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서울 속 숨은 명소…“너무 아늑해 나만 알고 싶은 비밀 같은 곳”

“서울의 숨겨진 핫플에서 새어 나오는 빛.”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서울 해방촌·을지로 일대를 조명한 1월 18일 기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좁은 골목 사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작은 문 몇 개를 기꺼이 열고 들어간다면 미처 상상하지 못한 포근하고 멋진 장소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너무 아늑해 자기만 알고 싶은 비밀 같은 곳이다.
해방촌(HBC) 신흥시장을 둘러싼 아케이드 지붕 '서울챙'
해방촌(HBC) 신흥시장을 둘러싼 아케이드 지붕 '서울챙'
해방촌의 해방 일지녹사평역 2번 출입구에서 경리단길을 등지고 미군 부대 담장을 따라 남산 방향으로 걷는다. 50년째 해방촌을 지키고 있는 도자기 판매점을 따라 정겨운 옹기가 옹기종기 늘어서고 다소 낯선 영어 간판과 벽화가 공존하는 해방촌이다.

해방촌의 역사를 되짚기 위해서는 1945년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광복과 함께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6·25전쟁 피란민 등이 ‘하꼬방’이라고 불리는 판잣집 촌락을 이뤘고 곧 해방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이 산동네는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촌이 됐다. 소설가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서 해방촌을 가리켜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라고 묘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서울시는 도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며 위태롭게 자리한 해방촌을 철거 대상 지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지역민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결국 1973년 자력 재개발 사업 구역으로 선정되며 현재까지 유지·보수를 거듭해 그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정비된 신흥시장 골목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정비된 신흥시장 골목
해방촌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주목을 받게 된 데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러한 역사가 주효했다. 고루하게 느껴졌던 전통적인 것을 새롭고 멋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이는 ‘뉴트로(New+Retro)’ 열풍이 불자 이들은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해방촌으로 향했다. 낡은 계단과 색바랜 간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비탈까지도 ‘힙스러움’의 상징이 됐다. 2030의 발걸음을 따라 MZ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각종 카페·바·소품 숍 등이 자연스레 들어섰고 해방촌은 그렇게 ‘K-힙(한국적인 멋)’의 성지로 재탄생했다.해방촌 신흥시장, 가장 한국다운 곳피자·수제 버거 가게, 위스키 바, 카페 등이 즐비한 해방촌 번화가를 지나면 한층 오르기 버거운 골목길이 이어진다. 어설프지만 정겨운 ‘해방촌 토박이 모임 사무실’ 간판만이 여전히 이곳이 해방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길잡이다. 뉴욕타임스가 ‘한국스러운’ 명소로 소개한 ‘해방촌 신흥시장’. 해방촌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간직한 상징적인 곳이다.
카페 업스탠딩 앞에서 보이는 '서울챙' 전경
카페 업스탠딩 앞에서 보이는 '서울챙' 전경
신흥시장은 1950년대 담배 제조로, 1960년대에는 니트 제조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365일 끊이지 않을 정도로 번창했지만 이후 제조업이 침체되며 약 30년의 영광을 뒤로하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폐허에 가까웠던 이곳이 본격적으로 부활의 기지개를 켠 것은 약 10년 전의 일이다. 서울시는 2015년 해방촌 일대를 ‘도시 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하고 각종 재생 사업을 벌여 왔다. 거리가 닦이고 해방촌 상권이 살아나자 젊은 예술가·상인의 발길이 신흥시장까지 닿았다. 저마다의 개성을 간직한 감각적인 상점이 하나둘 들어서며 오랫동안 비어 있던 거리는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해방촌만의 루프톱 문화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해방촌 신흥시장 야경
해방촌 신흥시장 야경
신흥시장의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시장 1층을 덮고 있던 낡은 슬레이트 지붕은 지난해 새로운 아케이드 지붕 ‘서울챙’으로 새롭게 교체됐다. 모자처럼 혹은 구름처럼 놓인 이 지붕은 신흥시장의 옛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행자의 통행과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형태로 설계돼 한층 쾌적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반투명 소재의 지붕을 통해 은은하게 떨어지는 햇빛도 매력적이지만 서울챙의 진가는 궂은날 잘 나타난다. 아케이드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BGM 삼아 걸으며 실외와 실내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별한 경험은 오직 이곳에서만 할 수 있다. 밤이면 밝은 녹색으로 빛나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예스러운 뒷골목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야간 경관을 만들어 낸다. 시장 주변 골목길도 재단장을 앞두고 있다. 가장 한국답기에 다시 찾고 싶은 곳, 해방촌에는 ‘K-힙’이 흐른다.

해방촌 신흥시장
서울 용산구 신흥로 95의 9 일대

박소윤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