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충성도 낮아진 소비자들…새로운 감각 경험하게 하는 창의적 제품 인기

[비즈니스 포커스]
대형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가정간편식(HMR). 코로나19로 내식이 생활화되면서 소비자들은 한 브랜드가 아닌 다양한 브랜드를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형마트에 진열된 다양한 가정간편식(HMR). 코로나19로 내식이 생활화되면서 소비자들은 한 브랜드가 아닌 다양한 브랜드를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들의 식품 구매 선택지가 다양화됐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의 진단이다. 그의 말처럼 코로나19 사태가 일으킨 ‘집밥’ 열풍으로 ‘외식’이 줄면서 소비자들의 식품 구매 트렌드도 빠르게 변했다.

집에 머무르며 하나의 상품만 계속 먹다 보면 쉽게 질리기 십상이다. 한 브랜드에 충성하며 꾸준히 소비했던 과거와 달리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소비자들이 집에서 다양한 브랜드를 맛보고 즐기게 된 배경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식품업계의 판세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 충성 고객들을 기반으로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켜 오던 제품들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죽·즉석음료(RTD) 커피·라면·맥주·냉동만두·카레 등이 대표 격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가져온 식품업계 2위의 ‘반란’이다.

죽 시장은 여차하면 1위가 뒤바뀔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상온 죽 시장은 20년 넘게 동원F&B의 ‘양반 죽’이 1위 자리를 지켜 왔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이 2018년 출시한 ‘햇반 소프트밀’이 등장하며 무섭게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햇반 소프트밀은 출시 직후 단숨에 2019년 시장점유율 30%대를 기록하며 죽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2020년 37.8%, 지난해에는 1위(41.8%)와 근소한 차이인 41.7%의 점유율을 달성했다.

특히 올해 하반기(7∼12월)만 보면 평균 시장점유율 42.4%로 경쟁사(41.1%)를 제친 상황이다. 올해 시장 1위 등극 가능성도 예상된다.
파우치 죽으로 시장 1위 노리는 CJ제일제당햇반 소프트밀은 전자 레인지에 간편하게 데워 먹을 수 있고 좋은 맛과 높은 품질을 지닌 ‘파우치’ 제품을 내놓으며 상품죽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햇반 소프트밀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죽은 용기 형태로 판매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업계 1위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CJ제일제당이 내놓은 기존에 없던 형태인 파우치에 죽을 담아 선보이는 것이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일반 용기보다 휴대하기가 쉽고 간편하게 전자 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강점이 있는 파우치 형태로 죽을 출시하면서 소비자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올해 죽 시장 1위까지 넘볼 수 있게 된 배경이다.

햇반 소프트밀의 선전을 목격한 동원도 부랴부랴 파우치 형태의 죽을 선보였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햇반 소프트밀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집에서 즐기는 RTD 커피 시장 역시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이 시장 흐름 또한 죽 시장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업계 최강자였던 롯데칠성을 동서식품이 바짝 뒤쫓는 모양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RTD 커피 시장점유율은 롯데칠성이 25.2%, 동서식품이 25.0%다.

롯데칠성은 캔커피의 대명사가 된 ‘레쓰비’를 필두로 20년 넘게 해당 시장에서 1위를 수성해 왔다. 하지만 동서식품이 ‘맥심 티오피(T.O.P)’를 출시하면서 양 사의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동서식품은 판매액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는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그러모았다.

한편으로는 한국 커피 시장에서 날이 갈수록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스타벅스와의 협업도 동서식품의 점유율 상승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서식품은 2005년부터 스타벅스와 제휴하고 스타벅스 음료의 한국 내 판매와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대형마트 또는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스타벅스의 컵 커피와 캔 커피 등을 다 동서식품에서 제조하고 있다.

