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IRA 3월 중 발표, 엘앤에프 3.8조원대 테슬라 공급 계약 등 청신호

[비즈니스 포커스] ‘배터리 관련株’가 왜 이럴까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가 곳곳에서 들렸던 이유…‘배터리주’에 무슨 일이
지난 2월 28일 오전부터 증권 관련 텔레그램방에는 홍진영의 노래 ‘사랑의 배터리’가 돌아다녔다. 뭔 일인가 하고 살펴보니 엘앤에프 등 배터리 관련주 급등을 축하하는 의미였다. 이날 엘앤에프와 천보 등은 7~8%대의 급등세를 보였다.

연초 이후 올해 주가 상승률로 보면 다른 배터리주도 강세였다. 포스코케미칼(15.4%), 엘앤에프(41.3%), 아이에스동서(63.8%), 성일하이텍(44.4%), 새빗켐(57.5%) 등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모두 배터리 소재 또는 폐배터리 사업을 영위하는 배터리 업체들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배터리’ 관련주라면 온통 빨간불이다. 연초만 해도 전기차 수요 감소 우려로 하락세를 탔던 배터리주다. 전문가들 역시 상승 시기를 가늠하지 못했다. 두 달 사이에 배터리 시장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포스코케미칼, 엘앤에프 등 주가 급등1월 말 포스코케미칼의 주가가 급등했다. 원인은 상품 공급 계약 체결이다. 포스코케미칼은 삼성SDI에 전기차용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 소재를 중·장기에 걸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1월 30일 밝혔다. 계약 금액은 40조262억원으로 이 회사 매출액의 2011.8%에 달하는 규모다. 창사 이후 최대의 수주 규모에 주가는 크게 반응했다. 이미 수주 공시가 올라오기 나흘 전인 1월 26일 포스코케미칼의 주가가 전 거래일보다 14.06% 뛰었다(현재 선행 매매 의혹으로 일부 증권사 조사 중). 2월 10일에는 장중 24만3500원을 찍으며 52주 최고가를 경신했다.

2월 28일에는 엘앤에프가 움직였다. 이날 엘앤에프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에 약 3조8347억원대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 매출액의 395%에 달하는 규모로, 계약 기간은 2024년 1월 1일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2년이다. 엘앤에프의 주가는 이날 장중 28만5000원으로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연초(1월 2일) 18만5400원에서 41.3% 뛴 것이다.
홍진영의 '사랑의 배터리'가 곳곳에서 들렸던 이유…‘배터리주’에 무슨 일이
배터리 소재 중 양극재 기업들이 잇달아 대규모 단위의 수주 공시를 내면서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연초만 해도 2차전지 글로벌 대장주인 테슬라를 중심으로 국내외 전기차 관련주들이 동반 급락세를 보이는 등 2차전지 관련주 투자 심리가 약화됐을 때였다. 2022년 한 해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기차 수요가 둔화하면서 4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 것이란 예측 때문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테슬라 주가가 2020년 8월 11일(91.63달러)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 선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예측까지 불거졌다.

월가에서는 2023년에도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 기업의 주가가 불안할 것이란 예측도 내놓았다. 애덤 조나스 모간스탠리 애널리스트는 “금리 인상에 따른 전기차 수요 감소 등 전기차 판매에 대한 불리한 변화가 예상된다”며 “전기차 기업의 주가는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테슬라 주가는 2월 28일 기준 205.71달러다.

