 사업의 진행 상황도 가늠하기 힘들다.
◆지자체의 정비기본계획 수립
재건축 사업의 단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지자체에서 해당 아파트 단지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각 지자체마다 10년 단위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 5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하는데 이 단계가 정비 기본 계획 수립이다.
◆재건축 안전 진단 규제 완화된다
정비 기본 계획이 수립됐거나 재건축 연한인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안전 진단에서 A~C등급까지는 유지·보수, D등급은2차 안전진단(적정성 검토) 후 재건축, E등급은 재건축 확정이다. 구조 안전성이 심각하게 취약할 때만 E등급을 받을 수 있고 이후 조합을 설립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안전진단이 재건축을 가로막는 대못이 되자, 정부는 기준을 완화해 12월 초 공개하기로 했다. 현재 50%에 달하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30~40%로 낮추고, 현재 정밀안전진단상 D등급 분류시 의무화돼 있는 공공기관 적정성 검사를 지자체가 요청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방안 등이 담길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목동신시가지 단지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도 안전 진단 결과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목동에서는 6단지만 E등급을 받았다. 다른 단지들은 정부가 안전 진단 기준을 완화해 줄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정비구역 지정 : 재건축 진짜 출발
안전 진단을 통과하면 공식적인 정비구역으로 지정된다. 구역 지정에 앞서 지자체는 정비계획안을 수립하고 주민 공람을 통해 공개한다. 입주민들이 동의하면 지방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마침내 정비구역으로 지정된다.
여기까지도 오는 데도 통상 5년 이상 걸린다. 서울시가 이 과정을 줄이겠다고 내놓은 사업이 바로 신통기획(신속 통합 기획)이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정비사업 초기 단계부터 함께 계획안을 제시해 사업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취지다. 서울시 신통기획을 통해 각종 계획과 절차 간소화해 통상 5년 이상 걸리는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2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같은 면적 토지라도 더 많은 가구 수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그 대가로 조합 측은 늘어난 가구 수 일부를 기부 채납 형식으로 공공 기여한다.
이렇게 하면 속도를 낼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정비구역 지정까지의 속도를 줄일 수 있지만 이후에도 과정이 첩첩산중처럼 남아 있다. 용적률이나 층수 완화의 반대 급부로 공공 기여분이 커지기 때문에 사업을 철회하는 사업지들도 있다.
또 정비구역 지정까지의 단계 축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재건축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단지에는 크게 유리한 점이 없다. 신반포4차는 정비계획안을 이미 수립하고 주민 공람 공고까지 완료한 만큼 신통기획 참여에 따른 사업 기간 단축 이득이 적다는 판단에 신통기획 사업을 철회한 바 있다. 송파구 한양2차 역시 신통기획에 나온 정비기획안이 조합원들의 요구와 맞지 않아 반대 여론이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사업을 철회했다.
◆재건축추진위원회→조합설립인가
우여곡절을 거쳐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단지는 재건축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 추진위원회는 조합 설립을 준비하는 임시 단체다. 추진위원회는 주민들의 동의를 모아 조합설립인가를 받아야 한다. 정비구역이 지정됐다고 바로 조합이 설립되는 것은 아니다. 압구정 현대1~7차, 10·13·14차, 대림빌라트로 구성된 압구정 3구역은 추진위원회 설립에서 조합설립인가까지 2년 7개월이 걸렸다. 지난해 4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압구정 3구역은 이제 건축 심의를 앞두고 있다.
◆재건축 7부 능선, 사업시행인가
조합 설립 이후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용산구 산호아파트는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지 4년 만에 건축 심의를 통과했다. 건축 심의까지 통과했다면 7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건축 심의를 통과한 사업지는 사업시행계획을 세워 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신청한다. 여기까지 왔다면 재건축이 ‘착착’ 진행됐다는 뜻이다.
◆시공사 선정 : 아파트 브랜드 뭘로 할까?
다음은 아파트 브랜드와 공사를 담당할 시공사를 선정한다. 최근 재건축이 본격화되고 있는 ‘매머드급’ 단지들은 대형 건설사들의 수주전이 이어지기도 한다.
