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림 후보자의 대표 선임 놓고 주주 간 갈등…디지털 플랫폼 이해 높아 vs 구현모 아바타일 뿐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해까지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던 KT의 ‘디지코(디지털 플랫폼) 전략’에 변수가 생겼다. 우선 그간 디지코 전략을 이끌어 온 구현모 대표가 대주주 국민연금의 연임 반대에 부딪치자 자진 사임 의사를 밝혔다.설상가상으로 차기 대표 선임도 난항을 겪고 있다. KT는 차기 대표로 윤경림 KT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윤 사장 역시 KT 대주주들의 ‘견제’를 받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이어 현대차까지…난항 겪는 대표 선임
구 대표의 자진 사임 이후 KT는 윤 사장을 차기 대표로 추천했다. IT업계의 전략통으로 여겨지는 윤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해 카이스트 경영과학과 석사, 테크노경영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KT에서 신사업추진본부장으로 일했고 이후 CJ·현대자동차그룹을 거쳤다. 현대차에서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사업부장을 역임했다.
윤 사장이 KT로 돌아온 것은 구 대표의 ‘러브콜’ 때문이다. 윤 사장은 2021년부터 KT에 복귀해 구 대표가 신성장 동력 투자를 위해 신설한 최고경영자(CEO) 직속 조직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끌었다.
구 대표의 자진 사퇴 이후 여러 외부 인사들이 차기 후보에 거론됐지만 KT는 결국 ‘내부자’를 택했다. 하지만 차기 대표 선임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KT 최대 주주들이 여전히 CEO 선임 절차에 대한 투명성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KT의 최대 주주는 10.12%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구 대표의 연임에도 꾸준히 반대 의사를 밝혀 왔다. 이에 따라 KT의 대표이사직에 재공모가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구 대표가 자진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후 윤 사장이 차기 대표로 추천됐지만 이번에는 4.7%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현대자동차가 제동을 걸었다. 대표 선임에서 대주주의 의견을 고려해 달라는 의사를 KT 측에 전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국민연금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모빌리티 분야 협력을 위해 KT와 7500억원 상당의 지분을 맞교환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합치면 7.79%에 달한다.
한편 KT 소액 주주들은 이와 반대로 윤 사장에게 힘을 실어 주는 방향으로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KT의 CEO 선임 때마다 불거진 ‘외풍’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KT는 3월 13일부터 30일까지 대표 선임과 제 41기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 선임의 건 등에 대한 주주 전자 투표를 진행한다. 이에 따라 소액 주주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윤 사장의 대표 선임에 대한 찬성 투표 인증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윤 사장은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KT의 지배 구조 개선을 위해 ‘지배구조개선TF(가칭)’를 구성하고 개선에 돌입한다고 3월 8일 밝혔다. 이는 KT의 민영화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지배 구조 체계를 저검하고 조기에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배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윤 사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 구조 이슈와 과거 관행으로 인한 문제들을 과감하게 혁신 하겠다”고 강조하며 “KT가 국민 기업으로서 한국 최고 수준의 지배 구조 모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코의 핵심은 결국 ‘탈통신’
윤 사장이 지배 구조 개선으로 대표되는 ‘혁신’에 나서는 것은 주요 주주들의 반대를 의식한 것이다. 2021년 KT에 돌아온 윤 사장은 구 대표가 그려 온 디지코 전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결국 구 대표와 전혀 다를 게 없는 인물을 내세웠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 사장을 ‘구현모 아바타’라고 부르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KT를 비롯한 통신 3사는 비통신 비율을 높이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스마트폰 보급률은 95%로 전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통신 사업의 성장치가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것은 통신 3사의 공통된 과제다. 또 스스로를 통신사가 아닌 ‘IT 기업’으로 정의하며 인공지능(AI)·로봇·클라우드 등 신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KT는 2021년 ‘텔코(TELCO)’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 ‘디지코(DIGICO)’로의 변화를 선언한 뒤 ‘탈통신’ 전략을 펼쳐 왔다. 성장이 정체된 통신 시장에서의 경쟁 대신 AI·빅데이터(Bigdata)·클라우드(Cloud) 등 ABC 역량을 기반으로 플랫폼과 B2B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구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KT를 통신사가 아닌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재작년에는 B2B와 디지털 솔루션 사업 매출 비율을 40%까지 확대할 수 있었다. 2022년 KT는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콘텐츠 분야에서도 저력을 과시했다. 이에 따라 창사 이후 처음으로 매출 25조원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디지코 전략을 주도해 온 구 대표가 자진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KT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영화 이후에도 반복돼 온 외압으로 KT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특히 구 대표가 그룹사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신설한 조직 구성원들에겐 이러한 변화는 더욱 민감하게 다가오고 있다. 차기 대표로 낙점된 윤 사장에 대해서는 잦은 이직 이력이 있지만 KT에 대해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외부 인사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도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한편 3월 2일 폐막된 세계 최대 모바일 기술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 KT는 세계 시장에 다양한 신사업을 선보였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초거대 AI ‘믿음’과 AI 물류 플랫폼, 자율 주행 솔루션, 메타버스인 ‘지니라운지’를 공개했다. KT는 MWC에서 “KT는 AI·반도체·클라우드 등 AI 인프라, 응용 서비스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AI 풀스택’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새로운 CEO에 대한 정치권의 언급과 요금 인하 압력 등 여러 외부적 요인 등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하기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KT가 디지코를 기반으로 지난 3년간 준비해 온 AI·로봇·IDC·클라우드 등 중·장기 신사업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또 이미 KT의 변화된 비즈니스 구조를 고려할 때 새로운 CEO가 오더라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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