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키우는 한화·CJ·코오롱·LS의 ‘차세대 리더’
속도 빨라진 재계 세대교체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주요 그룹 오너 2~4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재계의 세대교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연말 인사 시즌에 새롭게 임원진에 합류하거나 최고경영진으로 승진한 젊은 오너 경영인 중에선 1980년대생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30대 사장까지 등장했다.

경영 수업을 마치고 실전에 투입된 재계 차세대 리더들은 승진과 동시에 경영 실적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짊어지게 됐다.

코오롱·CJ 등 30대 오너 전면에

한화는 올해 재계에서 가장 먼저 인사를 마치며 본격적인 미래 준비에 돌입했다. 지난 8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41) 한화솔루션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10월 3남인 김동선(34)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다.

김승연 회장은 올해 71세로 지난 41년간 한화그룹을 이끌어 왔다. 부친이자 한화 창업자인 고 김종희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1981년 29세의 나이에 회장에 취임해 ‘최연소 총수’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올해 취임 41주년을 맞이하면서 ‘최장수 총수’가 됐다.

한화그룹은 장남인 김 부회장이 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을 맡고 2남인 김동원(38) 부사장이 금융업을, 3남인 김동선 전무가 호텔과 리조트 사업을 맡으며 3형제의 승계 구도가 명확해지고 있다. 한화솔루션 갤러리아부문은 2023년 3월 별도법인으로 독립할 예정인데 김 전무가 경영 지휘봉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승마 국가 대표 출신인 김 전무는 미국 3대 버거 프랜차이즈로 꼽히는 ‘파이브가이즈’의 한국 론칭을 주도해 최근 주목받고 있다.

SK그룹에서는 최신원 전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42) SK네트웍스 사업총괄이 신임 사업총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호정 신임 총괄사장과 함께 SK네트웍스의 투자 및 주요 의사결정을 함께해 나갈 예정이다. 최성환 신임 사업총괄 사장은 SK그룹 3세 중 가장 먼저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SK그룹의 첫 미국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며 갖춘 해외 사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SK네트웍스의 글로벌 투자 네트워크 구축과 내부 역량 확보를 주도해왔다. 2020년에는 보유 중이던 직영주유소를 자산과 영업으로 나눠 복수의 상대에게 매각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지주회사인 SK(주)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글로벌 사업과 SK그룹 방향성을 조율하며 SK네트웍스의 신사업을 이끌어 왔다.

코오롱가 4세이자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규호(39) 코오롱글로벌 부사장은 2023년 1월 신설 출범하는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이사 사장에 내정됐다. 1984년생인 이 신임 사장은 30대에 사장직에 오르게 됐다. 1996년 당시 40세에 총수에 오른 이 명예회장만큼 빠른 승진 속도다. 코오롱글로벌의 자동차부문을 이끌어 온 이 신임 사장은 “과감한 체질 개선으로 1등 DNA를 심는다”는 전략 아래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등으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견인해 왔다.

BMW·아우디·볼보·지프·롤스로이스 등 수입차 부문을 통합해 2023년 출범을 앞둔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유통 판매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개편 확장해 종합 모빌리티 사업자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코오롱그룹은 최근 정기 임원 인사에서 제조 계열사들의 수장을 모두 바꾸고 새 임원의 70% 이상을 40대로 교체해 4세 경영 체제를 강화했다.

CJ그룹에선 이재현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33)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이 임원(경영리더)으로 승진한 지 1년 만에 실장을 맡으며 미주 지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포괄하는 글로벌 식품 사업 전반의 전략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이 회장의 장녀인 이경후(38) CJ ENM 브랜드전략담당 경영리더는 인사 변동이 없었다. 1990년생인 이 실장은 식품사업 전략 기획, 인수·합병(M&A), 미래 먹거리 발굴을 총괄하고 있다. 향후 글로벌 성과를 토대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구본준 LX홀딩스 회장. 사진=LX홀딩스 제공
구본준 LX홀딩스 회장. 사진=LX홀딩스 제공
‘40세 총수’ 후보…LX 구형모 주목