◆재건축 막바지, 관리처분인가로 ‘입주권’ 얻는다
이후 감정 평가와 조합원 분양 신청 단계를 넘으면 재건축 막바지 단계인 관리처분인가를 받는다. 조합원 분양 물량에 따라 감정 평가액 총액이 결정되고 일반 분양과 임대 주택의 물량과 정비 사업비 추산액 등이 이때 정해진다. 관리처분인가일을 기점으로 조합원은 ‘입주권’을 받게 된다.
◆착공한다고 다가 아니다
이후 이주와 철거가 진행되면 비로소 착공에 들어간다. 지금처럼 원자재 값이 급등해 공사비가 오르고 자금 시장이 경색된 상황에서는 착공 이후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공사비 증액을 두고 시행사와 시공사 간 갈등이 벌어지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에 실패하는 등 예상하지 못한 고비를 맞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이다.
◆“우리 아파트 청약하세요” 일반 분양
사업 완료 단계에서는 조합원 동·호수 추첨 이후 일반 분양에 들어간다.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성은 일반 분양에서 결정된다. 재건축 아파트는 조합원이 건물이 아닌 대지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재건축 단지들이 초고층 건립을 원하는 이유다. 제한된 면적에 층수를 높여 가구 수를 늘려야 일반 분양 물량이 확대되면서 조합원의 추가 부담금이 줄어들어 사업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의도·은마·목동 ‘정비구역 지정’은 아직 재건축 사업 과정은 글로만 읽어도 긴 호흡이 필요하다. 재건축 사업 단계를 이해했다면 다시 각 단지별 현황을 살펴보자.
은마아파트는 2000년 초반 재건축을 본격화했지만 당시 급등하는 집값과 전쟁을 하던 정부의 규제 등으로 예비 안전 진단 문턱에서 세 차례나 고배를 마셨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2010년 안전 진단을 통과했고 지난 10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에 다음 단계는 조합설립인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당장 재건축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려면 동별 동의율 50%가 넘어야 한다. 상가동도 하나의 동으로 보는데 은마아파트 상가는 부지가 6600㎡(약 2000평)에 달하고 상가 조합원만 약 400명에 이른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14개 단지는 아직 정비구역으로 확정되지도 않았다. 시는 목동 아파트 14개 단지를 각각 별도의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했다. 용적률은 평균 130%대에서 최대 300%까지 허용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만 발표됐기 때문에 계획안 재열람 후 확정 고시되면 각 정비사업 조합이 가이드라인에 맞춰 재건축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현재 수립 중인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이 확정되면 재건축 계획에 따라 최고 층수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관건은 정부가 다음 달 발표하는 안전 진단 완화다. 목동 1~14단지 가운데 6단지만 유일하게 2020년 6월 안전 진단을 통과했다.
신통기획으로 재건축을 진행 중인 6단지는 현재 12~20층, 1362가구를 최고 35층, 2298가구로 재건축하는 안을 마련해 양천구와 협의 중이다. 6단지를 제외한 13개 단지가 모두 안전 진단 단계에서 막혀 있는 만큼 정부가 안전 진단 규제를 얼마나 완화하느냐에 따라 목동지구의 재건축 추진 속도가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통기획안을 확정한 여의도 시범아파트 역시 아직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시는 열람 공고를 거쳐 내년 상반기(1∼6월)까지 정비구역 지정을 완료할 예정이다. 신통기획안을 보면 시범아파트는 최고 65층, 2500가구로 지어진다. 인근 63스퀘어(250m), 파크원(333m) 등과 ‘U’자형 스카이라인을 형성할 수 있도록 높이를 최고 200m 수준으로 계획했다. 최고 65층으로 정비사업이 확정되면 서울 시내 재건축 단지 중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된다. 용도지역도 상향 조정했다. 제3종 일반 주거 지역에서 준주거 지역으로 바뀌면서 용적률이 300%에서 400%로 올랐다. 그 대신 공공 기여분을 활용해 한강 변에 문화공원을 조성한다.
이처럼 강남·여의도·목동 등 대표 노후 재건축 단지들이 사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 전역의 정비사업이 탄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다. 정비업계는 잇단 금리 인상에 부동산 침체 분위기 속에 정부의 남은 재건축 규제 완화 발표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전히 정밀 안전 진단,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기존의 정비사업 저해 요인들에는 유의미한 변동이 없으니 향후의 진행 상황을 길게 볼 필요가 있다”며 “서울 전역의 정비사업이 바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기 어렵고 가격이 크게 변동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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