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증권사 ②NH투자증권] 사명만 다섯 번 바뀌었어도 톱 티어 DNA 잃지 않아

[한국의 증권사 ②NH투자증권]

(편집자주) 한경비즈니스는 한국 자본 시장의 주역인 증권사들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2023 한국의 증권사’를 연재합니다.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한국 대표 IB 하우스’[한국의 증권사 ②NH투자증권]
‘대한민국 자본 시장의 살아 있는 역사.’

1969년 한보증권에서 오늘날 NH투자증권까지, NH투자증권의 발자취는 자타 공인 대한민국 자본 시장의 살아있는 역사다. 54년간 한보에서 LG로, LG에서 우리로, 우리에서 농협(NH)으로 주인만 세 번이 바뀌었다. 그 기간 사명은 다섯 번 변경됐다. 주인이 바뀐 기업들은 변경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경쟁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NH투자증권은 자산관리(WM)·투자은행(IB)·자산운용(Trading) 등 전 사업 부문에서 고른 성적을 보이며 자본 시장 선두 플레이어를 유지하고 있다. 주인이 수차례 바뀐 NH투자증권은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까. NH투자증권의 명장면들을 짚어 봤다.2005년
#양손잡이 문화를 심다
“‘그래, 우리는 대우증권의 뛰는 영업과 LG증권의 생각하는 영업을 융합하자. 뛰면서 생각하는 영업을 하는 거야’ 그렇게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윤병운 NH투자증권 IB 1사업부 대표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5년의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금의 정영채 사장이 당시 대우증권에서 NH투자증권의 전신인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에 합류했을 때였다.

당시 우리투자증권은 안팎으로 시끄러웠다. 2004년 말 LG그룹에서 우리금융지주로 최대 주주가 바뀌며 LG투자증권에서 우리투자증권으로 사명이 변경됐다. 일부에서는 합병에 따른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조직 통합 과정에서 생긴 진통을 해결해 나갈 무렵이었다.

정 사장은 그해 8월에 IB사업담당으로 합류했다. 대우증권에서 IB담당 임원으로 활약한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단연 IB 사업 분야의 실적 개선이었다. 이전 LG증권은 LG그룹의 지주사 전환을 담당하는 등 성과를 거뒀지만 그룹 밖을 벗어나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대 주주 변경은 곧 LG그룹이라는 큰 기업의 타이틀에서 벗어나 우리투자증권으로서 독자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당시 정 사장은 ‘우리은행의 막강한 자본과 운용 능력, 우리투자증권의 상품 구성력을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업 문화가 발목을 잡았다. 그가 있던 대우증권의 문화와 기존 LG증권의 문화가 판이하다는 게 문제였다. 윤병운 대표는 “(정 사장이) 몇 달 지켜보더니 ‘대우증권에 있을 때는 점심이든 저녁이든 무조건 손님을 만나 영업을 했는데 여기(LG증권)는 몇 달을 공부해 훌륭한 제안서를 만드는 데 강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이에 손님을 다 뺏기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윤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돈을 벌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 대신 기업체를 방문해 누구를 만났다는 콜 리포트를 쓰면 그 숫자대로 성과급을 주겠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직원들도 ‘현장에 길이 있다’는 그의 지론을 따랐다. 실험은 성공적었다. 1주일간 콜 리포트 수가 기존 200건에서 500건으로 늘었다. 부임한 첫해에 채권 인수 부문, 프로젝트 파이낸싱 주선 부문에서 우리투자증권이 업계 1위를 차지했다. 단순히 현장 영업을 늘린 이유만은 아니었다. 기존 우리투자증권이 갖고 있는 기업 문화에 정 사장의 방식을 더한 결과였다.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한국 대표 IB 하우스’[한국의 증권사 ②NH투자증권]
2014년
#주인이 달라져도 우린 여의도
2014년에도 새로운 변곡점이 찾아왔다. 우리금융의 민영화 방침이 구체화되면서 매물로 나온 우리투자증권을 NH농협금융지주가 품에 안은 것이다. 자기 자본금과 임직원 수 기준 한국 최대 규모의 증권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NH농협금융지주는 자사의 강점인 유통망과 기존 우리투자증권의 우수한 IB와 WM 역량을 더해 금융투자업 부문에서 단숨에 업계 톱티어로 올라갈 계획을 세웠다. 반면 업계는 합병 후의 시너지 효과를 반신반의했다. 양 사의 기업 문화가 상호 이질적이란 지적이었다. 노동조합도 강력히 반대했다. 관피아와 농협중앙회 출신의 낙하산 인사가 증권 특유의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기대와 우려를 품에 안은 채로 거대 증권사는 달리기 시작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자기 자본금 규모로 한국 최대 ‘증권 공룡’이 된 NH투자증권은 2015년부터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 치웠다. 합병 후 IB 업무 영역이 확대됐고 다수 대형 딜을 수행하면서 IB 수익이 증가했다. 위탁 수수료 수익 외 다른 부문의 수익성도 높아졌다. 당시 우리투자증권 출신의 임원 A 씨는 “IB업계 최강자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투자증권에 농협금융지주라는 든든한 지붕이 생기면서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한 지붕 두 가족에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인수·합병(M&A)의 역사는 NH투자증권이 걸어온 길이기도 했다. 54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크게 LG증권·우리증권·NH농협증권으로 나뉜다. 세 기업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1969년 12개 보험회사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한보증권을 시작으로 대략 17개 증권사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만큼 M&A도, 상호 변경도 잦았다. 3개 기업, 아니 17개 기업의 이질적인 기업 문화가 섞였다. 혹자는 ‘증권사의 용광로’라고 칭할 정도다.

