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계열사에서 경영 수업 받는 롯데·한화·HD현대家
전략 사업 이끌며 리더 필수 덕목 배워

[비즈니스 포커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주요 그룹 오너 3~4세들이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회사(부서)를 보면 그룹의 미래 전략 먹거리가 보인다. ‘후계자 경영 사관학교’ 역할을 하는 기업들과 경영 수업 트렌드를 살펴봤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기선 HD현대·한국조선해양 사장,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사장은 그동안 경영 수업으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실전에 배치된 상태다. 이들은 리더십을 인정받아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입지를 탄탄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동관·정기선, 주력 회사에서 워밍업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이 에너지·방산 등 주력 사업과 그룹 전반을 총괄하고 있고 차남과 3남이 각각 금융과 레저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김 부회장은 2022년 8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기존 한화솔루션 전략부문과 함께 (주)한화 전략부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의 대표도 겸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업황 부진 속에서도 태양광 사업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을 미국과 유럽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핵심 사업인 우주항공·방산 부문을 진두지휘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안정적 수익 구조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래 먹거리 확보에서도 성과를 거두며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는 게 그룹 안팎의 평가다. 한화솔루션·(주)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의 경영 성과와 함께 대우조선해양의 흑자 전환 달성 여부가 김 부회장의 경영 능력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022년 11월 17일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SPA 제공
무함마드 빈 살만(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022년 11월 17일 한국 기업 총수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사우디아라비아 국영매체 SPA 제공
정기선 HD현대·한국조선해양 사장은 2021년 10월 12일 지주회사인 HD현대(구 현대중공업지주)와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사장으로 승진하며 차기 총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정 사장이 이끄는 HD현대와 한국조선해양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와 주력 사업을 책임지는 회사다. HD현대는 20년 만에 그룹명을 바꾸고 조선해양·에너지·산업기계 분야에서 인류의 미래를 이끈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사명 변경은 제조업 중심 이미지를 탈피해 투자 지주회사로서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미래 선박, 수소 연료전지 등 미래 사업 추진에 힘을 싣는다는 취지였다. 정 사장은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3에서 ‘오션 트랜스포메이션(바다 대전환)’이라는 비전을 직접 소개하는 등 그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비전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2023년 1월 4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D현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정기선 사장이 기조연설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2023년 1월 4일(현지 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D현대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정기선 사장이 기조연설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SK·롯데·코오롱家는 신사업 우선

코오롱가 4세이자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코오롱글로벌 자동차부문을 이끌어 온 이규호 사장의 경영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이 사장은 2023년 1월 출범한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의 각자대표에 올라 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최근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은 스웨덴의 순수 전기 바이크 브랜드인 케이크의 한국 단독 수입사로서 공식 유통을 시작하며 친환경 이동 수단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수입차 유통 판매의 역사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업 구조 재편과 확장을 통해 종합 모빌리티 사업자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 최태원 SK 회장의 장남 최인근 SK E&S 전략기획팀 매니저는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롯데그룹에선 지금 신 상무의 경영 수업이 한창이다. 그는 2022년 말 정기 임원 인사에서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이어 한국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상무에도 이름을 올리며 경영 일선에 전진 배치됐다. 2022년 8월 신 회장의 베트남 출장에 동행하고 ‘CES 2023’에도 모습을 보이는 등 경영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신 회장을 포함해 롯데그룹 계열사 임원 70여 명이 참석하는 사장단 회의(VCM)에도 처음 참석했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 20조원을 돌파한 롯데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롯데케미칼 기존 사업의 경쟁력 확보와 수소·배터리 소재 등 신사업 발굴이 그의 당면 과제로 꼽힌다.

SK그룹에선 최 회장의 장남 최인근 씨가 SK그룹의 에너지 계열사인 SK E&S 전략기획팀 매니저로 근무 중이다. 재계에선 1995년생으로 올해 28세인 그가 비상장 계열사에서 조용히 경영 수업을 받으며 향후 그룹의 친환경 사업을 주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SK E&S는 그룹의 수소 사업 선봉장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수소뿐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액화천연가스(LNG)·발전·집단에너지·도시가스 사업을 영위하는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성도 높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탄소 중립이 재계의 경영 화두로 떠오르면서 최근 주요 그룹에선 친환경 에너지 분야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는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 사진=코오롱그룹 제공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 사진=코오롱그룹 제공
경영 수업 코스도 변화…경영기획팀→컨설팅사

후계자들의 경영 수업 필수 코스도 달라지는 추세다. 과거에는 학사나 석사를 마치고 그룹 경영기획실에 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학업을 마친 뒤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그룹 경영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기획실은 일종의 그룹 컨트롤타워로서 회사 흐름 전반을 파악할 수 있고 계열사 간 조율이 필요한 전략 사업을 추진할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이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상무보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최태원 SK 회장은 1992년부터 그룹 경영기획실 사업개발팀장, (주)SK상사(현 SK네트웍스) 및 SK(주) 상무 등을 거치면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이 최근 후계자들의 경영 사관학교로 꼽히는 이유는 3~4세들이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 다양한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의 경영 전략을 검토하는 업무 특성상 단기간 내 경영에 필요한 식견을 터득할 수 있는 것도 컨설팅 회사의 강점이다.

최태원 회장의 장녀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 팀장, 조현상 효성 부회장, 윤상현 한국콜마 부회장은 경영에 나서기에 앞서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정기선 사장과 최태원 회장의 장남 최인근 SK E&S 매니저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했다.

범LG家는 벤처 투자로 경력 쌓아

미래 먹거리 발굴과 투자, 인수·합병(M&A)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3~4세들의 벤처캐피털 분야 진입도 활발하다. GS가(家) 4세인 허태홍 GS퓨처스 대표는 GS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대표로 신사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차녀 최민정 SK하이닉스 M&A 프로젝트 리더는 SK하이닉스를 휴직하고 미국 원격 의료 스타트업 던(Done.)에서 비상근 자문역을 맡고 있다.

구본준 LX홀딩스 회장의 두 자녀도 전략과 벤처 투자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있다. 장남인 구형모 LX MDI 대표는 LX홀딩스 산하에 설립된 싱크탱크의 초대 대표를 맡아 그룹 계열사의 사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 컨설팅, 정보기술(IT)·업무 인프라 혁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차녀 구연제 씨는 마젤란기술투자에서 심사역으로 근무하고 있어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LX홀딩스가 CVC 설립(LX벤처스)에 속도를 내고 있어 차녀가 CVC에 합류해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가 CVC에 합류하게 되면 구지은 아워홈 대표를 제외하고 여성의 경영 참여가 드물던 범LG가에서 이례적인 여성 오너 경영인이 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