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 주의 깊게 검토 중…삼성페이 점유율 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와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애플의 임원이 '애플페이'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애플의 임원이 '애플페이'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러블리 애플(Lovely Apple).’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1월 13일 자신의 개인 인스타그램에 사과 8알의 사진을 올리면서 쓴 문구다. 평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정 부회장이지만 이 게시물은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받았다. 작년부터 소문만 무성했던 애플페이의 한국 출시가 눈앞에 다가온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심지어 사과 8개를 찍었다는 점에서 ‘2월 8일’이라는 날짜를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도 나왔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현대카드 손잡고 연내 출시 ‘유력’

2014년 출시된 애플페이는 전 세계 74개국 약 5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간편 결제 서비스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았다. 그 사이 갤럭시 시리즈에서 제공하는 삼성페이가 한국의 단말기 간편 결제 시장을 평정했다. 만약 올해 출시되더라도 상당히 뒤늦은 타이밍에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애플페이가 제대로 정착할지가 관심사다.

애플페이의 한국 상륙은 금융업계와 정보기술(IT)업계를 아우르는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다. 애플이 애플페이를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한국 카드업계와 협상을 벌인 것은 2015년의 일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한국에 흔하지 않은 근거리 무선통신(NFC) 단말기 보급, 카드 결제 수수료, 해외 결제 승인 및 처리 등 여러 문제에 부딪쳐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애플페이의 한국 출시가 가시화된 것은 지난해의 일이다. 파트너로 현대카드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애플페이와 현대카드의 약관이 유출됐고 지난해 12월 금융감독원의 약관 심사가 끝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올해 내에 애플페이가 출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걸림돌은 남아 있다. 우선 애플페이 도입 초기부터 거론됐던 결제 방식이다. 애플페이의 NFC 결제 방식이 한국에서는 널리 쓰이지 않는 결제법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삼성페이가 기존 마그네틱 결제 단말기를 활용할 수 있는 마그네틱 보안 전송(MST : Magnetic Secure Transmission) 방식 모바일 오프라인 간편 결제를 도입해 빠르게 시장에 확산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플페이의 NFC 결제 방식은 단기간에 급속히 확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가맹점 중 NFC 단말기의 보급률이 10% 미만이기 때문이다. 만약 가맹점이 애플페이 결제를 지원하려면 NFC 결제를 지원하는 단말기를 새로 설치해야 한다. 이러한 한국의 영업 환경이 애플페이 확산에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

금융 당국이 여전히 애플페이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변수다. 1월 16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중소금융과·전자금융과 등 3개 부서가 두 달째 애플페이에 대한 법률 및 기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가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의 저촉 여부다. 애플페이의 결제 방식은 EMV(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카드가 제정한 시스템) 기반이다. EMV는 해외 신용카드 각각이 결제망에서 승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이 아닌 해외 결제망을 거치기 때문에 승인하는 과정에서 신용 정보의 유출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NFC 단말기 보급 리베이트 여부다. 한국에서는 NFC 보급률이 높지 않은데 이것은 애플페이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가맹점에서 결제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페이의 이용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당초 현대카드는 NFC 단말기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가맹점에 단말기 교체 비용의 60%를 프로모션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은 이러한 프로모션 방법에 대해서도 법을 저촉하는 행위가 아닌지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카드사 오프라인 위상 영향 미칠 듯

여러 걸림돌을 치우고 애플페이가 도입되더라도 한국에서는 삼성페이의 점유율을 넘기는 게 좀처럼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 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1월 9일 “이미 보편화된 결제 수단이 있는 상황에서 애플페이 도입이 스마트폰을 바꾸기 위한 큰 동기 부여가 되기는 어렵고 현대카드를 발급받으면서까지 애플페이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 근거는 일본과 중국이다. 애플페이가 도입된 2016년 이후 일본의 애플 스마트폰 점유율은 55%에서 2017년 50%로 오히려 줄었다. 여전히 일본에서는 현금 결제 비율이 80%로 크고 간편 결제 시장에서는 수수료가 없고 마일리지 사용이 편한 라인페이나 페이페이가 입지를 넓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 역시 애플페이 도입 전후 스마트폰 점유율은 11%로 동일했다. 이는 애플페이 도입 당시 QR코드를 활용한 간편 결제와 송금까지 가능한 알리페이·위챗페이의 점유율이 이미 높았던 점이 이유로 꼽혔다.

카운터리서치포인트는 “주요 프랜차이즈를 제외한다면 NFC 단말기 보급률이 빠르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고 현대카드 1년 독점 계약으로 인해 사용이 가능한 카드 종류 제한이 발목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기존 시장에 도입된 삼성페이·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 등이 수수료가 없다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경쟁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애플페이를 한국에 들여올 현대카드의 수익성도 크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하나금융경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구글과 삼성은 모든 은행과 카드 회사 애플리케이션이 NFC 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반면 애플은 보안을 이유로 NFC 칩 접근을 애플페이에 한정하고 수수료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 반독점 규제 당국은 애플에 NFC 결제 서비스를 개방할 것을 요구해 왔지만 애플은 이를 거절했다. 또 해외에서 이뤄진 소송 과정에서 애플이 폐쇄적인 서비스 구조로 카드사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의 수수료를 수취한 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현대카드와 독점 제휴가 종료된 후 파급 효과에 따라 제휴 카드사는 확대될 것으로 보이지만 카드사의 수익성은 애플의 추가 수수료 요구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애플페이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는 없어 보인다. 2021년 기준 한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의 비율은 21%다. 하지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아이폰 사용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과 함께 스마트폰 간편 결제 서비스가 유저들의 ‘충성도’를 높인다는 것 때문에 애플 스마트폰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특히 가뜩이나 어려운 업황을 마주한 카드업계는 애플페이의 영향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나금융경제연구소는 “애플페이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NFC 인프라 확대와 함께 삼성페이와의 경쟁이 심화되는 한편 오프라인 결제 시장에서 카드사의 위상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며 “카드사들은 강점 분야인 오프라인 결제까지 위협받게 됨에 따라 다양한 결제 수단과 타사 카드까지 포괄하고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방형 종합 생활 플랫폼으로 경쟁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