혼란스러울 법도 하지만 이직이 잦은 여의도의 특성이 이를 감쇄하기도 했다. NH투자증권 출신으로 현직 최고재무책임자(CFO)인 B 씨는 “대우·현대·LG·NH를 거쳤지만 나의 회사는 여의도 주식회사였다”며 “여의도는 여의도 특유의 문화가 있을 뿐 특정 증권사의 문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2018년
#IB와 디지털을 기치로 내걸다
문제는 ‘은행계 증권사’라는 꼬리표였다. 보편적으로 은행계 증권사들이 약세를 보였는데, 은행과 증권의 경영 스타일과 보상 시스템이 전혀 달랐가 때문이다. B 씨는 “성과주의와 연공서열이라고 하는 아주 극단적인 조직 평가 체계가 있는 곳이 증권과 은행”이라며 “본질적으로 위험을 싫어하고 안정 지향적인 은행의 경영 방식은 적극적 위험 감수와 공격적 투자를 특성으로 하는 증권업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은 은행 지주 산하에 있는 증권사임에도 불구하고 은행 지주의 개입을 최소화한 효율적인 경영 방침으로 선두에 자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초대 사장도 우리투자증권 출신의 김원규 대표다.

하지만 인사철마다 불거지는 ‘낙하산 리스크’, ‘은행 지주의 개입 리스크’는 막을 수 없었다. 2018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자기 자본 2위 증권사의 인사에 세간의 관심이 높은 상태였다. 최종 후보군에 내부 출신 3명과 외부 출신 3명의 후보자가 추려졌다. 외부 출신 후보자가 철저히 베일에 싸인 가운데 업계에서는 ‘낙하산 인사’ 개입설에 무게를 실었다.

이러한 리스크를 날린 게 2018년 정영채 신임 사장의 등장이다. 정 사장은 NH투자증권 IB부문을 한국의 금융 투자업계 선두 주자로 키운 공로를 인정 받아 농협금융그룹 내 최연소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정 사장은 대우증권 기획본부장과 IB 담당 임원을 거쳐 2005년부터 NH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를 14년째 맡아 온 인물로 자타 공인 IB 강자이자 내부 인사다.

CEO가 된 이후에도 인사권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은행계 증권사 사장에게는 인사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주에 ‘인사와 조직 개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거냐’고 물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관계자는 “정 사장이 지주 회장에게 ‘내가 CEO인지, 최고운영책임자(COO)인지 물으며 책임은 내가 지고 결정은 다른 사람이 한다면 CEO 안 하겠다’고 말하더라”라고 귀띔했다. 그날 이후 NH투자증권은 인사의 독립성을 인정 받았다. 이 관계자는 “일부 은행계 증권사는 고위직을 은행계 인사가 맡는 경우가 많다”며 “직원의 꿈이 부장인 곳과 사장까지도 꿈꿀 수 있는 곳의 경쟁력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취임한 정 사장은 즉각 자신의 주전공인 IB부문을 확대하며 자산 관리 분야, 위탁 매매 분야 등 타 사업부도 함께 키워 나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2년 후 그는 약속을 지켰다. 타사에 순위를 빼앗겼던 IB와 부동산 부문이 두각을 나타냈다. ‘기업공개(IPO) 주관 실적 1위, 유상 증자(RO) 주관 실적 1위, 회사채 인수 실적 1위.’ NH투자증권이 2019년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며 세운 신기록들이다. 특히 IB 수수료 수익이 창사 이후 처음으로 위탁 매매 수수료 수익을 역전하며 자타 공인 IB 하우스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정 사장과 함께 IB를 이끌어 온 윤 대표는 “NH투자증권 IB 사업부는 M&A 거래에서 공개 매수 주관과 인수금융 주선 등 종합 솔루션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업자로 성장했다”며 “이러한 풀 패키지는 한국 최초”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 IPO를 넘어 자문 역량을 확대하고 그간 치열하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간 잦은 전산 장애 등으로 NH의 약점으로 꼽혀 온 디지털 부문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정 사장은 2018년 취임과 동시에 업계 최초로 최고디지털책임자를 뜻하는 ‘CDO(Chief Digital Officer)’ 조직을 신설했다. 또 NH투자증권의 디지털 플랫폼인 ‘나무(Namuh)’ 마케팅에도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2020~2021년간 신규 계좌 410만 개를 유치하며 증권업계 대표 자산 관리 플랫폼으로 키웠다. NH투자증권의 전신인 우리투자증권이 2007년 내놓은 문어 캐릭터 ‘옥토(Octo)’가 약 9년간 자산 관리 서비스와 금융 상품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활동하며 브랜드 마케팅 효과를 낸 이후 NH투자증권만의 이렇다 할 스타 플랫폼이 없던 차였다.