테슬라를 뛰게 한 것은 수요 증가도, 공급 계약도 아니다.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반값 전기차’ 청사진에 기대를 걸었다. 테슬라가 3월 1일 투자자 행사인 ‘인베스터 데이’를 열며 해당 내용을 공개할 것이란 기대감이 투자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뚜껑을 열어 보니, 이번 발표에서는 시장에서 기대하던 신차, 이른바 ‘반값 전기차’에 대한 소개는 빠졌다. 다만 차세대 모델의 조립 비용을 현재 모델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테슬라 경영진은 차세대 모델에 대해서는 추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테슬라 주가는 발표 후 시간 외 거래에서 급락했으나 여전히 반값 전기차에 대한 기대감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0월 “테슬라 개발팀이 모델3와 모델Y 플랫폼의 절반 가격이 될 차세대 전기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밀하는 등 꾸준히 경제적인 가격에 전기차를 공급하겠다고 시사해왔기 때문이다. 장기 경영 계획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며 테슬라 주가는 올 들어 92% 급등했다. 머스크 CEO는 두 달여 만에 세계 부자 1위 자리를 탈환했다.

3월 14일에는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는 유럽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이 공개될 예정이다. 리튬·코발트·희토류 등 배터리 핵심 원자재의 중국·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고 역내 핵심 원자재 조달 비율을 높인다는 게 법안의 주요 골자다. 이를 위해 유럽에서 생산 또는 재활용된 원자재가 적용된 제품에 한해 보조금 혜택을 주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리튬·코발트 등 2차전지 핵심 원자재가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CRMA에 폐배터리 재활용 의무 요건 등이 담길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지면서 폐배터리 기업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 아이에스동서·성일하이텍·새빗켐·이지트로닉스·인선이엔티 등 폐배터리 관련주들은 일제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한 사업을 영위하거나 이를 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이다.

폐배터리 시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주목받았다. 이유는 명확하다. 전기차 수요 감소의 우려가 있지만 시장의 성장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연히 배터리의 소재 값도 뛰었다. 배터리 소재 중 하나인 리튬 가격이 2015년초 대비 16배 올랐고 니켈·코발트·망간·구리 등의 가격 변동 폭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리튬·코발트·니켈 등의 매장량이 특정 국가 중심으로 집중돼 지역적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것도 전기차 시장의 큰 고민이다.

배터리 값이 오르고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다 보니 시장이 주목한 것은 재활용 시장이다. 폐배터리를 재사용하면 신품 대비 30~50%의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 역시 가격 경쟁력과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폐배터리 산업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이중 유럽연합(EU)은 폐배터리의 수거 비율을 현재 45%에서 2025년 65%, 2030년 70%로 상향 조정했다. 2030년부터 배터리 생산시 주재료의 일정 부분에 재활용 원료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2월 27일 폐광물 재자원화 등의 내용을 포함한 ‘핵심 광물 확보 전략’을 발표했다. 리튬·니켈 등 2차전지와 배터리 등 주력 첨단 산업 제품에 들어가는 필수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수입 의존도를 50%대로 대폭 낮춘다는 방안이다.

국내외 많은 기업들도 이러한 국내외 정책에 발맞춰 2023년을 기점으로 재활용 공장을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자동차 제조 업체인 현대차·기아그룹의 에너지 저장 장치(ESS) 사업을 필두로 폐배터리 재사용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제조 업체 3사는 재사용·재활용 사업 진출이 활발하다. 가장 큰 목적은 배터리 원재료 확보에 있다. 2022년에는 성일하이텍·새빗켐 등의 폐배터리 관련 기업이 상장하면서 큰 관심을 받았고 주가 상승을 주도했다. 이 밖에 소재 업체와 유사 기술을 보유한 다양한 기업의 폐배터리 사업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배터리 관련주들의 주가는 단기 과열 국면에 진입한 만큼 숨고르기가 예상되지만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연말연시에는 전기차 판매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예측 때문에 배터리 섹터 주가가 많이 빠졌다”며 “지금은 유럽 CRMA에 대한 기대감과 양극재 주요 업체들의 대규모 수주 공시로 배터리 기업의 성장에 다시금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2차전지 시장은 성장의 기울기에 대한 이견이 있을 뿐 사업의 구조적 성장성 자체는 확고하다”며 “단기 과열 국면에 진입한 만큼 장기 성장주나 장기 우량주 중심으로 장기적인 투자 흐름을 가져 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