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글에는 지난 정부에서 투기꾼 취급을 받았던 다주택자를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끌어들이는 정책, 집값 폭등기에 무리해 집을 샀던 영끌족의 비애,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를 기다리며 금리 인하만 쳐다보는 무주택자의 소망이 모두 담겨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왜 효과가 없는지를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부동산 시장에 한파가 닥치면서 정부는 2022년 부동산 규제 정책을 대거 완화했다. 서울·과천·성남 등 5곳을 제외한 100여 곳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고 규제지역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을 허용했다. 또 무주택자와 1주택자(기존 주택 처분 조건)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50%로 단일화했다.
잇단 규제 완화에도 매매·전세 가격이 잡히지 않자 이번에는 다주택자를 투기꾼이 아닌 부동산 시장의 ‘공급 주체’로 인정했다. 높은 금리에 1주택자와 무주택자가 움직이지 않으니 자산 규모가 큰 다주택자들에게 세금을 깎아 주고 각종 규제를 풀어줄 테니 집을 더 사라는 조치였다.
이런 정책은 정부가 2022년 12월 21일 발표한 ‘2023년 경제 정책 방향’에 담겨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지난 정부에서 실시했던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규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취득세·양도세 중과 및 규제지역 내 대출 규제 등을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내 풍자처럼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더 사라며 정책 방향을 뒤집은 것이다. 이번 규제 완화의 핵심은 다주택자도 규제지역에서 집값의 최대 30%까지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고 취득세 중과세율을 폐지하거나 줄이는 것이다. 사실상 폐지됐던 아파트의 등록 임대 사업도 부활한다.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자. 우선 2023년 5월 9일로 끝나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조치는 2024년 5월 9일까지 1년 연장된다. 단기 양도세율은 2020년 이전 수준으로 환원한다.
최고 70%까지 매겼던 분양권과 주택·조합원 입주권 양도세율에 대해 분양권 취득 후 1년 안에 팔면 현행 70% 대신 45% 세율을 적용하고 1년이 지나 팔면 현행 60% 대신 기본세율(6~45%)을 적용한다. 또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를 위한 법령 개정안은 2023년 2월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다만 취득세 중과 완화, 분양권과 입주권에 대한 단기 양도세율 완화 등은 모두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방안이 확정되면 3가지 부동산 세금이 모두 줄어든다.
다주택자에게 적용되는 대출 규제도 완화한다. 현재 규제지역에서 원천 봉쇄된 다주택자 주택 담보 대출은 LTV 30%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또 생활 안정이나 임차 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택 담보 대출 규제도 완화한다.
이에 따라 규제지역에서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 세입자에게 임차 보증금을 줄 목적으로 주담대를 받은 경우 집주인의 3개월 내 전입 의무가 폐지된다. 또 현재 50%까지 적용되는 무주택자의 규제지역 LTV는 시장과 가계 부채 여건을 살펴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임대 사업자 제도’도 사실상 부활한다. 전용 면적 85㎡ 이하 아파트가 대상이다. 주택 규모에 따라 60㎡ 이하 아파트를 신규 매입 임대하는 사업자에 85~100%, 60~85㎡의 경우 50%의 취득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취득가액 요건은 수도권 6억원 이하, 비수도권 3억원 이하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 방침이 거래 절벽 해소에 긍정적이겠지만 단기간에 시장 침체 상황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봤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크지 않은 데다 대출 이자 부담마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7% 선에 다다른 주택 담보 대출 금리와 대출 규제의 핵심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역시 여전히 매수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또 다주택자들이 추가로 구입하기 원하는 주택은 규제가 남아 있는 5곳에 집중돼 있고 이 지역마저 풀면 어떤 역효과가 날지도 미지수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규제들이 완화되는 만큼 일부 급매물이 소화되고 실거래를 유도하는 등 급격한 가격 하락을 막는 데 다소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민간 등록임대에 대한 혜택이 크게 개선되면서 집값 하락이 상대적으로 컸던 수도권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문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수요가 높은 지역은 다시 살아나고 신규 입주 등 주택 공급이 많은 지역은 부동산 침체기가 이어지는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일부 급매물 소화와 시장 연착륙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여유 계층의 알짜 지역 경매·급매물 유통은 이뤄지겠지만 신규 입주 등 주택 공급이 많거나 가계 대출 비율과 다중 채무자가 집중된 지역은 수요 진작에 한계를 보이는 양극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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