LS그룹은 구자은 회장 취임 후 단행한 첫 임원 인사에서 오너 일가인 구본규(44) LS전선 부사장과 구동휘(41) E1 전무를 각각 사장과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며 3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1979년생인 구본규 LS전선 신임 사장은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장남으로 구자은 LS그룹 회장의 조카다. 2022년 1월부터 LS전선 부사장을 맡으며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 환경 속에서도 강한 추진력으로 사업 성과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동휘 LS일렉트릭 신임 부사장은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의 아들이다. 구 신임 부사장은 LS일렉트릭 중국 산업자동화 사업부장 상무, (주)LS 밸류매니지먼트 부문장 전무, E1 신성장사업부문 대표이사 전무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LS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1982년생으로 40대 초반이지만 신성장 동력 발굴 역량을 인정받아 부사장직에 올랐다.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2021년 5월 출범한 LX그룹은 구본준(72) 회장의 장남 구형모(36) LX홀딩스 경영기획부문장이 지난 3월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데 이어 약 8개월 만인 11월 30일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구 부사장은 이날 LX홀딩스가 그룹의 미래 준비를 위해 신설한 LX MDI의 이사회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서동현 LX판토스 경영진단·개선담당과 함께 LX MDI의 각자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LX MDI는 그룹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 컨설팅, 정보기술(IT)·업무 인프라 혁신, 미래 인재 육성 등을 담당하는 경영개발원 역할을 맡는다.

구 회장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2021년 말 구 부사장과 장녀 연제 씨에게 지주회사 LX홀딩스 주식을 각각 850만 주, 650만 주를 증여했다. 지분 증여로 40%에 달하던 구 회장의 지분이 20.37%로 줄었고 구 부사장은 11.75%의 지분으로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연제 씨의 지분도 8.78%로 늘었지만 그는 현재 LX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있다.

구 회장은 1951년생으로 칠순이 넘었는데 70세가 되면 총수 자리를 넘겨주는 범LG가의 ‘70세 룰’을 고려하면 구 부사장의 승계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아직 30대인 구 부사장이 40대에 총수가 된다면 29세에 총수에 오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38세에 총수가 된 최태원 SK 회장, 40세에 총수에 오른 구광모 회장과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어린 나이에 총수에 오른 오너가 된다. 재계 관계자는 “구형모 부사장이 40세에 LG그룹 총수에 오른 구광모 회장과 비슷한 시기에 승계 수순을 밟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장 승진과 함께 지분도 늘린 BGF 형제

BGF그룹에선 홍석조 회장의 차남인 홍정혁(40) BGF에코머티리얼즈 대표 겸 BGF 신사업 개발실장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인사로 BGF그룹은 편의점 사업을 이끄는 장남 홍정국(41) BGF 사장과 또 다른 성장 축인 신소재 사업을 이끄는 차남 홍정혁 사장이 나란히 사장직에 오르면서 2세 경영 체제를 공고히 다지게 됐다.

홍 회장은 11월 30일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방식을 통해 두 아들에게 자신이 보유한 BGF 주식을 각각 1002만5095주씩 넘겼다. 이에 따라 홍 회장의 지분은 53.34%에서 32.4%로 줄었고 홍정국 사장은 10.29%에서 20.77%로, 홍정혁 사장은 0.03%에서 10.5%로 지분이 늘면서 그룹 내 영향력이 확대됐다. BGF그룹의 형제 경영을 두고 업계에선 향후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원무역의 리더십 승계도 눈길을 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의 세 자녀 중 차녀인 성래은(45) 영원무역홀딩스 사장은 11월 29일 정기 임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성 부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2002년 영원무역에 입사해 2016년 지주회사인 영원무역홀딩스 사장, 2020년 영원무역 사장을 맡으며 경영 수업을 해 왔다.

성 부회장은지난 3월 미국·유럽·동남아시아 등에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을 주도하며 경영 보폭을 넓혀 왔다. 성 부회장의 영원무역홀딩스 지분이 0.03%에 불과해 향후 지분을 어떻게 늘려 갈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은 이재용(55) 삼성전자 회장이 2012년 부회장에 오른 지 10년 만에 공식적으로 회장 타이틀을 달면서 ‘이재용의 삼성’ 시대를 열었다. 이 회장은 그동안 삼성의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해 왔지만 사법 리스크 상황과 미래 준비로 승진을 미뤄 왔다.

1968년생인 이 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공채 32기로 총무그룹에 입사했는데 입사를 기준으로 보면 회장에 오르기까지 31년이 걸린 셈이다. 이 회장의 승진에 따라 오너 일가인 이부진(53) 호텔신라 사장이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 사장은 2010년 사장에 취임해 호텔신라를 이끌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