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꺾인 건설사들…실수요자라면 시장 추이 꼼꼼히 살필 때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한국경제신문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 한국경제신문
올해 주택 매수를 앞둔 수요자들에게 큰 장이 열릴 전망이다. 일단 콧대 높던 분양 시장이 꺾였다. 금리가 치솟아 주택 구매 여력이 낮아지고 주변 시세가 떨어지면서 신축 아파트에 대한 매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분양 주택 증가율은 지난해 11월 7년 만에 새로운 숫자를 찍었고 주요 건설사들은 할인 분양에 돌입했다. ‘청약 불패’라던 서울 시장까지 수분양자에게 판촉 차원의 혜택을 줄 정도다. 청약이 끝나고 입주를 앞둔 아파트들도 안심할 수 없다.

청약 문턱을 겨우 넘었어도 주변 시세가 낮아져 계약을 포기하는 입주자들이 발생하면 이 역시 준공 후 ‘미분양’이다. 아파트를 다 짓고 입주를 완료한 뒤에도 분양이 마무리되지 않은 경우다. 준공 후 미분양은 ‘악성 재고’로 취급되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이를 털어내기 위해 분양가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건설사들에는 위기여도 수요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한문도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미분양이 악화되면 건설사는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고 수요자에게는 2010년 강남 미분양 시절의 ‘착한 분양가’가 다시 도래할 수 있다”며 “입지가 좋은 곳들은 선전하고 버티겠지만 규제 완화 때문에 입지가 조금만 떨어지거나 분양가에 저항이 있는 단지들은 ‘참패’를 당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건설사가 아닌 조합원들이 직접 움직일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 역시 “건설사가 도급사로만 참여한 경우 할인 분양했을 때 건설사의 공사비도 타격을 받기는 하지만 할인 분양을 해서라도 돈이 회전돼야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울며 겨자 먹기로 분양 대행사를 끼고 할인 분양과 판촉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1. 미분양, 어느 정도로 심각하길래?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가장 최근 통계인 지난해 11월 한 달 만에 미분양 주택이 1만 가구 넘게 급증했다. 한 달 만에 미분양 주택이 1만 가구 넘게 늘어난 것은 약 7년 만이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5만8027가구다. 치솟은 금리와 경기 침체 그리고 얼어붙은 주택 매수 심리 등이 미분양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분양 증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데다 상반기에는 신규 분양 물량과 지역별 입주 물량까지 몰려 있어 미분양 주택 수가 10만 가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수도권도 미분양이 나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증가 추이가 더욱 가파르다. 지난해 11월 수도권 미분양 주택 수는 1만373가구로 전월 대비 36.3%(2761가구) 급증했다.

지난해 12월 청약도 심각한데 신규 분양에 입주 폭탄까지 예정돼 있어 미분양 주택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지난해 12월 청약을 진행한 아파트 단지 36곳 가운데 1순위 마감에 실패한 단지는 22곳(61%)에 달한다. 전국의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도 2.3 대 1 수준이었다.

지방 단지 20곳 중 1순위 청약 마감에 성공한 단지는 4곳뿐이다. 지방의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은 1.1 대 1로 낮았다. 특별 공급과 1순위 청약 신청을 단 1건도 받지 못한 단지도 3곳이나 나왔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분양이 이어진다. 특히 분양 일정을 잡은 물량 중 64% 이상이 상반기에 집중돼 있어 미분양 발생 우려가 높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시공 능력 평가 상위 100위 내 민간 건설사들이 분양 일정을 확정한 물량은 21만3595가구다. 그중 상반기에 13만7578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2. 집값 떨어지는데, 건설사는 왜 상반기 분양에 나설까? 상반기에 분양 예정 물량이 집중된 이유는 지난해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분양 시점을 늦췄던 건설사들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서둘러 분양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분양 물량 가운데 27% 정도가 분양을 미뤘다.

입주 물량도 미분양 주택 증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는 경기도·인천·대구 등의 지역에 역대급 입주 물량이 공급될 예정인데 이들 지역의 전셋값 하락 폭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셋값이 하락하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투자 물건들이 시장에 풀리면서 매매 가격을 끌어내리게 되고 이는 신규 분양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35만2031가구(임대 포함)의 아파트가 입주를 앞두고 있고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는 경기(10만9090가구), 인천(4만4984가구), 대구(3만6059가구), 충남(2만6621가구) 등에 집중돼 있다. 대구는 2000년 조사 이후 최다 물량이, 인천은 2년 연속 4만 가구 이상이 입주한다. 3. 아파트 미분양, PF업계 또다른 도화선 될까? 아파트 미분양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업계와 금융 시장에 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PF 사업 시장이 이미 살얼음판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PF는 아파트·오피스텔·상가 등을 짓는 개발 사업의 미래 수익성을 보고 담보 없이 사업비를 빌려 주는 투자 기법이다. PF 대출을 내준 금융회사나 보증을 선 건설사는 사업이 좌초되면 재무 건전성이 급격하게 악화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지난해 3분기 금융권 PF 대출 규모는 140조6000억원을 찍었다.

한 증권업계 PF 담당자는 “이미 PF 사업장 90% 이상이 멈춰 있다”며 “사업성이 나와야 하는데 사업비의 큰 축인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너무 올라 PF 자금 조달 금리가 기존 7%선에서 6개월 만에 15%까지 뛰어도 투자자들이 붙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규 PF 대출이 막히고 기존 PF 대출 차환이나 만기 연장도 어려운 상황이라 일반 분양 계약자들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사업비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기존 주택 매수 수요가 실종한 상황에서 아파트 청약 시장마저 극도의 불황을 맞으면 건설업계가 ‘도미노 자금난’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경고음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공사현장. 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공사현장. 연합뉴스
4. 정부, 둔촌주공 ‘구원투수’로 나선 이유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규제 완화책을 꺼내 들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급한 불로 ‘둔촌주공’을 택했다고 본다.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가 재건축 최대어인 둔촌주공을 살리고 보자는 심정으로 규제 완화책을 꺼내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혜택이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강동구 둔촌주공재건축(올림픽파크 포레온)은 1월 3일부터 정당 계약에 들어갔다. 최초 청약 당첨자들이 실제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다. 부동산업계는 이번 둔촌주공 계약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건축 최대어인 둔촌주공 청약 당첨자들이 청약을 포기해 미계약이 발생하면 주변 단지뿐만 아니라 상반기에 대거 예정된 입주 단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서울 강남 3구와 용산구만 남기고 부동산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투기지역)을 해제한 이유다.

정부가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는 둔촌주공에 미계약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대출 등 자금 공급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분양가 완납 부담이 커지며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단지는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2년 실거주 기간을 충족해야 하고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이 8년으로 길었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규제 완화책이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84㎡ 당첨자들도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설령 ‘무순위 줍줍’ 물량이 나오더라도 ‘거주지’, ‘주택 보유’ 등 각종 규제가 사라지면서 자금 여력이 있는 유주택자들이 매입할 기회가 생겼다. 분양가 상한제도 해제됐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게 되면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고 전매 제한 기간도 최대 10년에서 3년(수도권 기준)으로 대폭 줄어든다.

중도금 대출 제한도 폐지되면서 둔촌주공 수분양자들도 대출을 받아 중도금을 치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높은 분양가는 여전히 발목을 잡는 요소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강동구보다 상급지로 평가되는 송파구 헬리오시티 84㎡(21층)가 지난해 12월 23일 16억5000만원에 거래된 데다 최근 15억원 중반까지 호가가 내려간 상태다. 매수 대기자들은 2019년 가격(14억원대)까지도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