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투자자들의 우상에서 조롱의 대상으로…“노드스트롬 주가, 단기 급등락할 것”

[글로벌 현장]
캐나다 출신의 라이언 코헨은 행동주의 펀드 투자자로 '밈 종목' 투자를 주도하며 유명세를 탔다.(사진=한국경제신문)
캐나다 출신의 라이언 코헨은 행동주의 펀드 투자자로 '밈 종목' 투자를 주도하며 유명세를 탔다.(사진=한국경제신문)
미국에서 둘째로 큰 백화점 체인인 노드스트롬의 주가는 2월 초 하루 동안 30% 가까이 뛰었다. 하지만 다음날 10% 하락하며 상승분 중 일부를 반납했다. 워싱턴 주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고급 백화점의 주가가 왜 급변동하게 됐을까.

그 배경엔 라이언 코헨 게임스톱 회장이 있다. 행동주의 펀드 투자자인 코헨 회장이 노드스트롬 지분을 매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코헨 회장은 기업 지분을 알음알음 매수한 뒤 주주 가치 극대화를 표방하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의 장기 가치 창출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전형적인 ‘먹튀 투자자’란 혹평도 있다.

밈 주식 게임스톱 매수로 유명세

캐나다 출신인 코헨 회장이 행동주의 펀드 투자자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20년 말이었다. 개인 투자자들이 유행에 따라 매집하는 밈 종목 투자를 주도하면서다. 코헨 회장은 게임스톱 지분 12.9%를 확보한 최대 개인 투자자였다.

코헨 회장은 공매도가 집중됐던 게임 유통회사 게임스톱 주식을 수차례에 걸쳐 매집하고 나섰다. 자신이 만든 벤처캐피털 RC벤처스를 통해서다. 개인들이 기관들의 공매도(주가 하락에 베팅)에 반발해 게임스톱 주식 사 모으기 운동에 나서는 등 강력하게 결집했을 때다.

코헨 회장이 게임스톱의 주요 주주가 된 뒤 6개월 만에 게임스톱 회장(이사회 의장)에 취임하자 주가는 더 올랐다. 2개월 상승률은 1500%를 넘었다.

코헨 회장은 게임스톱 매수 직후부터 주가 상승을 유도했다. 약 5000개에 달하는 전국 매장을 온라인 유통점으로 바꾸면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했다.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며 게임스톱 전략위원회를 신설했다. 코헨 회장은 여전히 게임스톱 대주주이고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1월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 지분을 매수한 뒤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작년 하반기 수억 달러 규모로 투자했던 코헨 회장은 알리바바 이사회를 상대로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며 자사주 매입 규모를 600억 달러로 확대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코헨 회장은 “향후 5년간 매출을 매년 두 자릿수로 늘릴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자사주 매입은 유통 주식 수를 줄이기 때문에 주가를 높이는 요인이다. 경영진이 회사의 주가가 오를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자사주 매입을 단골 메뉴로 요구하는 배경이다.

알리바바는 작년 11월 자사주 매입 기간 연장을 발표하면서 매입 규모를 종전 25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확대했다. 코헨 회장의 압박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창업으로 돈방석…BBBY로는 악명

코헨 회장이 행동주의 펀드 투자금을 마련한 것은 창업을 통해서다. 2011년 반려동물 식품 및 대소변 용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츄이를 창업했다. 반려동물 용품 업체로는 이례적으로 24시간 소비자 응대가 가능한 콜센터와 물류센터를 갖췄다.

반려동물 용품 시장의 답이 고급화·전자화에 있다는 코헨 회장의 생각은 적중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소비자들은 고급 사료를 구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츄이는 전자 상거래를 통해 점유율을 급속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적자를 지속하긴 했지만 매출 목표를 수년간 초과 달성하자 ‘최고경영자(CEO)가 대학 문턱도 밟지 못했다’며 외면했던 벤처캐피털들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츄이가 2017년까지 받은 투자액만 3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돈이 사업 확장에 재투자되며 선순환을 일으켰다.

