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 부채 8조원 줄어…다중 채무자 늘어나는 등 위험성 여전
[비즈니스 포커스] 1867조원.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국의 가계 부채 총금액이다. 한국은행은 2월 21일 ‘2022년 4분기 가계 신용’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금융권 전체 가계 대출과 카드사·백화점 등 판매 신용을 더한 가계 신용 잔액은 직전 분기와 비교해 4조1000억원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연간 가계 대출도 약 8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가장 큰 폭의 감소다. 지난해 3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감소세다.‘가계 부채’는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로 손꼽힌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2분기를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4.3%. 유로존을 포함한 조사 대상 36개국 중 1위다. 부채 증가 속도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계 부채 증가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최근 가파른 금리 인상과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주택 대출 수요 감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속살을 한 꺼풀 벗기고 들어가 보면 ‘한국 경제 뇌관’이라고 일컬어지는 가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은 여전하기만 하다.
가계 부채 줄었다지만…‘연 소득 두 배 이상’ 빚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저금리 지속 등의 요인에 의해 급증했던 가계 신용은 2022년을 기준으로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계 금융 불균형 수준은 금융 위기 수준을 웃돌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금융 불안정성, 장기 균형선 넘고 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한국의 가계 빚이 급증한 결과 가계 부채의 위험성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보다 심화됐다는 것이다. 실제 2019년 약 1600조원 규모였던 한국의 가계 부채는 2020년 1726조원, 2021년 1862조원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 또한 2019년 95% 수준에서 2022년 105% 수준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로 금리 시대에서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이와 같은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가계 부채가 채무 상환 능력을 약화시켜 실물 경제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가계 빚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안심하지 못하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0.5%에서 0.25%포인트 올린 이후 지금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금리를 인상하며 현재 3.50%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 규모가 2조9000억원 정도 증가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특히 한국의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용범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된 글에서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면 한국의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미국의 두 배 이상 높기 때문에 한국이 금리 인상의 충격을 더 크게 받는 쪽이다’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가처분 가능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19년 188.2%에서 2021년 기준 206.5%까지 높아진 상태다. 쉽게 말해 사용 가능한 연소득 대비 두 배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는 의미다. 2021년 기준 미국의 가처분 가능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1.2%다.
가계 대출이 감소세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다중 채무자가 늘고 있다는 점도 우려의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나이스평가정보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2월 말과 비교해 2022년 9월 말 기준 다중 채무자 비율은 0.5%포인트 높아진 22.7%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 가계 대출은 소폭이나마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인해 자영업자 등 한계에 다다른 이들이 2금융권 등에서까지 돈을 빌리며 다중 채무자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가계 대출의 ‘취약고리’로 일컬어지는 다중 채무자는 현재 약 44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금융회사 중 저축은행과 30대 이하, 중·저소득 계층의 다중 채무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금리 인상기에 더욱 중요해지는 ‘가계 부채 다이어트 전략’
일반적으로 부채 증가는 소비를 늘리는 데 긍정적인 요소로 평가되지만 소득 흐름과 무관하게 부채가 증가하면 오히려 채무 상환 부담에 따라 소비를 제약하는 요소가 된다. 더욱이 최근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까지 더해진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가계 부채 다이어트 전략 1- 고금리 대출부터 상환하라
가계 부채 다이어트 전략을 위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금리’다. 한국은 특히 가계 부채에서 변동 금리 비율이 높은 편이다. 2022년 11월 기준 한국 가계 부채 가운데 77%가 변동 금리다. 금리 인상의 충격이 바로 ‘높은 이자 부담’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고금리 상황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이자 부담을 줄여 나가는 것이다. 여웃돈이 있다면 ‘대출 상환’을 우선시하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 고제헌 신한PWM압구정센터 PB팀장은 “고금리 대출부터 상환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카드사의 현금 서비스와 같은 단기 대출이나 캐피털사의 자동차 할부 대출 등과 같은 제2금융권 대출을 먼저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데다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통장은 사용한 만큼 대출 금리를 부과하기 때문에 만약 한도를 꽉 채워 사용하고 있지 않다면 여유 자금 성격으로 유지해 두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가계 부채 다이어트 전략 2 – 변동 금리 vs 고정 금리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빚을 내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신규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고정 금리’와 ‘변동 금리’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게 좋을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저금리 시기에는 변동 금리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 비슷한 조건이라면 미래의 금리 변동 리스크를 반영한 고정 금리가 변동 금리보다 높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되면서 변동 금리가 고정 금리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의 상황만 살펴보면 ‘고정 금리’가 더욱 유리하게 비쳐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미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시점’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월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고 못 박은 바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2년 정도의 대출 상품이라면 고정 금리가 유리할 수 있고 5년 이상 장기 대출이라면 변동 금리를 선택하면 추후 금리 하락에 따른 수혜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가계 부채 다이어트 전략 3- 금리인하요구권 등 활용하기
대출을 받았을 때보다 신용 상태가 좋아졌다는 판단이 들면 금융사에 금리를 내려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금리인하요구권’을 적극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신용 등급이 상승했거나 급여가 인상됐거나 승진했을 때도 대출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할 수 있다. 다만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은행마다 천차만별이다. 긍정적인 것은 최근 정부 또한 은행 고객들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각 은행마다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에 대한 공시가 강화되는 만큼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했을 때 받아들여지는 비율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보다 낮은 금리의 대출로 옮겨 가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는 오는 5월부터 온라인상에서 편리하게 낮은 금리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금융권 대환 대출 인프라’를 가동한다고 2월 19일 밝혔다. 민간의 ‘대출 비교 플랫폼’과 금융결제원의 ‘대출 이동 시스템’을 연계한 것이다. 지금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출 상품을 비교하더라도 실제 대출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금융회사를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온라인상에서 이와 같은 모든 절차가 가능해진다. 토스·카카오페이 등 기존에 대출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 13곳을 포함해 은행·카드사·저축은행 등의 상품도 온라인에서 비교한 뒤 바로 갈아탈 수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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