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 피부양자 첫 인정
법원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안 돼”

[법알못 판례 읽기]
그래픽=송영 기자
그래픽=송영 기자
동성 커플의 국가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처음 나왔다. 앞서 1심에선 동성 결합과 남녀 결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지만 2심 재판부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할 수 없다”며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1심 “동성 커플, 사실혼 아냐”

서울고법 행정1-3부(부장판사 이승한 심준보 김종호)는 2023년 2월 21일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원고 패소로 판단한 1심을 뒤집은 것이다.

소 씨는 김용민 씨와 2019년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2020년 2월 동성 부부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대상에 해당하는지 건보공단에 문의했다. 공단은 가능하다고 답변했고 이에 소 씨는 건강보험공단에서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직장 가입자의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 중 시행 규칙이 정한 부양 요건에 부합하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규정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역시 피부양자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동성 커플을 부부로 인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가자 같은 해 10월 소 씨의 피부양자 자격을 무효로 하고 보험료를 새로 부과했다.

이에 두 사람은 2021년 2월 “동성 부부는 실질적 혼인 관계에 있음에도 동성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며 건보공단을 상대로 피부양자 자격 무효화에 따른 보험료 부과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2022년 1월 1심 재판부는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민법·대법원·헌법재판소의 판례, 사회의 일반적 인식을 모두 모아 보더라도 혼인은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근본 요소로 한다고 판단되고 이를 동성 간 결합까지 확장해 해석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즉 건보공단이 지금까지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에 대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왔지만 동성 커플은 사실혼 관계의 부부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자격을 누릴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2심 “사실혼 아니어도 차별 안 돼”

2심 재판부는 이런 판결을 뒤집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으로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우선 현행법상 혼인이 남녀 간의 결합을 의미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소 씨와 김 씨의 관계를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이라고 명명했다.

다만 사실혼 관계는 아니더라도 이들을 사실혼 배우자들과 달리 대우할 이유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동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같은 생활 공동체 관계에 있는 사람의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혼과 비교 대상이 되는 동성 결합은 동거·부양·협조·정조 의무에 대한 상호 간 의사, 사실혼과 동일한 정도로 밀접한 정서적·경제적 생활 공동체 관계를 전제로 한다”며 사실혼과 동성 결합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집단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건보공단이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는 피부양자를 인정하면서 동성 결합 상대방 집단에 대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 대우라고 봤다. 건보공단의 처분이 평등 원칙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생활 공동체 개념 달라져”

이번 판결은 동성 커플의 부양 의무를 법원이 인정한 첫 사례다. 항소심 재판부는 제도 도입 취지를 보면 피부양자의 범위가 법률이 정한 가족 및 부양 의무의 범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피부양자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직장 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보호 대상이 돼야 할 생활 공동체 개념이 기존의 가족 개념과 달라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성적 지향은 선택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으로, 이를 근거로 차별 받을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고 기존 차별들은 국제 사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누구나 어떤 면에서 소수자일 수 있고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틀리거나 잘못된 것일 수는 없다”며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 이후 동성 커플의 지위를 판단해 달라는 관련 소송과 권리 구제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판결이 확정되면 동성 커플과 관련한 다른 법 해석과 제도도 이를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2심 선고 후 원고 측은 “오늘 사법 체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며 “동성 부부의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승리”라고 말했다. 건보공단 측은 “대법원까지 지켜보겠다”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돋보기]
폭넓게 인정되던 건보 자격, 점점 더 엄격하게 바뀐다

국민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제도는 원래 폭넓게 운영돼 왔지만 차별 논란에도 불구하고 피부양자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돼 왔다. 2016년에는 결혼한 이력이 있는 형제자매가 생활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피부양자 자격에서 제외됐고 2023년에는 외국인 피부양자의 자격이 강화됐다.

2016년 무임 승차 논란을 낳는 피부양자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형제자매라도 일단 결혼한 이력이 있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주지 않기로 건보공단 내부 자격 관리 지침이 바뀌었다. 결혼한 형제자매는 소득이나 재산이 없어 생계가 곤란하더라도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혼한 형제자매가 장애인등록자, 국가유공상이자, 중증질환 등록자인 경우에는 자녀 유무에 관계 없이 미혼으로 간주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기로 했다.

건보공단은 이전까지만 해도 이혼한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소득과 재산이 없고 자녀가 없거나 있더라도 친권을 포기하는 등 부양 요건을 갖췄을 때는 선별적으로 직장 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이혼한 형제자매와 달리 배우자와 ‘사별’한 형제자매는 보수나 소득이 없어 생활이 어렵더라도 혼인 관계가 종료되지 않은 상태로 간주하고 피부양자 자격을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차별이라는 문제 제기가 계속됐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나서 2014년 9월 평등권을 침해하는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며 복지부와 건보공단에 제도개선을 권고하고 나섰다.

건보공단은 이에 무임 승차 논란이 있는 피부양자 제도를 폐지하거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형제자매를 피부양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과 형제자매 간 부양 관계가 축소되는 현실을 반영해 결혼 이력이 있는 형제자매를 피부양자 자격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 외국인 피부양자에 대한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외국인 직장가입자 중 자신의 손자·형제자매 등 모든 가족을 등록해 한국의 건보 혜택을 누리는 상황이 지적돼 왔다.

이에 건보 당국은 외국인은 한국 입국 후 6개월 이상이 지나야만 피부양자로 인정해 건보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하고 지금처럼 입국과 동시에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