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재정 지원으로 도시 발전이 주목적…일본 ‘고향 납세제’와 비슷하지만 달라
[비즈니스 포커스] 2023년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은 수도권에서 거주하고 있다. 지방 도시들은 이제 발전이 아닌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2047년이면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도시가 사라질 것이란 예측까지 나온다.이미 골든 타임이 지났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사라져 가는 도시들을 가만히 바라볼 수만은 없다. 인구 유출로 재정 자립이 어려워진 도시들을 돕기 위해 2023년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작됐다. 열악한 지방 재정을 지원하면서 도시 간 균형 발전을 이끌겠다는 목적이다.
손흥민부터 제이홉까지 유명인 기부 이어져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고향에 기부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모아 주민 복리에 사용하는 제도다. 여기서 ‘고향’은 기부자 본인의 주민등록본상 거주지를 제외한 지역자치단체를 말한다. 즉 거주지만 제외하면 전국 어느 도시에나 기부가 가능하다.
기부는 오직 개인만이 할 수 있고 타인의 명의나 가명 기부는 불가능하다. 연간 최대 한도는 500만원이다. 세액 공제 비율은 10만원 이하 100%, 10만원 초과 16.5%다. 만약 10만원을 낸다면 10만원을 세액 공제로 돌려받고 3만원 상당의 답례품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는 소액 기부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고향 사랑 기부의 목적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확충하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지자체 평균 재정 자립도는 48.7%에 불과하다. 수도권과 지방의 재정 자립도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격차를 좁히기 위해 기부금은 지역 주민 복리 증진에 기여하는 곳에 쓰인다. 또 사회적 취약 계층을 돕고 청소년 보호와 육성, 지역 공동체 활성화 지원에 기부금을 지출하기도 한다.
기부 방법으로 온라인은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고향사랑e음’을 통해 이뤄진다. 오프라인 대면 접수 창구로는 NH농협은행을 지정했다. 농협은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고향사랑기부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석용 NH농협은행 신임 은행장도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NH농협은행 본점 영업부를 찾아 고항 사랑 기부금을 납부하고 ‘NH고향사랑기부예금’ 가입 행사를 열었다. 농협의 고향사랑기부예금은 기부 참여자에게 최대 0.6% 우대 금리를 제공하고 연간 판매액의 최대 0.1%를 공익 기금으로 적립해 지역 사회 발전에 활용하는 상품이다.
시행 초기인 만큼 유명인들의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춘천 출신’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소속 축구 선수 손흥민은 지난 1월 5일 고향사랑e음을 통해 춘천시에 최대 금액인 500만원을 기부했다. 춘천시는 손 선수의 부친인 손웅정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은 고향인 광주 북구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제이홉은 광주 북구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이 밖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고향인 충북 음성군에, 나영석 CJ ENM PD도 고향인 충청북도에 기부했다.
기부자들이 기부하고 받을 수 있는 것은 기부에 대한 세액 공제와 기부한 고향의 답례품이다. 특히 공적 사업인 만큼 홍보에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답례품을 선정하느냐가 곧 지자체의 ‘마케팅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선 등록된 것들은 청송 사과, 영광 굴비, 성주 참외 등 각 지역의 특산품이다. 기부자들은 가장 많은 비율로 특산품들을 선택하고 있다.
공산품과 체험 서비스도 인기다. 대전광역시 빵집 ‘성심당’의 선물 세트, 전남 장성군이 제공하는 백양사 1박 2일 템플 스테이가 눈에 띈다. 경남 의령, 경북 경주는 산소 벌초 서비스를 내놓았다. 삼림조합과의 논의를 통해 원하는 시기에 무료 벌초를 받을 수 있다. 경북 울릉군은 울릉크루즈 스위트룸 왕복 티켓을 선정했다.
광주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기부자의 이름을 새겨 주는 ‘네이밍 도네이션’을 도입했다. 10만원 이상 기부자는 희망하는 이름을 1991년 개관한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 좌석에 새겨 준다
전남 영암군은 ‘천하장사와 함께하는 식사권’을 답례품으로 올렸다가 이달 중 씨름 대회가 열리는 점을 고려해 답례품 명단에서 배제해 놓은 상태다. 이 답례품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큰 관심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답례품 과열 경쟁은 막아야
한국보다 유사한 제도를 먼저 시행한 곳은 일본이다. 일본이 2008년부터 도입한 ‘고향 납세제’는 도입 당시 865억원에서 2021년에는 8조3024억원으로 96배 증가한 기부금을 모으며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방식은 한국과 비슷하다. 역외 주민이 기부금을 지역에 보내면 지역 활성화의 자금으로 활용한다. 각 지역은 이에 대한 감사로 답례품을 보낸다. 참고로 일본의 고향 납세제는 거주하는 지역에도 기부할 수 있지만 그 대신 답례품은 받지 못한다.
일본의 고향 납세제는 이미 시행된 지 15년이 된 제도다. 이미 안정화에 들어선 만큼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일본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발생한 부작용 중 하나는 지자체 간 제공하는 답례품의 과잉 경쟁이다. 일본의 고향 납세 제도는 특정 지자체에 기부한 후 기부 금액을 거주 지자체에 신고하면 그만큼 공제를 해 준다. 이는 곧 거주민이 다른 곳에 납세하면 세수를 빼앗기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가 국가 재정의 지방 이전을 노렸다면 일본은 지자체 간 재정 이전에 초점을 맞췄다.
이에 따라 일본의 도시들은 기부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매력적인 답례품을 내놓는 것에 몰두했다. 고급 가전부터 식자재와 상품권 등 마치 온라인 쇼핑몰을 방불케 하는 답례품 리스트가 짜여졌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2019년에는 일본의 한 지자체가 아마존 상품권을 답례품으로 제공해 고향 납세 제도에서 제외된 일도 있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정부는 답례품에 대해 개인별 기부금 총액의 30% 이내로 정했다. 또 지자체는 답례품과 공급 업체의 공정한 선정을 위해 ‘답례품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농축수산물·가공식품·생활용품·관광 서비스·지역 상품권 등 2000여 종의 답례품 리스트가 짜여졌다.
이제 막 제도가 시작된 만큼 고향사랑기부제는 유명인들의 참여와 지자체장들의 상호 기부 등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향후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부금의 적절한 사용처를 밝히고 일회성에 그치지 않게끔 후원자와 지자체 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또 답례품에 지역의 특색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양질의 상품을 선정하는 것도 제도의 성공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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