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유입되면서 인구 증가…삼성 캠퍼스 중심으로 상권 형성 중
올해 인구수 60만명 돌파 전망

[스페셜 리포트]지역 살리는 힘은 기업에서…‘평평한 땅에 연못만 있던’ 평택(平澤), 산업 도시 되다
논밭 중심의 평택시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들어선 이후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사진=삼성전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논밭 중심의 평택시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들어선 이후 산업도시로 변모했다. (사진=삼성전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요즘 울산에 현대중공업이라고 하는 데서 사람을 구한단다. 함 가봐라.”

약 40년 전쯤, 전국 각지에 이런 입소문이 돌았다. 일자리에서 목말라 있던 전국의 2030대 청년들이 울산으로 향했다. 얼마 후 울산에는 한자로 ‘현대중공업(現代重工業)’이라고 쓰여진 초록색 회사 점퍼를 입은 젊은 남성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자부심에 찬 눈빛들…. 그들은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도시 울산을 통째로 바꿔 놓기 시작했다.

일자리가 생기니 청년이 몰렸고 그들 주머니에 ‘꽤나 넉넉한’ 돈이 들어오자 결혼해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인구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생기고 아프면 가야 하는 병원이 지어지고 그들의 주거를 책임질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울산은 어업 중심의 작은 동네에서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산업 도시가 됐고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됐다. 1983년 조선업 세계 1위에 오른 현대중공업이 자리 잡은 결과였다.

2023년 3월 찾은 경기도 평택은 오래전 울산과 닮아 있다. 삼성전자가 평택에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기지를 건설하자 시 전체가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장 근처로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생기고 학교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평택 토박이들은 지금의 변화를 ‘천지개벽’ 수준이라고 말한다.

‘지역을 살리는 힘은 기업에서 나온다’는 명제를 가장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는 곳은 평택이다. 평택의 젊고 활기찬 분위기는 ‘지방 소멸’의 위기에 놓인 다른 지역과 대조적이다. 인구가 늘어나자 도시의 인프라는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듯 약간의 혼란과 팽창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기업과 젊은이들이 바꿔 놓는 새로운 도시의 생동감을 직접 느끼기 위해 3월 9일 평택시를 찾았다.
평택 캠퍼스 근무자들. (사진=최수진 기자)
평택 캠퍼스 근무자들. (사진=최수진 기자)
젊은 블루칼라 집합소“전국 조선소는 일할 청년들이 없다더니, 젊은 사람들 다 여기 와 있구나.”

삼성전자가 들어선 평택시 고덕동 산업 단지에 들어서자 처음 든 생각이다.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100~120명의 사람들이 모두 청년이었다. 울산에서도, 서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처음 보는 풍경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학가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젊은 사람들을 한 번에 보기가 힘들다. 눈에 보이는 모두가 ‘젊은이들’이다. 평택의 첫인상이었다.

평택의 올해 인구수는 ‘60만 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다른 도시들은 인구가 줄어들 때 평택은 인구가 5% 늘었다. 특히 청년층의 유입으로 평균 나이는 해마다 젊어지고 있다. 평택시에 따르면 2015년 평택시는 전국 시군구 가운데 스물셋째로 젊은 도시에서 2021년 열여섯째 젊은 도시로 올라섰다. 젊은층이 유입된 결과다.

삼성전자가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2015년 착공에 들어간 반도체 생산 라인(공장) 1기가 2017년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시 전체가 생기를 띠기 시작했고 연이어 2기와 3기까지 반도체 시설이 확장되자 일할 청년들이 꾸준히 모여들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현장직들이 얼마나 많은지 길에는 젊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다. 점심시간이나 출퇴근 시간에는 ‘바글바글하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정도다.

길에서 본 사람들 10명 가운데 8명이 2030세대로 보였다. 쉬거나 카페에 들르기 위해 공장 밖으로 나와 마스크를 벗는 사람들 역시 20대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중년층이나 고령층을 찾는 것이 더 힘들었다. 삼성전자 공장 안으로 들어가면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직원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마저도 40~50대 이상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이다. 고덕동을 벗어나 평택시 끝 자락쯤에 자리 잡은 음식점에 들러서야 중·장년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여성 현장직’도 많았다. 산업 도시 특성상 남성이 대부분이었지만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현장 작업복과 안전모를 착용하고 있었다.
평택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평택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평택시? 삼성시!“여기는 평지가 넓어 농사 짓던 동네요. 삼성전자가 들어오면서 이 주변에 아파트가 생기고 가게들도 들어선 거지. 그전에는 허허벌판이었어. 삼성이 다 먹여 살리는 거야.”

