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 퍼렐 윌리엄스를 루이비통 남성복 CD로…“가수 특유의 자율성, 패션에 활용하기 좋아”

명품 브랜드가 가수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루이비통 홈페이지)
명품 브랜드가 가수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루이비통 홈페이지)
명품과 힙합, 명품과 DJ. 어울리는 조합일까.

루이비통·디올·펜디·셀린느·지방시·로에베·불가리·태그호이어 등을 거느린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이 조합을 고집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최근 남성복 부문 크리에티이브 디렉터(CD)로 가수이자 작곡가인 퍼렐 윌리엄스를 선임했다. 윌리엄스의 주요 장르는 힙합이다.칸예 웨스트가 중심에루이비통과 힙합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두드러지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칸예 웨스트다. 그는 한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에서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그러자 업계 디자이너들이 소리 높여 웨스트를 비판했다. 음악만으로 충분히 유명한 웨스트가 펜디 인턴으로 들어와 전문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의 자리를 뺏으려 한다고 했다. 하지만 웨스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패션업계에서 영향력을 높여 갔다.

이때 웨스트와 함께 펜디 인턴 생활을 한 사람은 고인이 된 오프화이트의 창업자 버질 아블로다. 웨스트와 아블로는 오랜 친구 사이다. 웨스트는 초기 아블로에게 합작 앨범 아트 디렉터를 맡기기도 하고 자신이 설립한 기획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도 아블로에게 줬다. 아블로가 음악과 패션 모두에 탁월한 감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블로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DJ로 활동하며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프화이트로 대성공을 거둔 아블로는 이후 루이비통의 남성복 브랜드 아트 디렉터에 임명됐다. 명품 패션 브랜드의 남성복 라인을 이끈 최초의 아프리카계 인물이었다. 아블로가 사망한 후 그 자리를 웨스트가 이어받을 것이란 루머가 있었을 정도로 그들은 가까웠다. 두 사람이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게 웨스트가 후임이 될 것이란 근거였다.

이번에 루이비통이 영입한 퍼렐 윌리엄스도 웨스트와 관계가 있다. 윌리엄스는 주로 힙합 등을 작곡하다 N*E*R*D라는 그룹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초기 웨스트와 투어를 하고 여러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윌리엄스는 솔로로는 빌보드 핫 10주 연속 1위 곡을 부른 가수이기도 하다. 패션계에서는 웨스트와 윌리엄스를 영향력이 큰 양대 아티스트로 꼽기도 한다.

LVMH는 “윌리엄스는 오는 6월 파리에서 열리는 남성 패션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공개할 것”이라며 “그가 경계를 허무는 방식은 혁신하고 개척자 정신을 강화하는 루이비통의 위상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윌리엄스는 앞서 2004년과 2008년에도 루이비통과 협업했다. 2004년 ‘밀리어네어 컬렉션’을 통해 선보인 1200달러(약 150만원)의 선글라스가 완판을 기록하자 2008년에는 액세서리 라인에서 다이아몬드 반지와 팔찌 등이 있는 ‘블라종(프랑스어, 가문의 문장) 컬렉션’을 내놓았다.
루이비통은 최근 남성복 부문 크리에티이브 디렉터(CD)로 가수이자 작곡가인 퍼렐 윌리엄스를 선임했다. (사진=LVMH 홈페이지)
루이비통은 최근 남성복 부문 크리에티이브 디렉터(CD)로 가수이자 작곡가인 퍼렐 윌리엄스를 선임했다. (사진=LVMH 홈페이지)
힙합에 집착하는 루이비통LVMH는 힙합 가수 제이지의 샴페인 브랜드에도 투자했다. 2021년 2월 LVMH는 제이지의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 아르망디)’ 지분 50%를 매입했다. 아르망 드 브리냑은 2006년 설립된 브랜드로, 2009년 제이지의 뮤직비디오에서 ‘고가의 주류’ 이미지로 아르망 드 브리냑 샴페인이 등장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다.

