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를 자라게 하는 유전자 도태됐을 가능성 높아...식량 자급률도 점검해야

[글로벌 현장]
일본 도쿄역 주변에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도쿄역 주변에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키가 작다. 1996년생 남성의 평균 신장이 한국은 174.9cm인데 일본은 170.8cm로 한국보다 4.1cm 더 작다. 비슷한 연령대(20~29세)의 여성도 한국은 161.3cm인데 반해 일본은 157.9cm로 160cm가 안 된다.

더 놀라운 점은 일본인들의 신장이 시간이 지나며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문부과학성 조사에 따르면 17세 일본인의 평균 신장은 남성이 170.9cm, 여성이 158.1cm를 기록한 1994년 이후 30년 가까이 제자리이거나 오히려 작아졌다.

1만 년째 그대로인 일본인의 평균 신장

일본인들의 키가 줄어들었다는 연구도 있다. 히라모토 요시스케 도쿄대학 연구원(당시)이 1972년 펴냈고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참고하는 논문에 따르면 에도시대(1603~1867년) 남성의 평균 신장은 157.1cm였다.

반면 조몬인은 159.1cm로 에도인들보다 2cm 더 컸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대퇴부 뼈의 길이 등으로 추정한 수치다. 조몬인은 약 1만2000~2500년 전까지 일본 열도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벼농사의 보급으로 영양 섭취량이 늘어난 데다 한반도와 중국에서 키가 큰 대륙인들이 넘어온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가마쿠라시대와 에도시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인은 점점 더 작아졌다.

675년 덴무 일왕이 육식 금지령을 선포한 이후 1875년 해제될 때까지 일본인들은 1200여 년간 육식을 금기시했다. 일본인의 키가 1만 년 전보다 줄어든 이유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제시되는 가설이다.

메이지(1867~1902년)시대 이후 일본인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고 근대화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일본인들의 키도 급격히 커지기 시작했다. 2016년 국제적 역학 연구 그룹 NCD 리스크팩터 컬래버레이션(NCD-RisC)이 세계 200개국에서 1896~1996년 100년 동안 태어난 사람이 18세가 됐을 때의 키를 조사했다. 일본은 100년 새 남성은 14.6cm, 여성은 16cm 커져 세계에서 다섯째로 키가 많이 큰 나라였다.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던 일본인들의 키가 최근 30년째 전혀 크지 않은 데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있다. 1999년 일본산부인과학회는 체질량지수(BMI)가 18~24인 여성이라면 임신 중 몸무게를 7~10㎏ 이내로 불리는 게 권장된다고 지도했다. 다른 나라보다 현저하게 적은 수치다.

1980년께 일본에서 임신 중 체중을 많이 불리지 않은 여성일수록 임신 중독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주목을 받은 영향이다. 임산부의 체중을 무리하게 제한한 결과 일본에서는 2500g 이하로 태어나는 저체중아가 늘어났다. 저체중아는 성인이 돼서도 키가 작은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국내외의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된다.

모리사키 나호 국립성육의료연구센터 사회의학연구부장은 “저체중아 증가의 영향으로 2014년 태어난 아이는 1980년에 태어난 아이보다 성인이 됐을 때 키가 남성은 1.5cm, 여성은 0.6cm 작아졌다”고 분석한다.

일본산부인과학회는 지난해에야 임산부의 적정 체중 증가량 하한선을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늘렸다.

육식을 기피하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인지 일본은 오늘날에도 이유식 조리법이 한국과 정반대다. 2016년 게이오대 방문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생후 40일인 큰딸을 일본에 데려왔다.

‘매뉴얼의 나라’ 일본답게 딸이 젖을 뗄 무렵이 되자 구청에서 이유식 조리법 책자를 보내 왔다. 한국은 아이가 자라는 데 도움이 된다며 쇠고기를 갈아 먹인다. 그 대신 알레르기와 소화 불량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밀가루 음식은 기피한다. 체내에 중금속 등이 쌓여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먹이사슬 상층부의 생선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은 반대였다. 도쿄 미나토구에서 배포하는 5~6개월에서 12~18개월까지 월령별 이유식 조리법을 보면 고기류는 일절 없다, 그 대신 흰살 생선과 우동이 포함돼 있다. 흰살 생선을 빼면 생후 18개월까지는 거의 풀만 먹여서 키운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일본인 지인들에게 이유식에 고기를 넣지 않고 우동을 포함시키는 이유를 물어보니 “일본인들 사이에서 고기는 기름져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인식이 많고 우동은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본인 평균 신장, 유전적으론 이미 상한선

이런 영향 때문인지 일본인들의 키는 이미 유전적으로 최대한 자랐기 때문에 앞으로 줄면 줄었지 더 크기는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일본 내부에서 나온다. 일본 국립이화학연구소는 2019년 일본인 약 19만 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키를 자라게 하는 유전자 변이가 도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바바 히사오 국립과학박물관 명예 연구원은 “현재 일본인의 평균 신장은 유전적으로 가능한 상한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설명했다.

한편 가뜩이나 키가 안 크는 일본인들이 더 작아질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주요국 최저 수준인 식량 자급률 때문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최근 제시한 식단의 예를 보자. 식료품 수입이 끊겨 자국산 식료품으로만 일본 전 국민이 필요한 열량을 채워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밥상이다.

아침은 쌀밥 한 그릇, 장아찌와 낫토가 전부다. 점심과 저녁도 조촐하다. 점심은 우동 한 그릇과 샐러드, 사과 5분의 1조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저녁 식사는 쌀밥 한 그릇, 채소볶음 두 접시, 구운 생선 한 토막이다.

우유는 4일에 한 잔, 달걀은 13일에 한 알, 구운 고기는 14일에 한 접시 먹을 수 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맨밥만 먹고 살아야 하는 셈이다. 후생노동성도 이런 식단을 유지하면 비타민B2·나트륨·칼슘·크롬·비오틴 부족이 우려된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가장 떨고 있는 주변국 가운데 하나다. 식량 자급률이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낮아서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0년 말 일본의 식량 자급률은 37%(열량 기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식량 자급률이 73%에 달했던 1965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캐나다·미국·프랑스의 식량 자급률(2019년 기준)은 100%가 넘고 독일도 95%로 식량 대부분을 자급하고 있다.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5.8%다. 한국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식량 수입이 끊기면 맨밥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일본은 쌀(자급률 98%)을 제외하면 자급이 가능한 곡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자급 가능한 곡물을 늘리기 위해 논을 밀 경작지로 전환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하지만 밀 자급률은 15%에 불과하다. 쌀조차 일본 국내 소비 감소로 인해 1998년 연간 생산량이 1000만 톤을 처음 밑돌았다. 2020년에는 814만 톤까지 줄었다.

일본인이 즐겨 찾는 소바는 주원료인 메밀가루 거의 대부분을 수입한다. 메밀가루를 주로 수입하는 중국에서 생산량이 줄자 올 들어 일본의 소바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채소 자급률은 76%로 안정적이지만 섬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어패류 자급률은 51%까지 떨어졌다.

빵과 면류의 재료인 밀가루와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 대두는 수입국 편중이 과제로 지적된다. 옥수수는 99%를 미국과 브라질, 밀가루는 85%를 미국과 캐나다 두 개 나라에서 수입한다. 대두는 미국 수입 의존도가 75%에 달한다. 마이니치신문은 “주요 수입국들이 이상 기후나 재해, 분쟁에 휘말리면 일본이 식료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