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이상 프리미엄 헤드폰 판매량 급증

무선 헤드폰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사진=티빙)
무선 헤드폰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사진=티빙)
유튜브에 ‘오버이어 헤드폰’을 검색하면 제품 고르는 법, 장단점, 언박싱(구매 상품을 최초로 개봉하는 행위) 등 수백 개의 영상이 뜬다. 이 영상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삶의 질 상승템’이다. 헤드폰을 사용하고 삶이 더 좋아졌다는 의미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을 맡은 박은빈 씨가, ‘아일랜드’에서 차은우 씨가 오버이어 헤드셋을 착용한 모습이 그려지면서 오버이어 헤드폰은 단순한 음향 기기를 넘어 하나의 패션 액세서리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대표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 헤드셋 또는 헤드폰을 검색하면 자동 완성 형태로 ‘헤드셋 코디’, ‘헤드폰 코디’가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오버이어 헤드폰 시장은 지속 확대되는 추세다.보스, 젠하이저, 소니…헤드폰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들tvN 웹드라마 ‘아일랜드’ 1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차은우 씨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 미국의 음향 기기 업체 보스가 2019년 출고가 49만9000원으로 시장에 내놓은 ‘NC(Noise Cancelling) 700’ 모델이 나온다. 주변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NC 700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2화에서도 차은우 씨의 등장 장면에 보스 NC700이 나오는데 사용하지는 않고 목에 걸어 두기만 한다. 이 제품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뷔 헤드폰’으로도 불린다. 외부 이동 시 BTS 뷔 씨가 착용한 모습이 포착돼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무선 헤드폰이 나온다. 배우 박은빈 씨가 출근길의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젠하이저 제품을 사용하는 장면이다. 같은 드라마에서 배우 주현영 씨는 미국의 오디오 기업 슈어의 무선 헤드폰 ‘에이오닉 40’을 착용하기도 한다.

오버이어 헤드폰 또는 온이어 헤드폰은 에어팟, 갤럭시 버즈와 같이 귀 안쪽에 넣어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감싸는 형태다.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무게감 때문에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애플이 2020년 말 오버이어 형태의 에어팟 맥스를 선보인 뒤 헤드폰 시장은 크기가 작은 온이어보다 귀를 완전히 덮는 형태의 오버이어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실제 애플뿐만 아니라 독일 젠하이저, 미국 보스와 슈어, 일본 소니, 덴마크 뱅앤올룹슨 등 다양한 음향 기기 제조사들은 오버이어 형태의 헤드폰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보스가 2019년 선보인 NC 700 모델은 온이어 디자인이었지만 애플의 에어팟 맥스가 나온 이후 내놓은 ‘QC 45 모델(2021년 출시)’은 오버이어 디자인을 적용했다. 지난해 새로 선보인 QC 35 2세대 모델도 오버이어 디자인이다. 또 다른 미국 기업인 슈어는 2020년 에이오닉 50을 선보였고, 2022년에 새로운 모델인 에이오닉 40을 출시했다.

젠하이저 역시 지난해 8월 ‘모멘텀 와이어리스 4’를 선보이며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가 착용하고 나온 제품이자 모멘텀 4의 전작인 ‘모멘텀 와이어리스 3’를 시장에 출시한 지 3년 만이다. ‘모멘텀 4’에서는 주변 환경에 따라 자동으로 외부 소리를 차단할 수 있는 ‘어댑티브 노이즈 캔슬링(ANC)’을 적용했다.

소니도 지난해 6월 5세대 무선 헤드폰 신제품인 ‘WH-1000XM5’ 모델을 공개했다. 전작인 4세대 헤드폰 WH-1000XM4를 선보인 지 1년 만에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다.

뱅앤올룹슨은 2020년 창립 95주년을 기념해 출고가 129만8000원의 초고가 헤드폰 ‘H95’를 선보였고 이듬해 ANC 무선 헤드폰은 ‘베오플레이 HX’를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베오플레이 포탈’도 공개했다.

