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회장 ‘상속 회복 청구’ 소송...법조계 "구 회장 측이 유리"

[비즈니스 포커스]
 LG家에서 75년 만에 발생한 경영권 분쟁 향방은
LG그룹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는 특유의 ‘인화(人和)’ 정신이다. 이를 토대로 LG는 75년간 경영권 승계 및 계열 분리 과정에서 분쟁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GS·LS·LX 등이 LG에서 떨어져 나올 때도 큰 논란이 없었고 승계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무리된 줄 알았던 승계가 법적 분쟁으로 비화됐다.

구광모 LG 회장의 모친 김영식 씨와 여동생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가 최근 서울서부지법에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은 상속인이 유산을 적게 받았거나 못 받았을 때 정당한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가족끼리 재산 분할 협의가 어려울 때 주로 쓰인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이어졌던 LG가의 화합에 ‘금’이 가는 모습이라며 탄식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소송 결과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송 결과에 따라 경영권 판도 달라져재계에서는 이번 소송이 제기된 가장 큰 배경으로 구 회장이 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친자’가 아니라는 점을 소송의 한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큰아들이다. 이런 구광모 회장이 LG 회장이 된 것은 구본무 전 회장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4년 사고로 아들을 잃었다. 두 딸만 남게 되자 결국 구본무 전 회장은 LG가의 오랜 ‘가풍’을 이어 가기 위해 자신의 동생의 장남인 구광모 회장을 양자로 입적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배경은 이렇다. 잘 알려진 것처럼 LG가 경영권 분쟁이 없었던 이유는 오랜 기간 고수해 온 ‘장자 승계 원칙’ 때문이다. 사업 초기 GS그룹의 허 씨 가문과 동업했을 때부터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가족끼리 회사 내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오로지 장자에게만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

구본무 전 회장 역시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동생의 장남인 구광모 회장을 2004년 양자로 입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구광모 회장은 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됐다. 2006년 LG전자에 대리로 입사했고 이후 체계적인 경영 수업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구본무 전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자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전 회장의 (주)LG 주식 11.28%(1945만8169주) 가운데 8.76%(1512만2169주)를 상속받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원래 보유하고 있던 지분 6.25%(당시 2대 주주), 이후 할아버지인 고 구자경 명예회장 지분 추가 상속 등을 통해 구광모 회장의 지분은 2021년 말 기준 15.95%로 늘어 최대 주주가 됐다.

구연경 대표는 2.01%(346만4000주), 구연수 씨는 0.51%(87만2000주)를 분할 상속받았다. 하지만 김영식 씨는 1주도 받지 않았다.

이것이 분쟁의 단초가 됐다. 유류분 기준에 따르면 구본무 전 회장 보유 지분의 상속 비율은 ‘1.5(배우자) 대 1(자녀 1인당)’이다. 김영식 씨 측은 뒤늦게 이 부분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김영식 씨의 ‘조카’가 아닌 친자였다면 과연 이 같은 분쟁이 일어났겠느냐”는 뒷말도 나온다.

“소송은 구광모 회장 측이 유리할 것”소송의 최대 쟁점은 구본무 전 회장의 ‘유언장 존재 인지 여부’다. 세 모녀는 구본무 전 회장의 별도 유언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상속이 끝나고 난 후에 알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기준대로 주식을 상속받은 것에 대해선 구본무 전 회장이 남긴 유언장이 있는 줄 알았다는 게 세 모녀의 주장이다. 뒤늦게 유언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만큼 상속 역시 법정 비율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반면 구광모 회장과 LG그룹 측은 “구본무 전 회장이 남긴 재산에 대한 상속은 고인 별세 이후 5개월 동안 가족 간 10차례 넘게 협의를 거쳐 법적으로 완료된 사안”이라고 밝혔다.
 LG家에서 75년 만에 발생한 경영권 분쟁 향방은
소송이 어떻게 결론 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구광모 회장 측에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상속 재산 분할 협의는 유언이 따로 없으면 상속인들이 서로 협의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동시에 날인하지 않고 순차로 날인해도 그 효력이 인정된다. 한 상속 전문 변호사는 “이번 LG 상속 사건은 상속인 모두가 날인한 협의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애초에 원고 측이 이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 역시 “재산 분할 협의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속을 뒤집으려면 구본무 전 회장이 유언장이 없음에도 마치 있는 것처럼 속였다는 등의 기망(사기)을 입증해야 한다”며 “유언장 자체가 없는 만큼 원고가 이를 밝혀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피고 측의 승소를 예상했다.

민법에 정해진 제소 기간이 지난 것 또한 이번 판결이 피고 쪽에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낼 것으로 보는 이유로 꼽힌다.

민법상 제소 기간은 상속권 침해 사실을 인지하게 된 날로부터 3년,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다. 구본무 전 회장이 별세한 것은 2018년 5월로 이미 4년이 지났다. 구광모 회장 측 역시 “이미 제소 기간(3년)이 지난 시점에서 유언장을 이슈화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제소 기간 자체는 이번 소송에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 변호사는 “상속권 침해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세 모녀가 주장한다면 이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며 “양측 모두 최고의 변호인단을 구축한 만큼 결과를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재 구광모 회장 측은 법무법인 율촌을, 세 모녀 측은 법무법인 로고스와 케이원챔버를 각각 변호인단으로 선임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세 모녀가 승소하면 LG의 경영권 판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정 기준대로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각각 1.5 대 1의 비율로 (주)LG 지분 상속이 되면 구광모 회장의 지분율은 현재 15.95%에서 9.7%로 낮아진다.

반면 김영식 씨의 지분율은 7.96%가 되고 구연경 대표는 3.42%, 구연수 씨는 2.72%의 지분율을 보유하게 된다. 세 모녀의 합산 지분율은 14.1%다. 구광모 회장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삼성은 이건희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S 등은 유족들이 법정 상속 비율대로 나눠 가졌다. 홍라희 전 라움미술관장이 9분의 3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각각 9분의 2씩을 받았다. 다만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인 삼성생명 지분은 이재용 회장이 이건희 전 회장의 상속 지분의 50%를 상속 받았다. 홍 전 관장이 아들의 경영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자신의 상속 지분을 포기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