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리해고 미반영된 ‘통계적 착시’ ?
고용시장의 미스매치 못 잡는 ‘통계의 함정?

[비즈니스 포커스]
15만 명 해고됐는데 ‘완전 고용’?…미 노동 시장에 무슨 일이
#1. 미국 빅 테크 기업들의 해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마존·메타·트위터 등의 대규모 정리 해고에 이어 1월 18일 마이크로소프트(MS)도 추가로 인력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MS는 지난해 이미 18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올해는 인력 감축 규모가 더욱 크다. MS 전체 직원(약 22만 명)의 약 5%에 해당하는 1만1000명 규모다. 테크 기업뿐만이 아니다.

#2. 미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미국 실업률은 3.5%. 직전 달인 11월과 비교해도 0.1%포인트 낮아졌다. 196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현재 미국 고용 시장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노동력 부족(labour shortage)’이다. 일자리는 넘쳐 나는 데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한쪽에서는 이렇듯 ‘감원 칼바람’이 매섭기만 한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기업들이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가라앉을 때는 실업률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금리 인상 여파로 미국 내 주요 기업들의 인력 감축이 본격화하고 있지만 미국의 고용 시장은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경기와 고용이 따로 노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미국 고용 시장의 가장 큰 수수께끼다.

골디락스 vs 잡풀 다운턴, 미 실업률에 불붙은 논쟁

미국이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표 두 가지를 꼽으면 ‘소비자 물가’와 ‘고용 지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2%대로 낮추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가장 자주 활용되는 경제 지표는 소비자물가지수(CPI)로, 지난해인 12월 기준 미국의 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 6.5%를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고용 시장의 노동력 부족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Fed가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데 실업률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Fed로서는 고용 시장이 탄탄하게 받쳐 주고 있다는 판단이 서면 경기 침체 없이 물가를 잡는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장 최근 발표된 미국의 실업률은 3.5%로 5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급격한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월 이후 3.5∼3.7% 사이를 유지 중이다. Fed에 더욱 반가운 것은 임금 상승률의 둔화다. 지난해 12월 시간당 평균 임금은 각각 전월 대비 0.3%, 전년 동기 대비 4.6%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21년 여름 이후 1년 반 만의 최저치다. 이처럼 탄탄한 고용 지표에 일각에서는 ‘골드락스(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시나리오를 언급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1월 5월 미 노동부의 고용 보고서 발표 이후 ‘Fed가 고용 보고서에서 골디락스를 얻다(Fed Gets ‘Goldilocks’ in Jobs Report)’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낙관적인 경기 지표에도 현재 미국 내에서는 ‘경기 침체 vs 연착륙’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나타나는 데이터의 조합만 놓고 보면 희망 섞인 전망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낮은 실업률이 경기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 또한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낮은 실업률로 인해 Fed가 금리 인상을 지속하면 경기 침체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일자리 증가 없는 회복(jobless recovery)’을 경험했던 인류가 지금 또다시 역사상 최초의 ‘잡풀 다운턴(jobful downturn)’, 즉 고용이 풍부한 경기 하강을 겪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정리 해고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낮은 실업률은 시차에 의한 ‘통계적 착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테크 기업들의 정리 해고 규모를 추적하는 ‘레이오프.fyi’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테크 기업에서 해고된 이들의 수는 15만3160명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금융 기업들의 대규모 정리 해고도 증가하고 있다. 1월 11일에는 미 최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최대 3200명을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전 직원의 7%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씨티그룹과 바클레이즈도 현재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고 모간스탠리도 전체 직원의 2%에 해당하는 1600명의 감원을 발표하고 나선 상황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본격화된 이들 기업의 대규모 구조 조정은 아직 고용 지표에 반영되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 ‘골디락스’를 논하기에 이르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상황이다.
15만 명 해고됐는데 ‘완전 고용’?…미 노동 시장에 무슨 일이
일자리 늘어나는 ‘블루 칼라’, 감원 칼바람에 벌벌 떠는 ‘화이트 칼라’

