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원자재 의존도 낮추기 위한 EU 핵심원자재법
美 IRA처럼 中 견제 앞세워 한국 기업 차별 조항 담길 수도
보호무역 강화에 정부의 선제 대응 필요

[비즈니스 포커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022년 9월 28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새로운 대러 제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022년 9월 28일(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새로운 대러 제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주요 광물 원자재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이른바 ‘핵심원자재법(CRMA : Critical Raw Materials Act)’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법안은 희토류·리튬 등 전략적 핵심 원자재를 자체적으로 선정하고 역내 원자재 공급망 강화, 공급망 다변화 등의 방향만 제시돼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미공개 상태다. 구체적인 법안 내용은 2023년 1분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EU가 영위하는 화학·자동차 등 역내 주요 산업이 역외 원자재·에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EU는 2011년부터 3년 주기로 핵심 원자재를 지정하고 있는데 2020년 기준 30개 중 희토류·마그네슘을 포함한 19개 물질의 주요 수입국이 중국이다. EU는 코로나19 사태로 공급망 차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겪자 주요 산업의 공급망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 중이다.

업계에선 대중국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법안으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비슷한 취지로 해석되는 만큼 정부 차원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IRA는 북미에서 최종 생산한 전기차에만 새액 공제 혜택을 제공해 한국을 비롯해 유럽·일본 등에서 동맹국을 차별한다는 불만을 사고 있다.

IRA는 미국과 유럽의 동맹에도 균열을 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은 반러 전선을 구축하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데 미국은 전쟁 이후 무기와 에너지를 유럽에 팔면서 이익이 크게 증가했다. 전쟁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IRA까지 시행하면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EU는 IRA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고 있고 무엇보다 유럽 자동차 기업들에 미국 공장 설립을 강제함으로써 유럽 제조업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독일의 자동차 제조 업체인 BMW그룹이 지난 10월 17억 달러(약 2조5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내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공장 설립 계획을 밝히자 독일 경제장관은 “(IRA에 따른) 강력한 보조금 때문에 기업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탈하고 있다”며 “이런 시국에 무역 전쟁으로 갈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산 구매법(Buy European Act)’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2년 12월 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 회담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2년 12월 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 회담을 가진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 회담 이후 가진 기자 회견에서 IRA에 대해 “조정이 필요한 작은 결함들(glitches)이 있다”면서 “유럽 국가들이 참여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미세한 조정 방안들(tweaks)이 있다”고 말했지만 업계는 전체적 수정 가능성은 불투명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2월 4일 “미국 IRA에 대응해 EU와 회원국들의 산업 보조금 정책을 대폭 개편해야 한다”고 밝히며 유럽도 ‘맞불’을 놓겠다고 압박했다.

‘유럽판 IRA’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 시행 예고에 자동차·배터리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RA처럼 보호무역주의 법안으로 예상되는 만큼 유럽산 광물 비율이 낮은 공산품에 대해 추가 관세나 보조금 철회 등 차별적인 조항을 둘 경우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030년까지 중요 광물 원자재 수요가 500%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 법안의 추진을 핵심 정책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EU는 최근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핵심원자재법(CRMA), 공급망 실사와 같이 통상 정책에서 환경, 인권 등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역내 공급망 진입 기준을 높이며 보호무역주의 방향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종서 유럽학회 부회장은 “EU의 통상 정책이 한국 수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업계에서 관심을 갖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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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