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저작권, 부동산, 미술품 등 ‘제도권 편입’된 조각 투자 플랫폼…‘새 시장’ 문 열리자 시장 선점 잰걸음

국내 대표적인 음악 저작권 조각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 사진=연합뉴스
국내 대표적인 음악 저작권 조각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 사진=연합뉴스
뮤직카우와 같은 ‘조각 투자 플랫폼’이 제도권에 편입되며 금융 시장의 새로운 투자 상품으로 탄생했다. 금융 당국이 지난 2월 토큰 증권(Security Token)의 발행 및 유통을 허용하며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ST는 쉽게 말해 부동산·미술·저작권 등의 다양한 실물 자산을 토큰 형태로 발행한 디지털 자산이다. 이 ST를 발행하는 것을 STO(Security Token Offering)라고 말한다. 주식 시장의 기업공개(IPO)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쉽다. 금융위원회는 ST의 발행을 ‘음식’과 ‘그릇’에 비유해 설명했다. 부동산·미술·저작권처럼 기존에는 투자가 어려웠던 ‘음식(증권)’들을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그릇(증권의 발행 형태)’에 담아 보다 손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ST의 제도권 편입 이후 조각 투자 플랫폼은 물론 한국 증권사들도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ST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등 외에도 선박·항공 등 실물 자산이 존재한다면 무엇이든 투자가 가능하다. 증권사들도 한국의 금융 혁신을 이끄는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토큰 증권과 조각 투자, 뭐가 다를까?

2018년 시작된 뮤직카우는 한국의 ‘조각 투자’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자본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였다. 주식처럼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쉽게 사고팔 수 있다는 점도 조각 투자 플랫폼의 장점으로 꼽혔다.

뮤직카우가 큰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20년 무렵, 군부대 위문 공연 영상으로 역주행 신화를 쓴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효과를 톡톡히 봤다. 뮤직카우에서 2만원대에 거래되던 노래 가격이 6개월 만에 130만원까지 치솟으며 입소문을 탄 것이다.

하지만 뮤직카우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뮤직카우의 사업 모델이 사실상 주식을 상장한 뒤 사고파는 형식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 투자업 인허가를 받지 않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뮤직카우가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뮤직카우의 ‘증권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토큰 증권’의 제도권 편입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지난 1월 금융 당국은 조각 투자 같은 증권형 디지털 자산을 ‘토큰 증권’이라고 부르고 발행과 유통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어 지난 2월 ‘ST의 발행·유통 규율 체계 정비 방안(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토큰 증권을 “분산 원장 기술을 이용해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분산 원장 기술은 ‘블록체인 기술’이다. ‘토큰’이라는 용어 때문에 암호화폐와 마찬가지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암호화폐와는 완전히 다르다.

토큰 증권은 비트코인 등 가상 자산과 달리 증권으로 발행되고 자본시장법상 규제를 받는다. 가상 자산은 실물 기초 자산이 없다. 이와 비교해 조각 투자를 포함한 토큰 증권은 부동산·미술품·음원 등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증권을 발행한다. 투자 대상이 되는 실물 자산에 따라 투자자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금융 상품이라는 점에서 ‘증권의 성격’을 띤다. 사실상 ‘토큰’보다 ‘증권’에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금융위원회의 정의에 따르면 토큰 증권은 실물 자산을 토큰화한 것이다. 자산을 ‘토큰화한다’는 것은 특정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디지털화한다는 의미다. 실물 자산을 디지털화하면 블록체인상에서 거래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된다. 전자 증권과 동등한 투자자 보호 장치가 적용되면서도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분산 원장 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존 전자 증권은 물론 기존의 조각투 자 플랫폼과도 차이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일반적인 조각 투자와 토큰 증권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이다. 한국의 조각 투자 플랫폼 가운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지 않는 곳이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의 STO는 ‘자금 조달’을 손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이와 비교해 한국의 STO는 유동화가 어려워 일반인의 진입이 어려운 자산을 토큰화하는 ‘조각화’에 조금 더 집중돼 있는 분위기다.

