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2030 미래 도시 프로젝트…재료 소멸 vs 장기 트렌드 ‘팽팽’
[비즈니스 포커스] “너네 회사는 뭐 안 하냐?”주식 투자자 A 씨의 메시지 창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2030 미래 도시 프로젝트인 ‘네옴시티’로 뜨겁다. 동료는 물론 친구들과의 단체 대화창에서도 네옴시티가 연일 화두다. A 씨는 “새로운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보니 거의 모든 업종이 달려드는 것 같다”며 “돈 되는 기회란 생각에 연일 네옴시티 관련 기업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주가 폭등한 한미글로벌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한국을 다녀간 지 1주일이 지났지만 그가 남긴 네옴시티 보따리는 여전히 핫한 주제다.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에 지어질 네옴시티는 서울의 43배 규모의 첨단 신도시로 사우디아라비아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총사업비 약 500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초대형 사업이다.
그의 방한 전후로 한국의 다수 기업이 네옴시티 프로젝트 관련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건설·에너지·중공업·정보기술(IT)·통신·모빌리티 등 미래 도시와 연관된 관련 업계가 총동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덩달아 주식 투자자들도 분주해졌다. 자본 시장 경색에 그간 우중충했던 증권 토론방에서는 ‘네옴시티 가즈아’ 열풍이 한창이다. 투자자들은 ‘네옴시티 관련주’ 찾기에 나섰고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들도 나왔다. 테마주가 형성되며 회사의 재무 건전성에 비해 과도하게 거품이 낀 종목도 나왔다. 선반영으로 네옴시티 관련주의 재료 소멸을 예견하는 의견도 다수다.
전문가들은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중·장기 프로젝트로 일회성의 테마로 치부하기보다 실질 수혜주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얼어붙은 증시의 산타클로스일까, 더한 한파를 몰고 올 동장군일까.
네옴시티 사업을 수주한 한국 3사 중 하나인 한미글로벌의 주가는 9월 이후 빈 살만 왕세자 도착일 전까지 약 88% 폭등했다. 11월 7일에는 장중 기준 5만원 가까이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금은 고점 대비 약 37% 하락한 3만50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주가가 충분히 상승한 것으로 판단한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5개월 전 이 회사의 주가는 6월 23일 기준으로 9470원이었다.
회사와 임원진도 부분 매도에 나섰다. 11월 15일 한미글로벌은 자기 주식 계정으로 보유하고 있던 70만 주를 외국계 헤지펀드 4개사에 장외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이번 매도로 주당 4만1610원에 70만 주를 정리해 총 291억2700만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벌어들인 영업이익인 268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임원진도 보유 주식을 팔고 차익 실현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들은 “기업 정보에 해박한 경영진이 보유 주식을 매도한다는 것은 향후 주가 상승보다 하락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경영진의 주식 매도 상황을 유의 깊게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른 수주 기업인 현대건설과 삼성물산도 11월 초 네옴시티 기대감에 반짝 상승세를 보이다가 최근 다시 하락세다.
수주 소식이 전해진 지난 6월 이후부터 선반영돼 차익 실현 움직임이 일어난 것 외에도 공사 변수에 대한 우려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다른 대형사와 달리 현대건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23년 주택 신규 수주가 평년 대비 20% 이상(약 3조원) 줄어들더라도 대형 원전과 네옴시티 프로젝트에서 이를 전부 대체할 수 있다”면서도 “해당 프로젝트는 주택보다 수익성이 낮고 공사 변수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킬 것이란 기대감이 크지만 일각에서는 사업비만 600조원에 달하는 네옴시티 사업이 신기루 같은 계획일 뿐이라며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네옴시티 관련 민·관 프로젝트인 ‘원팀 코리아’를 주도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유튜브를 통해 “설사 이 계획이 계획대로 다 되지 않더라도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쌓여 있는 오일머니가 건설이나 산업으로 탈바꿈할 것”이라며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의견은) 참고는 하되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정부가 나서 건설업뿐만 아니라 방산이나 플랜트·원전·IT·문화 등 한국이 보유한 경쟁력 있는 산업을 패키지로 묶어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관련 수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실제 건설뿐만 아니라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구체적인 협력 소식이 전해진 기업들은 상승세다. 11월 17일 윤석열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의 공식 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주요 기업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기관·기업과 총 26건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측에 따르면 총 300억 달러(약 40조원) 규모다.
이 중 한내 기업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간 협력 MOU는 총 6건이다. 철도 협력(현대로템), 석유화학(롯데정밀화학·DL케미칼), 제약(지엘라파), 게임(시프트업), 스마트시티솔루션(와이디엔에스) 등이 담겼다. 향후 협의에 따라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MOU 체결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해당 기업 혹은 연관 기업들의 주가가 뛰었다. 현대로템은 11월 23일 현재 발표 전일인 11월 16일보다 11.04% 오른 2만99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현대로템과 연관된 기업들도 강세를 보였다. 현대로템과 알루미늄 자체 독점 공급 계약을 한 알루미늄 전문 업체 알루코 역시 11월 16일보다 15.4% 급등한 308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기관, 기업과의 MOU 체결도 주가에 훈풍이다. 한국전력·한국남부발전·한국석유공사·포스코·삼성물산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와 예정 사업비가 65억 달러(약 8조5000억원)에 달하는 그린 수소·암모니아 공장 건설 프로젝트 MOU를 체결했다. 여기에 삼성물산은 PIF와 네옴시티에 철강 모듈러 방식으로 임직원 숙소 1만 가구를 짓는 ‘네옴 베타 커뮤니티’ 프로젝트 관련 MOU를, 한국전력은 사우디아라비아 민간 발전 업체 ACWA파워와 그린 수소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의 협력 약정을 각각 맺었다.
또 가스 절연 개폐 장치(효성중공업) 등의 에너지 분야와 주조·단조 공장 건설(두산에너빌리티), 산업용 피팅 밸브(비엠티), 전기 컴프레서(터보윈) 등의 제조 분야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력을 추진한다. 이 밖에 백신·혈청 기술(유바이오로직스), 프로바이오틱스(비피도) 등의 바이오 분야와 스마트 팜(코오롱글로벌), 엔지니어링 서비스(동명엔지니어링), 재활용 플랜트(메센아이피씨), 투자 협력(한국벤처투자) 등의 농업·서비스·투자 분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사업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들 모두 네옴시티 관련주에 묶이며 주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중·장기 트렌드로 실질 수혜주 찾아야 전문가들은 지금 물망에 오른 네옴시티 관련주 외에도 스마티 시티와 연관된 그린 수소와 전기차 등에도 관심을 보일 것을 추천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시대의 다음으로 네옴시티를 조명한 만큼 그린 수소의 시대가 중동에서 재현될 것이란 분석에서다.
반면 테마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다. “썰물이 빠져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던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말은 테마주의 투자 위험성을 잘 알려준다. 이에 전문가들은 장기적 안목에서 네옴시티를 살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장문준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내년부터 핵심 프로젝트의 발주가 증가하면서 앞으로 몇 년 동안 중동 설비 투자(CAPEX) 사이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며 “일회성의 테마로 치부하기보다 중·장기 트렌드로서 실질 수혜주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사업보고서 등의 전자 공시와 회사의 가능성, 산업 트렌드를 연구해 투자해야 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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