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중 상당수는 바지 사장…극단적 갭 투자는 ‘벼랑 끝 전술’일 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연합뉴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연합뉴스
요즘 회자되는 화두는 단연 ‘빌라왕’으로 대표되는 전세 사기다. 건축주·중개인과 컨설팅 업체로 불리는 브로커 등이 공모해 바지 사장을 내세워 사회 초년생과 같은 서민의 등을 친다는 내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체 피해자의 69%가 20~30대라고 한다.

그러면 이런 전세 사기는 왜 아파트보다 빌라에서 많이 발생할까. 아파트는 시세 파악이 쉽다. KB국민은행이나 네이버와 같은 사이트에 접속하기만 하면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아파트 시세를 손바닥 보듯 누구나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공시가나 매매 사례가 없는 신축 빌라는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전세 사기는 주로 신축 빌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빌라왕, 명의만 빌려준 바지 사장 그러면 이런 빌라 전세 사기는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 이런 수법이 최근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이런 문제는 있었지만 수면 위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심지어 이런 전세 사기에 가담한 건축주·중개인·브로커·바지 사장 등도 본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보다 관례에 따른 정상적인 사업 행위를 한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

빌라의 전셋값이나 매매가가 꾸준히 오른다면 이런 전세 사기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매매가가 2억원인 빌라에 어떤 세입자가 2억원에 전세로 들어있다고 가정해 보자. 2년이 지나 그 빌라의 전셋값이 2억2000만원으로 올랐다면 이전 세입자는 2억원의 전세금을 돌려받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 터이고 바지 사장은 2000만원의 공돈이 생겼을 것이다. 이 바지 사장이 100채의 빌라를 가지고 있다면 2년 만에 2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셋값이 오르기는커녕 하락한 것이다. 전셋값이 2억원에서 1억8000만원으로 떨어진다면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2000만원을 돌려줘야 한다. 빌라 100채를 가지고 있다면 20억원을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빌라왕은 무일푼인 사람이므로 그 순간부터 자산가로 알고 있던 사람이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물론 빌라왕 김 모 씨는 정상적인 투자자는 아니다. 단순히 집 욕심이 많아 집을 사 모은 사람이라면 주택 임대 사업을 신청했을 것이다. 7·10 조치 이후에도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주택 임대 사업을 신청할 수 있었고 주택 임대 사업을 신청했다면 60억원이 넘는 종부세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주택 임대 사업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은 본인 소유의 빌라를 장기 보유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행으로 빌라 값이 올라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면 진짜 자산가가 되는 것이고 빌라 매매가나 전셋값이 떨어지면 모든 것을 포기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바지 사장이라는 자리는 원래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빌라왕은 자산가가 아니라 컨설팅 업체라고 불리는 브로커가 건네 주는 몇 푼의 수고비(리베이트)를 받고 명의를 빌려준 것이고 실제 대부분의 이익은 그 건물을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넘긴 건축주와 그 건축주에게 리베이트를 받은 브로커라고 할 수 있다.본인도 모르는 사이 탄생한 빌라왕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이미 충분히 보도된 빌라왕의 문제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빌라왕 흉내를 내는 사람들 때문이다. 빌라왕은 브로커에게 리베이트라도 받았지, 리베이트도 받지 않고 본인의 돈으로 자발적으로 빌라왕이 되려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극단적 갭 투자자다.

넓은 의미의 갭 투자는 예전에도 있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매매가와 전셋값의 차액(gap)만 있으면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본이 적은 사람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특히 부모님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 초년생들은 적은 자본으로 전세를 끼고 내 집 마련 시기를 당길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나중에 돈이 더 모이면 전세를 내보내고 그 집에서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성행했던 좁은 의미의 갭 투자는 이와 다르다. 충분한 자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자산이나 소득 수준에 맞은 주택을 사기보다 다수의 저가 주택에 투자하려는 것을 극단적 갭 투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의 논리는 한두 채의 집을 보유하는 것보다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하게 되면 2년마다 전세금이 오르니 현금 흐름이 확보되고 이 자금으로 생활해도 되고 추가 투자해도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몇 십 채의 집을 얼마나 빨리 매집할 수 있는가가 이들의 주요 관심사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한 번도 역전세란이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생 동안 한 번이라도 역전세란을 맞게 되면 줄줄이 경매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요행을 바라는 벼랑 끝 전술인 것이다.

문제는 다수의 저가 주택에 투자하는 이런 극단적 갭 투자가 무슨 투자의 새로운 기법인 양 강의하거나 책을 쓰는 사람도 있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처럼 투자를 엉뚱하게 배워 전혀 투자 가치가 없는 곳에 주택 수만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한다. 이들은 이번 하락장에서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집값이 떨어질 테니 투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돈 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집값은 오를 것이고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사는 한 꾸준히 투자는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투자도 리스크 관리를 하면서 해야 한다.

2008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었다. 수치상으로는 더 이상 주택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주택이 턱없이 부족했던 과거처럼 아무것이나 사 놓으면 오르던 시절은 끝났다. 현재 부족한 것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곳에 있는 양질의 주택이다. 지금은 옥석을 구별해 투자해야 할 시대라는 뜻이다.

빌라를 100여 채 보유한 빌라왕 김 모 씨는 자산가가 아니다. 자산가는 순자산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 부채를 빼면 무일푼인 사람에게 붙이는 타이틀이 아니다. 갭 투자라는 이름으로 리베이트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빌라왕 흉내 내는 것을 투자라고 착각하지 말자.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