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받는 역할에서 벗어나 중추적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단계로의 변화 필요

[안주연의 다시, 연결]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습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카카오톡 아이디 poof34 또는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신입과의 갈등…세대 차이로 너무 힘듭니다”[안주연의 다시, 연결]
Q. 신입 사원과의 갈등이 많습니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세대 차이와 일의 방식 차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 차이로 인해 많이 다툼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협업을 통해 할 일이 많은 편입니다. 서로 맡은 역할도 있었지만 다 같이 준비하자고 했고 그런데 일을 맡기거나 하면 질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업무 떠밀기 또는 혹시나 일이 넘어오지 않을까 선 긋기 질문을 해도 모른다고 하는 모습에서 한심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신입 사원들의 능력치는 저보다 좋은 편입니다. 일은 모르겠지만 영어를 훨씬 잘하다 보니 영업직에서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제가 좌절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밤잠까지 설쳐 가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체력이 부족해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제가 회사에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제 성격은 지나치게 꼼꼼합니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영업이 잘 맞았고 사람의 마음을 아주 빨리 캐치합니다. 학창 시절에 큰 사건이 없었지만 자존감은 떨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는 저 혼자만의 카폐 투어, 와인 마시러 가기 등으로 해소하며 사람들 없이 조용히 지내는 편입니다. 가족과의 갈등은 크지 않고 워낙 독립심이 강합니다.

상대방의 눈치를 덜 보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도 궁금합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마인드맨션의원 제공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마인드맨션의원 제공
A. 안녕하세요, 수영(가명) 님.