오후 2시쯤 고덕동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60대로 보이는 운전사에게 “평택이 많이 달라졌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다. 삼국 통일 이후 평평한 땅에 연못밖에 없어 평평할 평(平)에 연못 택(澤)을 써 평택이란 지명을 갖게 됐다.

그는 이어 “내가 평택에서만 23년 살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깡촌이었다”며 “삼성 덕분에 여기가 발전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삼성 사람이거나 하청 업체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평택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돈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가 들어선 고덕동에서 보이는 대부분 사람들은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들이 현장 작업복을 입고 있거나 안전모를 들고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목에 걸린 삼성의 ID 카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로 평택에서 발생한 고용은 7만~8만 명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 직원들이 1만 명 규모이고 하청 업체 직원들은 6만~7만 명이다.

그래서인지 상권도 삼성전자 공장 근처를 중심으로 형성된 상태다. 삼성전자를 둘러싸고 다양한 상업용 건물과 신축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물론 택시를 타고 고덕동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무것도 없이 놀고 있는 땅이나 논을 쉽게 볼 수 있다.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5620㎡(1700평) 규모의 ‘평택 협력사 환경 안전 아카데미’도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협력사의 환경 안전 역량 향상을 위해 오픈한 교육센터다. 협력사 직원들이 가상현실(VR) 등 최신 장비를 활용해 반도체 산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 등에 대해 현실감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곳은 한국 최대의 협력사 환경 안전 전문 교육 시설로, 기흥·화성 캠퍼스의 아카데미보다 3배 이상 큰 규모다. 이 밖에 평택시(안성 포함) 지역의 삼성전자 상생 협력사는 83개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평택 캠퍼스(반도체 공장)에서 창출될 생산 유발 효과가 55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 유발 효과는 13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평택 공유 전동킥보드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평택 공유 전동킥보드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곳곳의 공유 킥보드“웬만하면 평택에서 운전하지 마세요. 전동 킥보드나 전기자전거 같은 것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몰라서 위험해요.”

오후 1시쯤 고덕동 A부동산에서 만난 40대 중개인 이 모 씨는 “차가 있느냐”는 물음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초보 운전이면 평택에서는 절대 핸들을 잡지 말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오토바이는 양반”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이동 편의성을 위해 전동 킥보드 공유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이유를 댔다.

삼성전자 공장 부지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파트 등이 있는 거주지와 맞닿은 공장 한쪽의 도로 길이만 해도 1.8km에 달한다. 걸으면 40분 이상 걸리는 거리다. 또 고덕동에 있는 빌라에서 거주하는 직원이 출퇴근 시 1기 공장 입구까지만 걸어간다고 가정하면 10~15분이 걸린다.

그래서 도로 곳곳에는 공유 킥보드가 줄지어 놓여 있거나 사용 중인 킥보드가 많았다. 실제 거리에서 지쿠터(GCOO)·알파카·씽씽 등 다양한 공유 전동 킥보드 업체들의 기기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업체들의 킥보드를 사용해 이동 중인 사람들도 많았다.

위험한 장면도 연출됐다. 전동 킥보드의 통행로는 자전거도로가 기본이고 자전거도로가 없을 시 차도의 가장자리에서 주행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는 인도에서도 킥보드를 타고 있었고 차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차 근처에서 차와 비슷한 속도로 킥보드를 이용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차난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주차난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여기도 공사, 저기도 공사평택이 산업 도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완성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삼성전자 공장 근처 곳곳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 평택도시공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경기주택도시공사(GH)·경기도 등과 함께 고덕 국제화 계획 지구 택지 개발 사업과 주택 건설 사업 등을 전개하고 있는데 목표 준공 시점은 2025년이다. 도시가 계획대로 자리 잡기까지 2년이 더 남아 있다는 얘기다.

고덕동 근처를 둘러본 결과 오피스텔·음식점·주상 복합 등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 올라서고 있었고 공사장 근처에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임시 보행로를 만들어 놓은 곳도 많았다.

공사 현장이 많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화물 트럭’이다. 1톤 트럭은 기본이고 4.5톤 트럭·지게차·탑차·굴착기·레미콘 등 중장비가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차난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주차난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주차난과 교통 체증, 불편한 대중교통“도시가 커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개발 쪽에서 따라잡지 못하는 거야.”