코헨 회장은 적자 누적에도 점유율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회사 가치만 높이면 기업공개(IPO)를 통해 충분히 보상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시장점유율은 40%를 넘어섰다.

잭팟은 더 빨리 터졌다. 기존 반려동물 용품 업체인 펫스마트에 팔린 것이다. 인수·합병(M&A) 규모는 전자 상거래 역사상 최대인 33억5000만 달러였다. 2019년 6월 츄이가 뉴욕 증시에 상장됐을 때 인정 받은 시장 가치는 87억 달러였다. 회사 매각으로 돈방석에 앉게 된 코헨 회장의 순자산은 25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때 개인 투자자들의 우상이었던 코헨 회장은 현재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베드배스&비욘드(BBBY) 투자 과정에서 생긴 잡음 때문이다.

코헨 회장은 작년 8월 게임스톱처럼 밈 주식으로 꼽혔던 베드배스&비욘드를 매집했다. 주식 778만 주(지분율 9.8%)를 주당 평균 15.34달러에 취득하면서 콜옵션(주가 상승에 베팅)까지 샀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총 945만 주 규모다. 코헨 회장은 지분 확보 직후 “아기 용품 브랜드를 분사하는 등 회사 정상화가 필요하다”며 경영에도 적극 관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 주식이 급등하자 순식간에 전량 처분했다. 콜옵션을 포함해서다. 매도 가격은 주당 19~29달러였다. 이번 거래로만 6800만 달러를 챙겼을 것으로 계산됐다. 코헨을 추종하던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가 급락한 뒤에야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베드배스&비욘드의 부도가 임박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이 기업의 주가는 한때 1달러대까지 밀렸다.

코헨 회장은 “개인적인 부채 부담이 있어 주식을 모두 팔았다”고 설명했지만 내부 정보를 이용한 ‘먹튀 투자’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코헨 회장을 상대로 12억 달러 규모의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사기 및 시세 조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코헨 회장의 노드스트롬 투자는 게임스톱이나 베드배스&비욘드 때와 다를 것이란 분석도 있다. 외부 시선이 워낙 달라졌기 때문이다.

코헨 회장은 현재 노드스트롬 가족을 제외하면 5대 주주에 꼽힐 만큼 많은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1년 설립된 노드스트롬은 형제가 경영하고 있다. 에릭 노드스트롬이 CEO, 피터 노드스트롬이 대표를 각각 맡고 있다.

코헨 회장은 노드스트롬의 주요 주주로 진입한 뒤 이사회를 대상으로 전면 개혁을 요구했다. 실적이 둔화해 주주의 손해가 크다는 전형적인 주장이다.

특히 베드배스&비욘드의 전 CEO였던 마크 트리튼의 사퇴를 압박했다. 트리튼 전 CEO는 3년째 노드스트롬 사외이사로 활동하며 경영에 참여해 왔다. 원래 노드스트롬 임원(2009~2016년) 출신이다.

코헨 회장은 베드배스&비욘드 지분을 매수한 직후 공개적으로 트리튼 전 CEO의 사퇴를 촉구했고 트리튼 전 CEO는 결국 물러났던 전력이 있다.

코헨 회장은 “과거 노드스트롬 직원이었던 관계자가 (사외이사로서) 경영진 보수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드스트롬은 코헨 회장의 등장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이 회사는 “코헨 회장이 그동안 어떠한 협의도 요청해 온 적이 없었다”며 “우린 주주들의 견해를 청취하는 데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사진 개편과 관련해선 “회사 및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조치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에선 코헨 회장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뒤 ‘치고 빠지기’에 나설 것이란 의심에서다.

노드스트롬에 대해 ‘매수’ 투자 의견을 견지해 온 투자은행 키뱅크의 노아 재킨 애널리스트는 “코헨 회장의 지분 확보 소식은 단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장기 판단은 유보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코헨 회장의 경영 참여 시도가 기업의 장기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월가에서 공통적으로 전망하는 것도 있다. 오르는 쪽이든, 내리는 쪽이든 코헨 회장이 투자한 노드스트롬의 주가는 단기간 급변동할 것이란 예상이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