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기술 스타트업 ⑩ - 한국그린데이터

[ESG 리뷰]
이호준 한국그린데이터 대표.사진=김기남 기자
이호준 한국그린데이터 대표.사진=김기남 기자
태양광 패널도,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배터리도 필요 없다. 한국그린데이터의 에너지 관리 솔루션은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기존 건물의 하드웨어와 관리 시스템에 모니터링이 가능한 클라우드 솔루션을 연계만 하면 된다. 실제 건물과 동일한 형태의 3D 지도를 구현해 각 건물, 각 층, 각 객실의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한국에는 에너지 관련 인프라가 대부분 하드웨어에 집중돼 있다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도시의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건물의 에너지 전환 열풍이 뜨겁다. 에너지 모니터링 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유럽연합(EU) 차원에서는 2010년부터 건물 에너지 성능 지침(EPBD)을 채택해 건물 부문의 에너지 절약 토대를 마련했다. 2019년부터는 모든 신축 공공건물에, 2021년부터는 모든 신축 건물에 제로 에너지 빌딩 기준을 적용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2030년까지는 모든 신축 건물을 탄소 중립 건물로 짓게 된다. EPBD의 핵심에 최저 에너지 성능 기준(MEPS)이 있다. 에너지 효율성을 측정하는 잣대인 MEPS에 따라 2027년까지 F 등급을 만족하지 못하면 의무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한국은 적용 속도가 다소 느린 편이다. 한국도 올해부터 총면적 500㎡ 이상 공공건물, 30가구 이상 공공 주택에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증이 의무화된다. 제로 에너지 건축물 인증은 냉방·난방·급탕·조명·환기 등 건축물의 5대 에너지 소비를 정량적으로 평가한다. 유럽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제로 에너지 건축물에 대한 인센티브나 전문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건축물 에너지 효율화에 대한 인식도 낮은 상황이다. 에너지 업체의 대부분이 하드웨어에 집중하고 있어 오히려 디지털화 속도가 느린 시장이기도 하다.

3D 지도로 실시간 모니터링

한국그린데이터의 에너지 통합 클라우드 플랫폼 ‘그린(Green) OS’는 이러한 시장의 빈틈을 파고든 서비스다. 핵심은 시각화다. 사용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현황을 메타버스 형태의 3D 모델링 데이터 지도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건물이나 층은 붉은색으로, 에너지 사용량이 거의 없는 건물은 파란색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예약 관리 시스템(PMS), 객실 관리 시스템(RMS)과 데이터 연동을 통해 공실로 판단된 객실의 냉난방도 제어할 수 있다.

건물 규모가 클수록 이러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한국그린데이터가 호텔·리조트 등 객실이 많은 레저·스포츠용 건물에 먼저 진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호텔이나 리조트 등 여객 시설은 내부 온도가 고객 만족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가 쉽지 않다. 그만큼 공실에 낭비되는 전력량도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 방식은 여전히 전통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이호준 한국그린데이터 대표는 “호텔이나 리조트는 고객 만족도가 곧 핵심 성과 지표(KPI)다. 공실을 일일이 관리할 수 없으니 계속 같은 온도로 냉난방하게 된다. 그래서 객실 온도는 언제나 적절하다. 이 과정에서 낭비되는 전력만 관리해도 사용 전력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그린데이터 솔루션을 사용하는 아난티 가평 리조트의 전기 요금은 전년보다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줄었다. 기존 에너지 관리 서비스는 건물이 있는 곳마다 사용 계정을 다르게 구축해야 했다. 건물이 많을수록 계정 관리비도 누적된다. 또 해당 지역의 관리 시스템에서만 전력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어 현장에 관리자가 상주해야 했다. 한국그린데이터는 클라우드식 솔루션이기 때문에 등록된 기기로 언제 어디서나 전력 현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한국그린데이터의 솔루션은 구독형으로 운영된다. 클라우드 사용료처럼 쓴 만큼 요금을 내는 방식이다. 절약한 양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 방식은 계산 과정이 복잡한 데다 신뢰도가 낮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회사의 특이한 점은 다른 에너지 관리 솔루션 기업처럼 하드웨어를 동시에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그린데이터는 기존 하드웨어가 있으면 기존 장치를 유지하고 솔루션만 도입하도록 지원한다. 하드웨어는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설치한다.

열량 계산으로 개선도 점검

그렇다면 하드웨어 없이 모니터링과 제어만으로 에너지 사용이 줄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어떻게 입증해 보일까. 핵심은 열량이다. 방 사이즈와 현재 온도를 기록하고 특정 온도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계산해 열량을 산출한다. 예를 들어 섭씨 영상 27도인 실내 온도를 24도로 맞추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고 열량을 최소화하면서 고객 만족도를 점검하는 방식이다. 이 열량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본 뒤 일별·월별 인공지능(AI) 리포트를 제공한다. 솔루션을 이용하는 측장에서는 일별·월별 피크 시간대 사용량과 예약률 등을 파악할 수 있어 데이터를 관리하는 데도 유용하다.

“최종적으로는 전력 사용량을 감축하는 것이 곧 환경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재생에너지 전환 방안으로 등장한 태양광이나 ESS 역시 폐기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재생에너지는 전력을 지금보다 더 생산하기 위한 접근에 가깝죠. 한국그린데이터는 에너지를 어떻게 절약하는지에 초점을 둔 서비스입니다. 모든 부문에서 1~3%의 사용 전력만 줄여도 앞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대표의 말이다.