그렇다면 현재 미국의 낮은 실업률은 단순히 ‘시차에 의한 착오’인 것일까. 실제 필라델피아 연방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들은 2022년과 비교해 2023년에는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며 미국 고용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지금 미국 고용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과 지표의 괴리’는 단순히 시차로만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현재 미 고용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력 부족’이다. 일자리는 넘치는 데 일할 사람은 부족하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있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미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새롭게 증가한 일자리는 22만3000개다. 농업 부문을 제외한 사업체 등에서 증가한 일자리를 기준으로 한 수치다. 2022년 한 해 동안을 기준으로 하면 총 450만 개의 일자리가 증가했다. 월평균 37만5000개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1940년 이후 2021년에 이어 둘째로 빠른 일자리 증가 속도다. 분명 긍정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속사정이 드러난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레저·접객(6만7000개)과 보건 의료(5만5000개) 그리고 건설업(2만8000개) 분야에서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 이들 대부분이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업종들이다. 팬데믹 이후 ‘일상으로의 회복’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일자리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에 그만큼 줄었던 일자리라는 얘기다. 이들 분야의 일자리 증가는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레저·접객업은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20년 2월과 비교해 여전히 93만2000개의 일자리가 모자란 상황이다. 앞으로 이들 분야에서는 더 많은 일자리가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인력 부족 문제가 한층 심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금리 인상으로 인해 대규모 정리 해고 등 타격을 입은 기업들은 정보기술(IT)과 금융 분야에 집중돼 있다. 통계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고용 시장의 미스 매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블루 칼라’의 일자리는 탄탄한데 ‘화이트 칼라’의 일자리는 불안하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악화되면 ‘블루 칼라’의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이다.

‘화이트 칼라의 일자리 불안’에 영향을 준 것은 지난 3년여간의 팬데믹이다. 아마존·넷플릭스·메타 등 최근 대규모 정리 해고를 발표한 기업들의 공통점이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서비스의 대중화로 수혜를 본 업종들이라는 점이다. 지난 3년간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이들 기업은 신규 직원의 채용을 급격히 늘려 왔다. 대표적으로 아마존은 이 기간 신규 채용한 인원이 약 17만 명에 달한다. 한마디로 ‘과잉 채용’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급격히 진행된 ‘자동화’도 영향을 미쳤다.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나고 업무 과정이 디지털화되면서 자동화된 시스템이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작업 또한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AI)으로 대체 가능한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이 정리 해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 여전히 기업들은 AI로 대체 불가능한 ‘고급 기술을 가진 전문가’들을 고용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15만 명 해고됐는데 ‘완전 고용’?…미 노동 시장에 무슨 일이
‘대사직’부터 ‘조용한 사직’까지, 20~24세 노동 참여율 하락

업종마다 온도 차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블루 칼라든 화이트 칼라든 기업들이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더욱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지표가 ‘노동 참여율’이다. 즉 현재 취업 중이거나 구직 중인 노동자의 비율을 말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의 노동 참여율은 62.3%다. 지난해 11월(62.1%)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했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1%포인트 정도 낮다(2020년 2월 기준 63.4%).

노동 참여율의 하락은 여러 원인이 작용한 결과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하고 있는 데다 팬데믹은 이들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베이비부머 세대뿐만 아니라 팬데믹으로 인한 사망자와 퇴직자 수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에 따른 노동력 공급 감소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이 가운데 특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과거와 비교해 젊은층의 고용 시장 이탈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팬데믹을 거치며 노동자들의 인식 변화와 관계가 깊은 것으로 분석된다. 2021년 ‘대사직(great resignation)’과 2022년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열풍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 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20~24세 노동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11월 1402만여 명에서 2022년 11월 1375만여 명으로 27만 명 줄었다. 물론 젊은층의 인구 자체가 감소한 영향도 크다. 하지만 노동 참여율 자체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20~24세의 노동 참여율은 71.3%로 코로나19 사태 이전(2020년 2월 73.1%)과 비교하면 약 2%포인트 낮다. ‘일할 수 있지만 일하지 않는’ 이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기자 회견에서 “팬데믹 이전과 비교해 노동 공급이 약 400만 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약 350만 명이 노동 시장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