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머니’ 의존도 줄이기 위해 ‘네옴시티’ 등 다양한 프로젝트 진행…첨단 산업에 초점

[비즈니스 포커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의 모습. 카타르 월드컵은 그간 개최됐던 월드컵 중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월드컵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의 모습. 카타르 월드컵은 그간 개최됐던 월드컵 중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월드컵으로 알려졌다.(사진=연합뉴스)
1970년대 ‘오일 머니’로 막대한 부를 쌓은 중동의 산유국들이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나섰다. 전 세계 건설사들이 모두 뛰어들었다. 특히 한국 건설사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이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표적 사업이 1976년 현대건설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따낸 주베일산업항 프로젝트다. 9억4000만 달러 규모로 한국 예산의 4분의 1에 달하고 외환 보유액의 30%를 넘었다. ‘중동 붐’을 타고 한국 건설사들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한국 경제의 부흥에 큰 역할을 했다.

50년이 지나 제2의 중동 붐이 일고 있다. 시작은 중동의 변화다. 반세기 동안 중동의 이미지는 많이 변했다. 사상 최대 투자 금액인 약 2200억 달러를 투자한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전 세계 각국에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계기가 됐다.

스포츠 분야에 카타르 월드컵이 있었다면 2022년 경제계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는 ‘미스터 에브리싱’의 내한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네옴 시티’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한 기업들의 각축전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네옴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 사막 지역에 서울의 40배가 넘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으로 사업비만 67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이기 때문이다.

고유가 의존 대신 ‘석유 없는 미래’ 대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초대형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에 시동을 거는 것은 사상 최대의 고유가로 중동 경제가 호황을 누린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7.6% 증가해 1조 달러를 처음으로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은 2022년 경제성장률을 전년 대비 1.6%포인트 높은 5.4%로 예측했다. 중동 지역의 주요 프로젝트로는 앞서 언급한 네옴시티, 아부다비의 420조원 규모 첨단 미래 산업 육성 정책 ‘경제 비전 2030’ 등이 있다.

중동의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것’이 아니다. 최근 중동 국가들은 ‘석유 없는 미래’를 준비 중이다. 이는 최근 에너지 시장의 변화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에서 중동산 석유를 대체할 셰일 가스가 발견됐고 셰일 가스의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난다는 것도 중동산 석유의 영향력을 갈수록 감소시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이 속해 있는 중동아시아·북아프리카(MENA) 지역은 30세 미만 청년 인구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국가’다. 단순히 국민의 평균 연령을 넘어 중동은 개혁과 개방을 추진 중이고 이에 따라 다양한 산업군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청년층의 실업 해소를 위해 첨단 산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중동 붐이 50년 전과 다른 점은 건설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산업군에 투자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인프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보기술(IT)을 비롯한 첨단 산업 투자가 필수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중동 국가들은 자원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그간 벌어들인 오일 머니를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에 투자를 지속 중이다.

재계에서도 중동의 입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예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로 중동을 택했다. 2022년 12월 6일 UAE 아부다비에 있는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았다. 바라카 원전 프로젝트는 한국 최초의 해외 원전 건설 사업으로 삼성물산을 포함한 ‘팀 코리아’ 컨소시엄이 수주했다.
IT부터 문화까지…50년 만에 다시 큰판 벌어진 중동 시장

30세 미만 청년 인구가 절반인 ‘젊은 지역’

중동 지역 국가들은 IT 사회로 전환에도 역점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중동에서는 금융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KOTRA에 따르면 중동에서는 모바일 지갑, 선구매 후불 결제 카드(BNPL) 등 디지털 결제가 빠르게 확산 중이다. 2021년 상반기 기준 중동의 핀테크 투자 금액은 총 391억 달러, 핀테크 기업 수는 800개 이상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중동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교육·물류·헬스케어·공공 영역 등 각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정책적으로 추진 중이다. 기반이 되는 클라우드 인프라에도 투자를 진행 중인데 2027년까지 중동의 퍼블릭 클라우드 시장은 연평균 21%, 98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와 함께 데이터센터를 건설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바레인과 UAE에 클라우드 리전을 오픈했다. 한국에서는 스타트업 베스핀글로벌이 UAE IT 서비스 업체 이앤엔터프라이즈에서 약 14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번 투자를 계기로 이앤그룹과 베스핀글로벌은 중동·아프리카에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설립한다.

중동 붐에서 또 하나 기대되는 분야는 ‘문화’다. 빈 살만 왕세자는 문화 개방 정책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을 추진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는 음악·연극·영화 등 문화 예술과 관련한 11개 분야를 관리 감독하면서 문화 생태계를 개발하기 위한 문화 변혁을 주도하고 있다.

‘문화 강국’인 한국은 다양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벌써부터 한국 엔터사들의 중동 진출 소식이 들려온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와 SM엔터테인먼트는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부와 문화 분야의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22년 11월 29일 양 사는 문화 기술을 기반으로 사우디팝(S-Pop) 프로듀싱, 현지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한 오디션 개최와 트레이닝 시스템 구축, 스튜디오 설립, 사우디아라비아 내 초대형 콘서트 개최 등의 업무를 협업한다. 여기에 빈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PIF)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투자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중동 특수를 노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산업은 ‘게임’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직접 게임사 인수에 나서는 등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운영하는 국부펀드 PIF는 2022년 엔씨소프트와 넥슨 주식을 지속적으로 사들였다. PIF는 한국 게임사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게임사들의 지분도 연달아 사들이고 있다. 게임은 물론 메타버스와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등 신사업에도 교두보를 넓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