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터필러, 100톤급 초대형 자율 주행 트럭 CES에서 선보여…척박한 작업 환경과 높은 위험성 때문에 잠재 수요 커

광산용 자율주행 트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광산용 자율주행 트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가전 전시회(CES)는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신기술·신제품을 공개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기에 좋은 무대다.

자율 주행 농기계의 대표 브랜드가 된 ‘존 디어’는 코로나19 기간에 진행된 ‘CES 2021’에 자율 주행 트랙터를 들고나오면서 농업에 무관심한 사람들조차 농기계의 대표 브랜드를 인식할 정도로 각인됐다.

올해 CES에서도 유사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전문적인 고객사들에만 알려진 중장비 제조 기업 캐터필러가 가반 하중 100톤급의 초대형 자율 주행 트럭 CAT777을 CES 2023에 전시해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자율 주행차 상용화의 문을 연 광산업철광석·석탄 등 각종 지하자원을 채굴하는 광산업에서는 척박한 작업 환경과 높은 위험성 때문에 무인화에 대한 잠재 수요가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광산은 대부분 주거지와 험난한 산악 지대나 밀림·사막 등 사람들이 거주하기 어려운 지역에 분포돼 있다.

또 광물을 채굴하고 운반하는 작업도 사람에게는 무척 힘들고 위험한 일이다. 광물은 대부분 무겁거나 유해 물질을 함유하고 있고 지하 깊은 곳에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산업에서는 사람 대신 기계를 투입해 인명 사고의 위험과 인적 오류를 줄여 작업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24시간 가동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많았다. 인적 오류의 감소는 기계 가동에 필요한 연료 소모량의 감소로 이어져 연료비 절감에 더해 공해 배출도 줄이는 친환경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BHP·FMG·리오틴토(Rio Tinto) 등 글로벌 광산 기업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채굴 장비, 포클레인, 운반용 트럭 등 모든 설비들의 무인화를 추진했다. 그중에서 이번 CES에 등장해 큰 관심을 받은 것은 광산용 자율 주행 트럭(AMT : Autonomous Mining Truck), 자율 주행 운반 시스템(AHS : Autonomous Haulage Systems) 등으로 불리는 초대형 무인 광물 운반 트럭이다.

AMT의 상용화는 2008년 칠레의 가브리엘 미스트랄 구리 광산에 일본 코마츠의 무인 트럭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자율 주행 차량의 상용화가 차량 운행량이 많은 도시에 앞서 광산 현장에서 먼저 진행된 이유는 기술 개발의 난이도에서 찾을 수 있다. 광산 현장은 사람과 차량이 혼재하고 인도와 차도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도시에 비해 훨씬 단순하고 안정적이며 통제된 환경이다.

주행·정지를 반복하게 만드는 신호등도 없고 운행 중인 차량 대수도 훨씬 적으며 갑자기 도로로 뛰어드는 사람이나 반려동물, 차량 주위에서 주행하는 자전거 등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 훨씬 적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낮다.

그래서 광산에서 요구되는 자율 주행 기술의 수준은 도시·주거지 등 일상생활 환경의 조건보다 훨씬 평이하므로 비교적 수월하게 상용화될 수 있다.
중장비 제조 기업 캐터필러 전시관. (사진=한국경제신문)
중장비 제조 기업 캐터필러 전시관. (사진=한국경제신문)
꾸준히 커지는 광산용 무인 트럭 시장AMT를 도입한 글로벌 광산 기업들은 AMT가 효과적인 장비라고 평가한다. 각각 300대, 200대 정도를 운용해 최대 고객으로 자리매김한 BHP와 FMG는 AMT를 통해 생산성이 최대 30% 높아졌다고 평가한 바 있다. 약 190대를 사용하고 있는 리오틴토 역시 사람이 운전하는 트럭보다 AMT가 훨씬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시장에서는 AMT가 유인 트럭보다 연료 사용량에서도 약 4% 적게 소모하므로 경제성과 친환경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AMT 시장은 꾸준히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AMT의 효과를 체감한 BHP·FMG·리오틴토 등 주요 글로벌 광산 업체들이 AMT 도입량을 꾸준히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가동 중인 AMT는 약 1100대에 달했는데 2025년에는 이보다 약 60% 정도 더 늘어난 1800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AMT 시장은 베스트 셀러 제품인 256톤급 초대형 트럭 793F를 생산하는 미국 캐터필러와 또 다른 베스트 셀러인 290톤급 초대형 트럭 930E를 생산하는 일본 코마츠 등 양 사가 약 80%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히타치·볼보 등의 중장비 개발 기업들이나 원격 제어·자율 주행 솔루션 개발 전문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광업·농업·물류업·건설업 등 각 산업에 맞춤화된 자율 주행 시스템을 개발하는 미국의 ASI(Autonomous Solutions, Inc.)와 같은 기업들은 자사의 광산용 자율 주행 시스템을 고객이 지정하는 대형 트럭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AMT를 생산한다.

AMT에 적용되는 자율 주행 시스템은 여타 자율 주행차들과 마찬가지로 장애물 감지, 경로 설정 및 위치 인식, 무선 통신, 종합 관제 기능 등으로 구성된다.

캐터필러가 이번 CES에 전시한 모델 CAT777은 장애물 감지를 위해 차량 상부에는 근거리의 장애물을 3D 이미지로 생성할 수 있는 64채널의 고성능 라이다가 부착돼 있고 차량 하단에는 장거리 탐지용 레이더가 설치됐다. CAT777에는 광산 지역의 버추얼 맵을 기반으로 이동 경로를 설정하거나 주행 중에 경로를 변경할 수 있는 SLAM 시스템과 AMT의 위치 파악에 필요한 GPS와 IMU(Inertial Measurement Unit) 센서도 설치돼 있다.

자율 주행 시스템의 고장·손상으로 인한 오작동이나 버추얼 맵에 반영되지 않은 환경 변화 등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AMT에는 수동 운전을 위한 각종 설비와 원격 제어 장치도 구비됐다. CAT777은 사람이 탑승해 직접 운전할 수 있도록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 좌석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운전석도 여전히 갖춰져 있다. 운전자는 운전석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차량 주변을 보여주는 카메라 화면과 라이다를 통해 감지된 장애물들을 볼 수 있다. 또한 현장 관리자는 원격 제어 장비를 이용해 300m 밖에서도 CAT777을 멈추거나 재작동시킬 수 있다.

AMT의 자율 주행 시스템 이면에는 AMT의 군집 주행이나 다양한 무인 장비들 간의 공동 작업을 통합 관제할 수 있는 FMS(Fleet Management System)도 자리 잡고 있다. 캐터필러는 AMT, 무인 채굴기, 무인 불도저 등 각종 무인 장비들 중 일부를 원격으로 제어하거나 무인 장비들과 수동 운전 장비들을 24시간 내내 통합 관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성된 캣 마인스타 커맨드 솔루션도 보유하고 있다. 캣 마인스타 커맨드가 적용된 관제실에서는 대형 화면을 통해 현장에 있는 AMT 등의 무인 장비들과 수동 운전 장비들의 가동과 협력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원활한 작업 수행을 위한 가동 중단·재개 등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다.

진석용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