2020년 12월 71만9000원의 고가 헤드폰 ‘에어팟 맥스’를 선보이며 무선 이어폰 시장의 트렌드를 바꾼 애플은 아직 차세대 모델을 선보이지 않았다. 당시 애플은 자사 첫 오버이어 헤드폰을 선보이며 직전 모델인 에어팟 프로(32만9000원)보다 두 배 이상 높게 책정해 과도한 고가 정책을 펼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일부 색상은 예약 판매 시작과 동시에 품절되는 등 인기를 얻었다.

애플은 올해도 차기 작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 전문 분석가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1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애플의 2세대 에어팟 맥스는 2024년 하반기 또는 2025년 상반기가 돼야 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젠하이저, 보스, 슈어, 소니 등이 오버이어 형태의 헤드폰을 내놓고 있다. (사진=소니 유튜브 갈무리)
젠하이저, 보스, 슈어, 소니 등이 오버이어 형태의 헤드폰을 내놓고 있다. (사진=소니 유튜브 갈무리)
비싸도 산다…30만원대 이상 프리미엄 시장 확대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블루위브컨설팅에 따르면 전 세계 무선 이어폰 시장은 2021년 약 24조원 시장에서 2028년 87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전 세계 무선 이어폰 판매량이 2억9960만 대(2021년)라고 집계한 바 있다. 전년 대비 24%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무선 헤드폰 시장의 성장세는 매섭다. 소니코리아가 시장 조사 업체에 의뢰해 관련 수치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무선 헤드폰 시장은 2022년(1~8월) 전년 동기(2021년 1~8월) 대비 178%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무선 헤드폰 시장의 매출은 같은 기간 206%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소니코리아의 30만원 이상 무선 헤드폰 판매량은 전년 대비 219% 늘었다.

무선 헤드폰 시장의 주요 고객은 1020세대다. 한국의 무선 헤드폰 시장점유율 과반을 차지하는 소니코리아에 따르면 소니 헤드폰의 구매자 절반 이상은 1020세대로 집계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불과 7~8년 전에는 10만~20만원대에 헤드폰이 주력으로 나왔는데 지금은 성능이 좋아지면서 그에 비하면 많이 비싸졌다”며 “그런데도 무선 헤드폰 판매량은 2020년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디어에서도 헤드폰을 착용한 장면들이 많이 나왔고 젊은층에서 선호하는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시장이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무선 헤드폰을 적극적으로 출시했다. 2014년 삼성전자는 40만원대의 프리미엄 헤드폰 브랜드 ‘레벨’을 론칭하고 인이어 헤드폰 ‘레벨 인’, 무선 헤드폰 ‘레벨 온’, 오버이어 헤드폰 ‘레벨 오버’ 등을 선보인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라인업을 늘리며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지만 시장의 트렌드가 인이어(귀 안쪽으로 집어넣는 형태) 이어폰으로 바뀌면서 2016년 기어 아이콘 시리즈, 2019년 갤럭시 버즈 등을 론칭했고 이후 별도의 무선 헤드폰은 선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2016년 11월 80억 달러(10조원)에 오디오 분야 전문 기업 ‘하만’을 인수했는데 하만이 보유한 JBL·하만카돈·마크레빈슨·AKG 등에서 무선 헤드폰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LG전자 역시 2014년 10만원대 무선 헤드폰 ‘그루브’를 출시하고 2015년 톤 플러스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후 2018년까지도 헤드셋 형태의 톤 플러스 신제품을 내며 라인업을 확대했지만 무선 이어폰 시장이 성장하자 2019년부터 ‘톤플러스 프리’를 내놓으며 모바일 액세서리 전략을 변경했다. LG전자는 2021년 스마트폰 사업을 철수했지만 이후로도 톤 프리 신제품을 출시하며 모바일 액세서리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올해도 무선 헤드폰을 중심으로 시장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전 세계 무선 이어폰 시장 규모가 2024년 12억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가격대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소니·보스·젠하이저 등은 30만~5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뱅앤올룹슨은 이보다 높은 60만~70만원대에, 애플은 그보다 높은 70만원대에 나왔다. 반면 중국의 QCY가 내놓은 헤드폰 ‘H2’는 2만원 미만이다. 한국 브리츠는 10만원대 미만으로 헤드폰을 선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3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헤드폰을 중심으로 헤드폰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