에너지 관리의 디지털 전환은 효율성 개선을 위한 당연한 흐름이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 개선은 소비자의 인식 변화 없이는 달성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에너지 모니터링 데이터를 관리해도 소비자의 적극적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호텔이나 리조트 등 고객들이 휴식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에는 일종의 ‘에너지 사치’가 빈발하다. 난방 장치를 끄지 않고 창문을 연다든가, 외출할 때 건물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출입 키 대신 다른 카드를 끼워 두는 등 낭비가 바로 그런 예다.

이 대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이용객을 대상으로 한 ‘유쾌한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솔루션이 파악한 객실 에너지 사용 현황을 참고해 에너지를 가장 적게 사용한 고객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회원제로 운영하는 곳부터 시작해 캠페인을 확대할 계획이다. 에코 회원 관리를 통해 가장 친환경적인 회원에게 무료 조식권을 제공하거나 쿠폰제를 도입해 숙박료를 할인해주는 등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그린데이터는 아난티·팜에이트·메가존클라우드·AWS·환경부 등 다양한 기관 및 기업과 협력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체 데이터로 만든 지도를 보고 있는 한국그린데이터 직원들.사진=김기남 기자
자체 데이터로 만든 지도를 보고 있는 한국그린데이터 직원들.사진=김기남 기자
에너지 데이터 시장 커져야

이 대표의 창업은 이번이 셋째다. 모두 에너지 관련 사업이었다. 가정용 에너지 분석 서비스부터 공장용 에너지 관리 솔루션, 레저·스포츠 분야까지 에너지를 사용하는 모든 형태의 건물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 가정용 에너지 시장은 ‘강제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공장용 에너지 분야는 지맨스·ABB 등 대형 글로벌 대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시장이었다. 그러던 중 이 대표는 우연히 코로나19 사태로 예약률이 떨어지면서 에너지 비용 고정 지출로 힘들어하는 호텔·리조트업계의 고충을 듣게 됐다.

실제로 방문해 본 현장은 디지털화와 거리가 멀었다. 이 대표는 객실과 에너지 관리를 통합해 운영하면 대규모로 전력 사용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국그린데이터는 1년 내내 24시간 운영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솔루션을 통해 낭비되는 전력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그린데이터처럼 오직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솔루션 기업은 아직 많지 않다. 건물 에너지 관리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드웨어 위주의 보조금 지원보다는 데이터 산업을 키울 수 있는 AI·메타버스 등 미래 지향적 기술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현재 정부의 지원 정책은 대부분 단발성 국책 과제에 그치고 있다. 지원 규모가 커 여러 스타트업이 수주에 뛰어들고 있지만 지원 종료 후 실제 사업화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에너지 부문 사업은 긴 호흡으로 사업 투자와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진다면 사업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초기 고객을 유치하는 일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현재 운영되는 바우처 지원 사업도 지금보다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초 열린 ‘2022 녹색 창업 우수 성과 발표 및 간담회’에서 환경산업기술원장 표창을 수상하며 한화진 환경부장관에게 에너지를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기준과 체계 마련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국토교통부와 협의해 ‘녹색 건축 인증(G-SEED)’ 시 ‘에너지 효율화 시스템’ 도입 여부에 따른 가점 제도 확대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에는 전력 관리 시스템(EMS) 의무 도입이 정부나 공공 기관에 우선 적용되고 있다. EMS는 설치 이후 관리가 더 중요하다. 실제 전력 사용 효율화 데이터가 쌓여야 알고리즘 고도화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설치에 치우친 의무 도입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 사용 건물로 확장

한국그린데이터의 2023년 목표는 초기 창업 때와 같다. ‘하드웨어 최소화, 데이터를 이용한 유의미한 결과 도출’이다. 시리즈 A 펀딩을 앞둔 한국그린데이터는 레저·스포츠 분야를 시작으로 데이터센터처럼 전력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건물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그 시작이 클라우드 관리·서비스 기업 메가존클라우드와의 업무협약이다. 메가존클라우드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본사에 한국그린데이터 솔루션을 적용해 운영할 예정이다. 삼성·배달의민족·쿠팡 등 데이터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고객에게 한국그린데이터의 에너지 비용 최적화 솔루션을 함께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여가·레저 서비스를 운영 중인 스타트업과도 협력해 나갈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중동 시장 진출을 목표로 꼽았다. 중동에는 최근 스마트 시티 붐이 일고 있다. 대규모 투자와 동시에 전력 사용량 급증에 따른 탄소 배출량 증가가 예상된다. 이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에너지 관리다. 에너지 모니터링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사용하는 고객의 인식 개선까지 달성해 친환경적 에너지 사용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회사를 만든 궁극적 목표는 환경 보호라는 대의와 맞닿아 있어요. 기업 경영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최대한 줄이는 거죠. 에너지를 효율화하는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통해 에너지 분야의 구글 애널리틱스가 될 것입니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1418호와 국내 유일 ESG 전문 매거진 ‘한경ESG’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더 많은 ESG 정보는 ‘한경ESG’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