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재고↑, 영세 딜러 벼랑 끝
롯데렌탈‧케이카 등 1년 새 주가 반 토막
반년 전만 해도 중고차 업체는 역대급 호황을 누렸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신차 출고가 지연됐고 기다리다 지친 소비자들이 중고차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따금씩 신차급 중고차들은 신차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치솟는 금리는 판을 뒤집어 버렸다. 중고차도 목돈이 들어 대출 금리가 뛰면 수요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또 중고차 구매자 대부분은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아 추가 비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애당초 금리도 신차 시장보다 높다. 2022년 12월 중고차의 평균 대출 금리(36개월 할부 기준)는 약 18%다. 법정 최고 금리인 19.9%에 육박하는 업체들도 나오고 있다.
이 상황에 2023년부터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이 뛰어든다. 대변화를 코앞에 둔 중고차 시장을 3가지 관점에서 집어 봤다.
◆빨간불을 가리키는 숫자들
‘보릿고개.’ 현재 중고차 시장 상황이다. 가격은 내려가는데 재고는 쌓였다.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중고차 업체는 2022년 11월까지 96만227대를 사들였지만 84만7673대밖에 팔지 못했다. 11만2554대가 재고로 남았다. 이는 2021년 발생한 재고 물량(6만3840대)의 1.8배로 역대 최대다.
차량이 크고 가격이 높을수록 더 안 팔린다. 2022년 쌓인 재고 차량 중 절반(52%) 이상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싼타페·쏘렌토·투싼 순으로 재고 비율이 높았다.
일부 모델은 가격도 뚝뚝 떨어졌다. 엔카닷컴에 따르면 ‘국민차’로 꼽히는 현대차 그랜저IG(2019년식‧무사고‧주행거리 6만km)는 2022년 1월 평균 시세가 2455만원, 상단이 2891만원이었다. 12월 평균 시세는 2340만원, 하단은 1959만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재고가 많이 남은 현대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2019년식‧무사고‧주행거리 6만km)의 평균 시세도 각각 2953만원, 2779만원에서 2879만원, 2577만원으로 내려왔다.
◆딜러 대출은 줄고 소비자 할부는 늘고
원인은 재고 금융(중고차 매입 자금 대출) 축소와 금리 인상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딜러들의 수익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중고차 매매업자들은 대부분 재고 금융을 통해 매입 자금을 조달한다. 차량이 팔리면 대출금을 갚고 마진을 남긴다.
하반기 들어 고금리와 레고랜드발 채권 시장 불안정이 겹치며 캐피털사들이 자금줄을 옥죄기 시작했다. 재고 금융은 연초 대비 30% 이상 감소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예전엔 현대캐피탈 등에서 딜러에게 5억~6억원 정도 빌려줬지만 지금은 대출을 막았다. 자금이 없으니 영업 활동이 위축되고 폐업하는 일이 늘고 있다. 딜러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셈”이라며 “이 같은 기조는 2023년 상반기까지 갈 확률이 높다”고 예상했다.
중고차 딜러 B 씨는 “대출을 받을 수 있어도 금리가 높으니 중고차 경매장에서 차량을 사기 두렵다”며 “중고차 경매장에선 유찰되는 차량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중고차 할부 금리가 20% 가까이 치솟았다. 소비자들의 발걸음도 끊기며 시장이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중고차 관련주의 ‘대장주’인 롯데렌탈과 현재 업계 1위인 케이카의 주가는 1년 새 반 토막이 났다. 다만 증권가에선 중고차 거래 위축이 단기적 악재는 맞지만 향후 중고차 시장의 성장성과 기업들의 실적을 고려하면 한국 중고차주가 저평가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23년, 대기업 진출로 반등?
현대차와 기아는 인증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2023년 상반기 인증 중고차 판매 시범 사업을 시작하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다.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2022년 4월 2023년 5월부터 현대차와 기아가 중고차 판매 사업을 개시할 수 있다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2023년 1월부터 각각 5000대 이내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시범 판매도 허용했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는 중소기업과 상생 차원에서 5년, 주행 거리 10만km 이내의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한다.
김 교수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들어오면서 허위·미끼 매물이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신차를 사려던 소비자들이 유입될 수 있다”며 “시장 자체는 어렵지만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시장에 들어오면서 반등을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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