편지로나마 만나뵙게 돼 반갑습니다. 회사 내 입지에 대한 불안으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자기 실적만 챙기려는 신입 직원들에게 분노와 얄미움을 느끼고, 신입 직원 관리를 떠맡기는 사장님의 우유부단으로 인한 답답함도 경험하는 듯합니다. 중간에 끼어 소통과 조율의 부담을 두 배로 느끼는 어려운 처치인 셈이지요. 이런 상황에 에너지를 뺏기며 실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다 보니 수영 님의 업무 효능감이 많이 떨어진 듯합니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이 잘 안 나왔을 때처럼 초조해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수영 님은 평가에 민감하고 눈치를 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면도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에 이 회사에 들어와 혼자 이것저것 익히고 작은 영업부터 해 나가며 성장해 왔겠지요. 대단한 일입니다. 영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학창 시절의 무력감과 자신감 부족에서 벗어나고 일의 재미도 맛보았을 거예요. 수영 님은 원래 이런 저력을 가진 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성적이라는 결과로만 수영 님을 판단했기 때문에 실제보다 위축돼 지내 왔던 것이 아닐까요. 이에 대한 심리적 정리가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공부머리는 별로이고 일머리는 좋은 사람’으로 단정하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안정된 업무 능력으로 자신의 강점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해도 좋을 즈음에 공교롭게도 신입 직원들을 맞이하면서 성취 강박과 위기감을 느낀 듯해요. 열등감이 고개를 들면 사람은 쉽게 자신의 과거의 스트레스 상황으로 돌아갑니다. 불안에 사로잡히면 자신이 속한 현실의 맥락을 관찰하고 필요한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에 성공했던 경험을 단순하게 반복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급한 마음에 무작정 토익 공부를 시작하고 영어학원 새벽반을 시작하는 ‘갓생 살기’로 흘러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수영 님에게 기대되는 바는 신입 직원들과 실적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입 직원들에게 업무 습득 요령을 알려주고 협업 규칙과 팀워크를 만들어 가는 사수로서의 역할이 영업직이라는 역할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상황입니다. 사장님이 수영 님에게 합당한 권위를 부여해 주면 좋았겠지만 명시적 지시나 직책이 없다고 해도 중견 직원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이러한 역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수영 님의 글에는 신입 직원들과의 불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경쟁에서 오는 불안은 있지만 연차가 올라가면서 필요한 리더십과 소통 능력에 대한 부담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일에 대한 성취욕도 있고 상대의 필요나 욕구도 잘 알아채는 수영 님이 왜 이 부분은 느끼지 못할까 궁금했어요. 저는 어쩌면 수영 님이 팀장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거절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자신이 아주 잘하지 않으면 조절과 조율을 당당히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위축된 마음이 중간 관리자 역할 자체를 버거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며 서로의 관점과 욕구를 조절하고 타협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중간 관리자는 후배들에게 기준을 제시하고 성과를 격려하는 사람이니 좋은 소리만 할 수는 없거든요. 요구를 받고 불퉁해진 후배들에게 ‘그러는 선배님은 완벽하냐’며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수영 님은 이런 평가적 비판에 아주 취약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업적이나 실력이 후배들과 월등하게 차이 나지 않으면 이런 리더의 자리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리더십이란 자신이 상대보다 많이 낫지 않더라도 좀 더 통합적인 시각과 에너지로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고 책임지려는 태도이자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리더십은 꼭 비즈니스에서가 아니라도 자신이 택한 가치와 방향에 대한 추진에서 필요한 실패와 고통을 견디며 나아가는 힘과 행동을 뜻합니다. 수영 님이 질문한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자존감이란 저의 말로 풀면 “나는 엄청나게 완벽하거나 훌륭한 정도는 아니지만 노력하고 나아지려고 하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는 감각입니다. 수영 님은 그동안 회사에서 성장하고 해결해 온 일들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멋진 분입니다. 이제는 경험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리더십으로 신입 직원들을 이끌고 사장님과 소통했으면 합니다. 설사 사장님이 실적으로 신입 직원들과 비교하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회사가 돌아가기 위해선 사장님이 강조하셨듯 우리의 일이 중요하기에 제가 후배들에게 이를 가르치고 있다, 교육에 에너지를 쏟다 보면 제가 개인 실적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장님이 지지해 줘야 저의 리더십이 힘을 받는다”라고 설득해 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잘된다면 리더십 교육에 대한 회사의 지원도 요청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수영 님. 상대의 욕구를 섬세하게 읽는 것은 엄청난 능력입니다. 이를 통해 고객을 최대한 만족시키고 상황을 조율하는 것이 수영 님의 영업 능력의 근간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내 소통과 협업에서는 욕구를 읽되 이를 다 만족시키고 갈등을 없애기보다 어떤 것은 무시하고 어떤 것은 소통하는 선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적절한 선을 찾아가는 여정을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실패를 허용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일의 실패와 자신을 분리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수영 님의 자존감 또한 단단해질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수영 님의 섬세한 마음 읽기 강점이 적재적소에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상대에 대한 눈치 보기가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세심함이고 사장님의 업무 지시를 속깊게 읽는 능력입니다. 선배로서는 후배들의 경쟁심을 읽고 그 에너지를 발전에 활용하도록 돕는 리더십입니다. 예를 들자면 “전체의 일은 함께 해야 한다, 자기 일만 해서는 회사가 안 돌아간다, 정 헷갈리면 자기 일 8, 공동의 업무 2로 딱 정해 줄 테니 그만큼이라도 해라”라며 수영 님의 경험담도 들려주고 협업해야 하는 이유와 목표를 알려 주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좋게, 부드럽게만 소통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 다양한 설득과 동기 부여, 단호한 요청과 원칙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사장님의 협조도 중요합니다.

이제는 평가받는 학생이나 신입 사원이 아니라 룰을 만들고 조절해 가며 후배들의 업무적 방향을 지원하고 시도에 대해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할 줄 아는 중추적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단계로의 이행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는 회사원으로서의 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수영 님의 회복과 변화에도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사람들이 고통을 치유하고 성장하는 순간들을 함께할 때 큰 배움을 얻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은 뻐근하게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덤벨을 놓치기도 하고 조심하지만 다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바라는 방향성을 결정한 뒤 필요한 자원을 찾고 도움도 요청해 가며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앞으로 회사에서의 수영님의 시간들이 함께 부딪치고 화해하며 뻐근하게 성장해 가는 날들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카카오톡 아이디 poof34 또는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