평택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50대 김 모 씨는 고덕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전쟁”이라며 “여기서 1년 가까이 부동산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건물에 주차하지 못 하고 좀 떨어진 곳에 주차한다. 고덕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공간이 없어 하루에 몇 번씩이고 차 빼 달라는 전화 받고 나가 차 빼주고 돌아온다”고 말했다.

실제 고덕동 대부분의 도로에는 차가 주차돼 있고 건물 주변에도 주차된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또한 삼성전자 공장 입구 앞으로는 12차로의 넓은 도로가 있는데 가장자리 차로에는 차들이 주차된 상태로 있어 사실상 10차로와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 출퇴근 시간대 교통 체증도 심하다. 차가 막히지 않으면 겨우 10km 이동 시 15~20분이 걸리는데 출퇴근 시간대 고덕동 주변에서 10km를 이동하려면 1시간도 넘게 걸린다. 수만 명의 직원들이 비슷한 시간대에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날 오후 5시쯤 만난 또 다른 택시 운전사 60대 백 모 씨는 “여기는 5시만 되면 퇴근하려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며 “더 일찍 이동하지 그랬냐. 요즘 또 학생들이 개학해 출퇴근뿐만 아니라 애들 데리러 오고 가는 차들까지 합쳐져 더 심해진 느낌이다. 택시는 차 밀리면 장사도 제대로 못 한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타기도 힘들다. 평택에는 1호선 라인의 평택지제역(SRT)과 평택역이 있는데 역에서 내려 거주지나 상업지 또는 삼성전자 공장까지 걸어서 가기에는 거리가 있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배차 간격이 평일 기준 20~35분이기 때문에 한 대를 놓치면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고덕동에 빌라가 들어선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고덕동에 빌라가 들어선 모습. (사진=최수진 기자)
1인 가구의 도시“삼성 직원들도 그렇지만 하청 업체는 특히 혼자 사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이 여기 빌라에 많이 살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 다 수용하려고 여기는 빌라촌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보면 돼요.”

B부동산 관계자가 고덕동을 이같이 설명했다. 삼성전자 공장 근처에는 크게 고덕면과 고덕동이 있는데 다양한 브랜드의 아파트들이 들어선 고덕면과 달리 삼성전자 공장 입구에 인접한 고덕동은 빌라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하고 있다.

고덕동에는 최근 1~2년 사이에 4~5층 빌라가 많이 들어섰는데 일부는 방 1개(원룸) 빌라이고 대부분은 방 2개(투룸) 또는 방 3개(스리룸) 건물이다. 임차인은 대부분 삼성 직원이거나 삼성 협력사 직원이다. 주로 1인 가구가 원룸 또는 투룸을 사용하거나 2~3명이 함께 투룸 또는 스리룸을 이용한다. 고덕동 빌라들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삼성전자 공장에 다니는 1인 가구를 타깃으로 만들어졌다.

고덕동은 1인 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상가 건물 1층이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았지만 이미 들어온 프랜차이즈 브랜드로는 서브웨이·파리바게뜨·한솥·본도시락 등이 있다. CJ올리브영과 스타벅스도 이미 자리 잡았다.

특히 ‘편의점’이 많았다. 삼성전자 공장 입구 고덕동 빌라촌(네이버 지도 기준 46만㎡ 규모)에 이미 들어선 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주요 4대 편의점은 31개에 달한다. 쉽게 말해 편의점에서 몇 발자국 걸으면 편의점이 있고 거기에서 몇 발자국 걸으면 또 편의점이 있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는 GS25 고덕미래점·고덕타운점·센트리마본점·고덕빌리지점·고덕삼성본점·고덕테헤란점·고덕원희캐슬점(7개), CU 평택고덕골드점·평택고덕점·평택고덕하나점·평택센트리마점·평택상공회의소점·평택고덕센터점(6개), 세븐일레븐 평택고덕여염점·평택고덕센터점·평택고덕중앙점·평택고덕신도시점·평택뷰파이브점·평택고덕뷰파이브점·평택고덕행복2호점·고덕창신베스트점(8개), 이마트24 고덕행복점·고덕다채움앙상블점·R고덕스마일점·R고덕단독주택점·평택고덕타운점·평택삼성점·고덕여염점·R평택고덕센터점·고덕SBC점·R고덕에스타워점(10개) 등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