루이비통이 이처럼 힙합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성공의 경험이다. 과거 윌리엄스와의 협업도 성공적이었고 웨스트와의 협업은 세계적 화제가 될 정도였다. 루이비통은 웨스트와 함께 스니커즈를 만들어 패션에 관심 있는 전 세계 젊은층을 홀렸다.

루이비통이 힙합에 관심을 갖는 더 중요한 이유는 확장성 때문이다. 현재 세계 대중음악의 장르는 힙합과 K팝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이 있다. 록·발라드·댄스·월드 뮤직 등은 이들 두 분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왜소해졌다는 얘기다. 결국 대중문화 가운데 패션에 영향력을 미치는 유일한 장르가 힙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명품의 영토 확장을 위해서는 힙합과 손잡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최근 수년간 스트리트 패션이 크게 성장한 것과 아블로가 힙합과 럭셔리의 결합을 통해 시장을 넓혀 놓은 것도 루이비통의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물론 루이비통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힙합만이 아니다. 루이비통은 바베이도스 출신 흑인 여가수 리한나와도 협업했다. 2018년 자본금 3000만 유로(약 417억원)를 투자해 리한나와 함께 ‘젝트 라우드’를 설립하고 이듬해 럭셔리 브랜드 ‘펜티’를 론칭했다. 의류·신발·액세서리 등을 선보였고 펜티는 LVMH의 새로운 명품 라인업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2년 만에 중단됐다.

간호섭 패션디렉터 겸 의상학 박사는 “가수는 전문성 있는 디자인 직원들에게 실무를 의존하는 대신 기존의 틀을 깨는 발상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이라며 “그래서 퍼렐은 남성복 디자이너라기보다 남성복 디자인 총책임자(Men’s Creative Director)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아디다스는 칸예 웨스트(사진 오른쪽)와 협업했다. (사진=아디다스 홈페이지)
아디다스는 칸예 웨스트(사진 오른쪽)와 협업했다. (사진=아디다스 홈페이지)
스포츠 브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가수들이 스포츠·캐주얼 브랜드와 협업한 효과는 더 강력하다. 웨스트가 나이키·아디다스와 협업해 만든 ‘이지’ 운동화는 오픈런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는 데 일조했다. 또 미국 SPA 브랜드 갭(GAP)에서 40만원이 넘는 옷을 포댓자루에 담는 파격적인 시도는 고객들이 갭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20만원이 넘는 한정판 갭 제품은 오픈과 동시에 완판됐다.

웨스트가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브랜드는 여전히 그를 원한다. 지난해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아디다스와의 계약이 종료됐는데 최근 업계에서는 아디다스가 다시 웨스트와 손잡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나이키는 미국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캇과 스니커즈를 만들고 가수 지드래곤과도 수차례 협업해 한정판 제품을 선보였다. 가수와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대가 브랜드를 움직이고 있다.

실제 가수의 문화적 영향력이 브랜드에 긍정적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대에 셀러브리티를 만나고 더 나아가 그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직접 향유·소비하고 싶어 하는 현상이 브랜드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분석이다.

간 박사는 “가수는 타 분야보다 훨씬 큰 자율성이 보장된다”며 “자율성이 창의성과 이어져 패션하우스에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가수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는 영화 흥행으로 인기를 얻더라도 영화의 줄거리나 배역에서 맡은 이미지를 배우 혼자 바꿀 수 없다. 반면 가수는 본인의 철학을 음악과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 작업에 녹여 낼 수 있다는 것이 가수가 가진 장점인 셈이다.

게다가 브랜드와 가수의 궁합도 좋은 편이다. 가수에게 보장된 자율성이 많은 부분에서 패션에 그대로 표현될 수 있고 그들의 콘텐츠를 통해 헤어·메이크업·의상·액세서리까지 패션에 관한 모든 아이템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가수와 패션 브랜드의 협업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간 박사는 “거스를 수 없는 문화적 흐름”이라며 “브랜드와 가수의 협업은 경계를 허문 탈경계성,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융합성, 새 패션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유희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게 만들어진 패션을 통해 브랜드와 가수를 동일시하며 새로운 소비 집단과 팬덤을 만들어 내는 동시 개념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브랜드와 가수 간 컬래버레이션의 문화적 특성”이라고 덧붙였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