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계파 ‘나 홀로 잔치판’…‘내가 왜 집권당 대표 돼야 하는지’ 안 보이고 ‘尹心’만
홍영식의 정치판 정치는 속성상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시끄러워야 한다. 군사 독재 시대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소속 정당을 떠나 국회의원 개개인이 입법 기관인데 일사불란·통합만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활발한 토론과 의견 개진, 서로 다른 생각의 충돌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여정이 정치일 것이다. 자기 생각만 지고지순할 수는 없다. 정치는 ‘정신적·물질적인 가치의 권위적 배분에 필요한 힘(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이다. 미국 정치학자 엘머 샤츠슈나이더가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이라고 한 것은 정치의 이런 속성을 가리킨다.그런 점에서 2023년 3월 8일 대표와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내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것 자체를 놓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당의 새 선장을 뽑는 경선인 만큼 치열한 다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의 최대 이벤트인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맥없이 진행되는 것보다 떠들썩한 게 당연하고 오히려 득이 된다. 전당대회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지지세를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정상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어떤 싸움이냐다. 목적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삿대질하는 것은 조준점도 없이 마구 쏘아 대는 총알이 고철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는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적 이익을 그 바탕에 둬야 한다. 동네 패싸움 같이 사적·정치적 계산만 난무한다면 전당대회는 오히려 독이 된다. 쇄신 주춧돌 돼야 할 초선, 주류 전위대로…미래 암울
국민의힘 대표 경선을 보면 과연 이런 정치의 목표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경선 룰’과 ‘수도권 대표론’을 두고 옥신각신하더니 나경원 전 의원 출마를 두고 한 달 넘게 친윤(친윤석열)과 반윤으로 갈려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당과 나라를 위한 대의(大義)는 안 보이고 계파 간 사적·정치적 이해관계만 앞서는 소의(小義)만 있을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내부 조율 기능도 사라지고 최소한의 품격도 잃었다. 그 많은 중진은 다 어디 갔나.
우선 나 전 의원의 책임이 크다. 대표직에 마음이 있으면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지 말았어야 했다. 한국의 인구가 3년 연속 줄어들고 있고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81명으로 뚝 떨어지는 등 저출산 상황은 심각하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로 이대로라면 국민연금이 2055년엔 고갈될 것이라는 암울한 상황이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중요한 직책을 맡은 지 두 달여 만에 대표직 출마 얘기가 나온 것 자체가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은 아니다. 나 전 의원이 조율 없이 ‘자녀 출산 시 대출 원금 탕감’을 거론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당 주류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나 전 의원을 공격한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지도부가 친윤 후보를 밀기 위해 ‘당원 투표 100%’ ‘결선 투표’를 도입한 것은 다양성이 존중돼야 할 민주 정당 정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실망스러운 것은 초선 의원들의 행태다. 초선들이 쇄신과 개혁의 주춧돌 역할을 해야 그 당이 발전한다. 역대 국회에서 새 회기를 시작할 때마다 초선들은 작든 크든 그런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데 국민의힘 초선들은 나 전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해 연판장을 돌렸다. 참신함은커녕 바람도 불기 전 납작 엎드린 풀과 같았다. 알아서 줄을 서면서 당 주류의 전위대로 벌떼처럼 나서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정치를 거꾸로 돌리는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래서야 국민의힘의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진박(진짜 박근혜) 감별사(鑑別師)논란까지 소환되면서 새누리당이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벌인 집단 자해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난해 대선과 지방 선거 승리 뒤에도 집안싸움에 매몰돼 두 번이나 비대위를 꾸려놓고 반성은커녕 당권 잿밥을 놓고 끝없는 난장판을 벌였다. 의원들은 대통령 눈치 보기에 바빴고 정부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하는 정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야당 국정 발목잡기’ 프레임에만 기댈 뿐이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경선전은 어떤가. 여전히 집권당 대표로서 여소야대 정국을 어떻게 돌파하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을 어떻게 뒷받침하며 내년 총선을 어떻게 승리로 이끌겠다는 비전과 아이디어는 찾기 힘든다. 양강을 형성한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연일 네거티브전을 벌이기에 바쁘다. 김 의원이 “당내 현역 의원들 중 안 의원을 지지한다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다. 비판을 위한 비판, 발목잡기만 계속한다면 성공적인 모습으로 당에 안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직격했다.
그러자 안 의원이 “김 의원이 ‘네거티브’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더니 하루 만에 번복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반박하는 식이다. 지역을 돌면서 퍼 주기성 공약 경쟁에도 바쁘다. 때아닌 양말 논쟁도 벌어졌다. 안 의원이 청년 당원 행사에서 발가락이 훤히 보일 정도로 해진 양말을 보이자 김 의원은 “(안 의원이) 구멍 난 양말을 신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지 모르겠다. 굳이 청바지, 구멍 난 양말을 강조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서로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외치지만 그러기 위한 진중한 토론과 경쟁 대신 지엽적인 가십으로 옥신각신하고 있는 것이다.
전당대회, 유력 후보 낙마로 확장성 막아버려
서로 윤심(尹心)을 얻고 있다고 경쟁하기도 바쁘다. 전대 흥행을 위해선 가능한 모든 유력 후보들을 무대에 올려 잔치판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친윤계는 애초부터 특정 후보를 밀고 유력 후보들을 낙마시켜 버렸다. 시끌벅적해야 할 전대 잔치를 반상회 수준으로 축소시키면서 맥없는 전대가 되고 있다.
특정 계파의 나 홀로 잔치가 돼 버린 마당에 국민의 시선을 잡아끌기 힘든 것은 당연지사다. 그렇게 되면 당은 특정 계파의 전유물이 돼 버리고 중도 확장성은 막혀 버린다. 특정 정치인을 인위적으로 옹립하면 정당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이분법적 대결뿐이다. 정당은 그 속성상 단임 정권과 달리 영속성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한 조건은 추구하는 이념적 특 내에서의 다양성 존중이다. 그래야 정치가 발전하는데 국민의힘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권 운명과 함께하며 수시로 간판을 갈아 치우는 이전의 ‘떴다당’과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별다른 잘못이 없다면 앞으로 2년간 국민의힘을 이끌게 되는 차기 대표의 임무는 막중하다. 특히 윤석열 정부 임기 3년을 남겨 놓고 치러지는 2024년 4월 총선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어려움을 겪는 윤석열 정부로선 총선 승리가 절실한 마당이다. 여소야대 판도를 바꿔 놓지 못한다면 임기 끝까지 야당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자칫 식물정부 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 요컨대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도약하느냐, 추락하느냐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대표 경선전은 윤심을 놓고 다툴 게 아니라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민생 고통 해결책과 입법 권력을 틀어쥔 대(對)야당 전략을 놓고 경쟁하면서 집권당의 본분을 찾는 무대가 돼야 한다. 여당 대표 경선은 단순히 당 내부 경쟁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집권당으로서의 비전을 보여주는 기회다. 그러기 위한 싸움이라면 더 치열하게 전개해도 박수 받을 일이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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