라면 시장과 맥주 시장도 적수가 없었던 1위 업체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 라면 시장은 농심, 맥주 시장은 오비맥주가 그간 업계 1위를 공고히 다져 왔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이 업체들은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선 라면 시장은 농심이 지켜 왔던 60% 점유율이 깨진 지 오래다. 그 중심에는 오뚜기가 있다.

농심의 대표 라면인 ‘신라면보다 더 맛있는 라면을 만들라’는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특명 아래 진라면은 상품 개선을 거듭했다. 소비자들도 반응했다. 그 결과 진라면은 라면 시장에서 부동의 2인자가 될 만큼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이에 힘입어 오뚜기의 라면 시장점유율도 24.8%까지 올라왔다. 1위인 농심의 점유율은 53.5%다. 오뚜기의 시장점유율이 계속 상승세인 반면 농심의 점유율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를 감안하면 양 사의 격차는 향후 더욱 좁혀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샘표, ‘티아시아 커리’로 오뚜기 독주 제동맥주 시장에서는 오비맥주를 하이트맥주가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카스를 앞세운 오비맥주의 맥주 시장점유율은 약 54%로 추정된다.

한화증권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테라를 앞세워 맥주 시장점유율을 36%까지 끌어올렸다. 하이트진로의 테라는 애초부터 카스를 앞지르기 위한 목표를 갖고 탄생한 브랜드다. 기존의 주력 제품인 ‘하이트 맥주’로는 더 이상 카스를 앞지르기가 어려워 보였다.

이에 내부적으로 판세를 뒤집기 위한 신제품 출시를 결정하고 만든 것이 테라다. 제품 방향을 잡는 데만 약 5년이 걸렸고 2년 동안 최고의 맛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탄생했다. 이런 노력 때문이었을까. 시장도 테라의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출시 39일 만에 100만 상자 판매를 돌파하며 한국 맥주 브랜드 중 가장 빠른 판매 속도를 기록했다. 현재는 한국 맥주 시장에서 카스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제품으로 성장했다.

냉동 만두 시장과 카레 시장에는 기존에 없던 제품을 앞세운 업계 ‘다크호스’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냉동 만두 시장에서는 CJ제일제당 비비고 만두의 대항마로 풀무원이 2019년 3월 말 출시한 ‘얇은피 꽉찬속 만두’, 일명 ‘얄피만두’가 떠오르고 있다.

얄피만두의 성공 요인은 단연 차별화다. 얄피만두가 나오기 전까지 냉동 만두 제품들은 대부분 만두소에만 집중해 왔다. 어떻게 맛있는 속을 만들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풀무원은 이런 만두 시장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만두소가 비칠 정도로 쫄깃하면서 식감이 좋은 얇은 피를 새롭게 개발하고 그만큼 소를 꽉 채워 내는 제품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얄피만두의 등장 이후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미투 제품을 잇달아 내놓는 추세다.

결국 얄피만두는 풀무원의 냉동 만두 시장점유율을 반등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풀무원은 2018년 냉동 만두 시장점유율 순위 4위에 머물러 있었지만 얄피만두 성공 이후 점유율을 20%대까지 높이며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카레 시장에서는 간장으로 유명한 샘표식품이 떠오르는 신흥 강자다. 일명 ‘전지현 커리’로 불리는 샘표의 ‘티아시아 커리’를 통해서다.

마켓링크에 따르면 티아시아 커리는 최근 시장에서 점유율 20%를 넘기면서 40년 넘게 90% 안팎의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온 오뚜기의 독주를 막았다. 출시된 지 1년 반 만에 거둔 성과다.

티아시아 커리의 성공 비결 역시 차별화에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카레가 ‘일본식’인 것을 감안해 샘표는 ‘마크니’, ‘푸팟퐁’, ‘마살라’ 등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유명 카레를 이국적이면서도 우리 입맛에 맞게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숱한 연구·개발(R&D) 끝에 제품을 선보였다. 샘표 관계자는 “획일화된 맛의 기존 카레 시장에 색다른 맛의 제품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 주효했다”며 “향후에도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점유율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