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주류 “이재명 얼굴로 총선까지 갈 수 없다”… ‘난닝구’‘백바지’ 충돌 재현되나

홍영식의 정치판

더불어민주당에 ‘이재명 대표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위례·대장동 개발,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구속 영장이 청구된 이 대표에 대한 체포 동의안이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다. 형식은 부결이지만 내용에선 찬성표가 더 많아 가결로 봐야 한다. 여야 의원 297명이 무기명 투표했다. 가결되려면 출석 의원 과반인 149표가 필요했다. 결과는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로 가까스로 부결됐다. 민주당 의원 전원(169명)이 표결에 참석했음에도 반대가 138표에 그친 것을 보면 민주당에서만 반대·무효·기권 등 30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온 것이다.

압도적 부결을 장담하던 이 대표는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수준을 넘어 대표직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처지에 몰렸다. 부결됐지만 이재명 리스크는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 셈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대표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이 대표에게 당을 계속 믿고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번 부결로 이 대표의 신뢰 자본이 바닥을 드러냈다”며 “당 바깥에선 사법 리스크가 이 대표를 옥죄고 당내에선 잠복해 있던 불만들 폭발로 인해 정치적인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단기간에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전통 지지층의 거부 반응을 뚫고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고 당 대표도 거머쥐었다. 민주당 주류 교체의 물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에 닿는다.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도 주류 교체가 역사적 당위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구 동교동계 색채를 완전히 지웠다. 이 대표 체제에 들어와선 자기만의 색채를 가미했다. 민주당 전통 지지층과 기존 주류들을 제치고 친이명계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외곽에선 ‘개딸’, ‘양아들’ 등 든든한 팬덤을 형성했다. 불과 2년도 안 돼 당 안팎에서 친이재명 색채를 확실하게 칠하면서 구주류의 목소리는 물밑에 잠겼다. 이상민·조응천 의원 등 간간이 견제의 목소리가 들려 왔지만 찻잔 속에 그쳤다.
‘이재명 리스크’의 본질은 민주 정신 훼손, 신뢰·도덕 붕괴, 先私後黨[홍영식의 정치판]
◆ “이번엔 부결이지만 결단하라” vs “뒤통수 때리기”

이런 당 안팎에 쌓은 두터운 방탄층 때문인지 이 대표는 체포 동의안 부결 뒤에도 “윤석열 독재 정권의 검사 독재에 맞서 싸우겠다”고 했다. 이재명계는 이탈표 색출에 나섰고 팬덤은 반동 분자를 가려내겠다고 눈을 부라리고 있지만 당내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민주당은 세 번 집권한 68년의 관록을 가진 정당이다. 방탄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보는 민주당 구주류 세력은 ‘민주당=신예 이재명’ 등식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려는 기세다.

민주당의 한 원로의 말이다. “그 엄혹한 시대를 뚫고 반석을 다져 온 민주당이 사당화(私黨化) 등 비민주적으로 돼 가는 데 대한 전통 민주당 세력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그래도 숨죽이고 있었던 것은 당 분열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된다면 전통의 민주당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만있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떠돌다가 민주당에 숟가락만 들고 온 것 아닌가. 그의 리스크가 당의 리스크로 더 이상 이어지게 해선 안 된다. 적어도 그의 얼굴로 총선까지 가게 둘 수는 없다.”

설훈 의원 등 구주류 측 인사들은 체포 동의안 부결 뒤 이 대표 당직 사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조응천 의원은 체포 동의안 표결 전 “반명계 대표인 설 의원마저 이번에는 부결해야 된다고 말한 것은 부결시키되 대표가 모종의 결단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비명계 이상민 의원도 “무더기 이탈표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당이 송두리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의 거취 표명을 압박한 것이다.

민주당의 원로 권노갑 전 의원은 이 대표 면전에서 “이번 체포 동의안이 부결되더라도 다음엔 떳떳하게 임하라”고 했다. 이 대표의 사법적 리스크가 커지는 데도 대표직을 유지한 채 방탄에 기댄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경고의 뜻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와 경쟁했던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 등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심상치 않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공고한 진지를 구축한 친명계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비명계가 부결을 외쳤는데도 대규모 이탈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친명계들은 ‘비명계의 뒤통수 때리기’ 프레임까지 걸고 있다.
◆백현동·정자동, 쌍방울 대북 송금 등 수사 줄줄이

최대 변수는 검찰 수사의 향방이다. 위례 신도시·대장동 개발 특혜와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한 체포 동의안이 부결됐지만 검찰은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할 예정이다. 검찰이 천화동인 1호 지분 428억원 상당 약정 의혹(부정 처사 후 수뢰) 등과 관련해 보강 수사를 거쳐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 경우 구속 영장을 다시 청구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면 민주당이 방탄 국회를 지속하고 있어 국회에 다시 체포 동의안을 제출해야 한다. 백현동·정자동 개발 비리 의혹, 쌍방울 그룹의 대북 송금 의혹 등 수사도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의혹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건건이 방탄을 하기에는 명분도 약하고 성공 확률도 낮다. 그 무엇보다 민심이 받쳐 주지 않는다. 최근 여러 여론 조사에서 체포 동의안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고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 찬성 응답도 반대보다 월등하게 높은 마당이다. 게다가 당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민심이 이러는 데도 친명계가 ‘기승전 이재명 지키기’에 나선다면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때의 ‘난닝구(실용주의파)’와 ‘백바지(개혁파)’ 충돌로 인한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와 같은 일을 다시 맞게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신뢰가 붕괴된 근저에는 숱한 내로남불이 자리하고 있다. 불체포 특권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2022년 5월 선거 유세를 하면서 “의원들의 면책·불체포 특권이 너무 과하다. 특권 폐지 100% 찬성한다”고 한 바 있다. 또 “이재명과 같은 깨끗한 정치인에게 불체포 특권은 필요 없다”는 말도 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공약으로 불체포 특권 제한을 내걸기도 했다. 그래 놓고 이 대표 체포 동의안에 대해선 ‘검찰 독재 정권의 정치 탄압’ 명분으로 내던져 버렸다. 기소 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 80조도 이 대표에겐 예외라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줄곧 주장해 온 민주주의 구호의 허구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가 불거진 이후 틈만 나면 민주주의를 입에 올렸다. “이재명을 부숴도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말라.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분쇄하겠다….” 민주주의 훼손 근거로 검찰 수사의 부당성과 윤석열 정부의 검찰 독재를 들고 있다. 하지만 개인 범죄 의혹에 대한 수사는 민주주의 파괴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자신의 개인 비리 의혹 방어를 위해 민주주의를 악용해 왔다. 민주당도 이견이 큰 법안은 충분히 숙의(熟議)하도록 한 안건조정위원회 제도 취지를 깡그리 무시하고 꼼수까지 부려 가며 양곡관리법 등을 상임위에서 일방 처리했다. 의회 민주주의 기본인 절차적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것이다. 말은 ‘선당후사(先黨後私)’지만 당 전체가 온통 ‘선사후당’에 나선 것이 이 대표와 민주당 위기의 본질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