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1977년 가을 어느날. 서울 변두리 한 동네에 사는 한 초등학교 3학년생은 해질 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동네 빵공장 앞을 지나가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을 느꼈습니다. 빵 냄새는 상상 이상의 자극이었습니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사달래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집 앞에 다다르자 망설였습니다. 엄마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책가방을 던져 놓고 사라졌다가 해가 진 후 들어가면 깨지기 일쑤였으니까요. 소년은 평소 놀던 동네 공터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빵보다 자유를 택한 겁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있는데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바람을 타고 ‘크림빵’ 봉지가 쓸쓸히 날아가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시각과 조금 전 맡은 빵 냄새가 격렬히 결합해 간절한 소망으로 승화합니다. ‘저 빵 봉지를 빵이 들어간 것으로 바꿀 능력이 있는 마술사가 돼야겠어.’ 소년에게 처음 꿈이 생긴 순간입니다. 가난과 배고픔은 꿈을 꾸게 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소년의 꿈이 깨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선생님은 ‘마술 허구’라고 알려줬습니다. 동심을 파괴한 선생님의 미운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간,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습니다.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가라고 단칼에 무시해 버렸습니다. ‘쩝, 참자.’ 그런데 몇 분 후 부잣집 아이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니 선생은 그러라고 하는 겁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왜 차별 대우하냐”고 따졌습니다. 선생님은 시끄럽다고 무시했지만 이유를 설명해 달라며 계속 씩씩거렸습니다. 결국 화장실을 갈 수 있었습니다.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그냥 웃기만 하는 어머니가 야속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친근한 표정을 짓더니 “너는 커서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억울한 사람 편에서 지켜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따지기도 잘하고”라고 답했습니다. ‘그렇지 나처럼 차별 대우 받는 사람들을 지켜 줘야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 꿈이 생긴 날이었습니다.

변호사. 물론 이 꿈은 대학 들어가자마자 멀리 날아갔습니다. 1987년 입학한 게 문제였습니다. 데모의 한길로 매진하며 대학 생활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변호사는 ‘약자의 편에서 법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2022년 한국 드라마는 변호사를 대거 불러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천원짜리 변호사’, ‘닥터 로이어’, ‘왜 오수재인가’, ‘로스쿨’, ‘법대로 사랑하라’ 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아마도 다른 영웅, 선한 영웅을 찾고 싶은 심리의 반영 아니었을까 합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재능을 법률적 약자를 위해 쓰는 작은 영웅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것이지요. 영화가 검찰과 경찰이 등장하는 누아르 장르에 집중했다면 드라마는 더 친근한 소재를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2022년 베스트 로펌, 베스트 로이어’로 준비했습니다. 기업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인 사내변호사협회 소속 2145명의 변호사들에게 설문을 돌린 결과입니다. 그리고 로펌을 창업한 원로 세 분과 진행한 인터뷰도 담았습니다. 변호사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이 가져야 할 소명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졌습니다.

베스트 로펌에 선정된 법무법인 그리고 베스트 로이어에 선정된 변호사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변호사들을 생각하며 이번 호를 제작했습니다.

변호사, ‘attorney’의 어원은 프랑스 고어 ‘atorne’에서 왔다고 합니다. ‘one appointed’ 지명된 자란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을 때 나를 도와줄 단 한 사람의 존재’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법무법인 태평양 창업자인 김인섭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조인은 자신을 위해 태어난 직업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소명의식이 사라진 시대, 존경받는 변호사들이 더 많이 탄생하길 기대하며 글을 닫습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