정 사장은 취임 첫해 5401억원의 영업이익과 361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고 매년 최대 실적을 올리며 2021년 기준 1조293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창사 첫 ‘1조 클럽’ 달성이었다.2021년
#여의도 마천루에 서다
“가장 최근의 변곡점은 사옥 이전이죠.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파크원에 입주한 것은 NH투자증권에 오늘과 내일을 상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B 씨를 비롯해 NH의 전현직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말한 일대 사건은 사옥 이전이다.

2021년 4월 NH투자증권은 여의도 파크원 NH금융타워(타워2)로 사옥을 이전했다. 2005년 이후 16년 만의 사옥 이전이다. 여의도공원과 한강공원 사이에 자리한 신사옥은 서울에서 둘째, 한국에서 셋째로 높은 건물로 여의도를 넘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다. 여의도의 새로운 명소인 더현대가 입주했을 뿐만 아니라 방탄소년단(BTS)이 이 건물 옥상에서 그래미어워즈 무대를 촬영했을 정도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건물로 통한다.

한강 다리를 지나 보이는 한국 전통을 되살린 붉은색 기둥의 꼭대기에 NH투자증권 로고가 새겨져 있다. B 씨는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에 브랜드가 새겨진 증권사”라며 “한강을 넘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NH투자증권이란 브랜드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곧 기업의 브랜드이자 미래 성장성으로 직결된다. 그는 “NH가 주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이미지에 파크원이라는 아주 세련된 이미지가 덧씌워지면서 NH투자증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상당히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NH투자증권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NH금융의 공익적인 성격은 강점이지만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젊고 역동적이며 혁신적인 모습은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었다. 정 사장은 과감한 투자로 파크원에 베팅했다. 지금이야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으로 상징되는 건물이지만 한때는 공사가 중단될 정도로 미래를 낙관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2조원대 거금이 투입돼야 하는 공사로, 국민연금은 물론 메리츠종금증권·한국투자증권·KB금융그룹 등 당시 한국 굴지의 금융사들도 도전을 꺼리는 곳이었다. 정 사장은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해외 대형 재무적 투자자(FI)의 도움 없이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독자적으로도 조 단위 부동산 개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큰 수확이었다.2023년
#절대강자 노린다
NH투자증권의 다음 목표는 절대 강자다. WM·IB·위탁 매매 등 전 부문에서 고르게 우수한 성적을 보인다는 것은 강점이자 약점이다. 완벽한 1위가 없다는 말이자 색깔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1위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던 IB는 여전히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지만 최근에는 회사채 부문에서 선두를 빼앗기기도 했다.

NH 역시 절치부심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계열사별 독자 플레이어가 아닌 NH금융그룹으로 IB 경쟁력을 합친다면 업계 1위의 시너지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EO 리스크도 남아 있다. 지금까지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정 사장이 NH투자증권의 정체성을 지켜 왔지만 향후에도 ‘낙하산 리스크’, ‘은행 지주의 개입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B 씨는 “여의도(증권업계)는 능력이 나이를 우선하지만 은행권은 나이가 능력을 우선한다”며 “연공서열의 장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회사가 붙잡을 수 없는 구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 위험 감수와 공격적 투자를 해야 하는 증권업에서 이 문제는 크나큰 리스크”라며 “은행지주의 개입을 최소화한 NH투자증권만의 효율적인 경영 방침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