한국형 STO, 헤게모니 잡아라…증권사-조각 투자 플랫폼 ‘합종연횡’ 활발

토큰 증권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문이 열리면서 기존의 조각 투자 플랫폼은 물론 증권사들도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당장 STO를 통해 큰 수익을 창출하지는 못하더라도 다양한 실물 자산을 디지털화함으로써 소비자들이 금융 플랫폼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고 디지털 플랫폼으로서의 브랜드를 단단히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플랫폼을 ‘선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키움증권이다. 뮤직카우를 비롯해 디지털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 비브릭과 펀블, 미술품 조각 투자 플랫폼 테사 등 11곳의 조각 투자 플랫폼과 빠르게 업무 협약을 맺었다. 조각 투자 신규 비즈니스 모델에 착수했으고 이와 함께 자사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에서 STO를 거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한국토지신탁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신탁수익증권 방식의 토큰증권 서비스를 제공을 위한 내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미래형 금융 상품의 키가 될 투자계약증권 인프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외에 주요 조각투자업자를 비롯한 다양한 회사와의 협업 등을 통해 금년 3분기 중 조각투자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과 하나증권도 부동산 수익 거래 플랫폼 개발사인 ‘루센트블록’과 손잡았다. 루센트블록은 부동산 조각 투자 플랫폼 ‘소유’를 운영 중이다. 한국의 조각 투자 업체 중 최초로 전자 증권 제도를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하나증권은 소유의 게좌 관리 기관으로 참여하고 있고 한국투자증권은 루센트블록과 전략적 투자 및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SK증권은 부동산 조각 투자, 미술품 공동 구매 서비스 기업 등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 중이고 가상 자산 거래소 운영사인 ‘지닥’, ‘피어테크’ 등과 디지털 자산 수탁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NH투자증권은 토큰 증권 협의체인 ‘STO 비전그룹’을 출범했다. 미술품 조각 투자 플랫폼 투게더아트, 비상장 주식 중개업자인 서울거래비상장, 블록체인 기술 기업인 블록오디세이 등이 참여하고 있다.

박혜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사실상 투자 자산의 다양화라는 관점에서 전 세계 STO 시장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며 “부동산·골동품·미술품·인프라·선박·비행기까지 조각 투자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STO를 통해 투자자에게 또한 다양한 기회가 열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인터뷰> “STO가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려면, 핵심은 투자자 보호”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 사진=루센트블록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 사진=루센트블록
루센트블록이 운영하는 ‘소유’는 고가의 상업용 부동산을 소액 단위로 증권화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는 일종의 부동산 증권 거래소와 같은 곳이다. 5000원부터 투자가 가능하다. 현재까지 안국다운타우너, 이태원새비지가든, 대전 창업스페이스까지 3건의 공모를 완료하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2021년 5월 금융위원회에서 혁신 금융 서비스에 지정됐다. 조각 투자 업체 중 최초로 전자 증권 제도를 도입한 곳으로 토큰 증권 시대의 개막을 맞아 더욱 주목받고 있는 플레이어다. 루센트블록의 허세영 대표에게 ‘토큰 증권의 미래’와 ‘성공 조건’을 들었다.

-기존의 조각 투자를 증권화했을 때 투자자들이 얻게 되는 가장 큰 이점은 뭔가.
“규모가 커 거래가 어려웠던 부동산·지식재산권·미술품 등 자산들을 쪼개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게 만든 것이 조각 투자다. 이를 증권화하게 되면 재산상의 권리가 기재된다는 뜻이다. 증권의 거래가 주식의 명의 개서와 마찬가지로 투명하게 기록된다. 또한 토큰 증권은 자본시장법상 규제 대상이다. 결국 핵심은 투자자 보호라고 할 수 있다. “
-조각 투자 업체 중 최초로 토큰 증권 제도를 도입했다.
“실제로 토큰 증권 도입 후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더 많은 매력적인 자산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토큰 증권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투자할 만한 자산이 더 많아져야 한다.”
-선발 주자로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 소비자 보호다. 현재로서는 어떻게 안전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끊임 없는 고민을 통해 고객들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선례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루센트블록은 보다 안전한 투자를 위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소유는 신탁사와 함께 부동산을 5000원 단위로 쪼개 수익 증권을 다수 발행해 예탁결제원에 전자 등록하는 방식으로 부동산 유동화를 진행한다. 고객은 소유를 통해 투자하게 되면 수익 증권을 소유할 수 있다. 고객의 수익 증권과 예치금은 계좌 관리 기관인 하나증권을 통해 관리하고 있어 투명하고 안전한 구조다. 해당 구조는 이번 금융위원회의 STO 가이드라인에서 명시한 구조와 같은 구조다.”
-STO 시장이 새로운 투자 시장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결국 본질은 고객이다. 이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증권사와 조각 투자 플랫폼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결국 본질은 고객이다. 얼마나 안전하게 양질의 가치를 고객에게 줄 수 있느냐에 따라 결국 이 시장의 승자가 판가름 날 것이다. 현재로서는 금융 소비자 보호를 제1 원칙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 투자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고객과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향후 루센트블록의 계획은 세웠나.
“소유의 비전은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모든 이에게 소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건물주, 건물 안에서 영업을 하는 임차인, 그 건물에서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상권과 건물의 가치를 만드는 주체라고 생각하고 그 세 주체가 상생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제 시작인 단계이고 갈 길은 멀지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한국형 STO 시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2월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이 발표됨에 따라 조각 투자 시장에 대한 전망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팀들이 STO 시장에 참여해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매력적인 자산에 대한 접근 기회를 열어 주길 희망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들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