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단어 사용하며 의미 부여…“기업 인수는 승패 있는 싸움 아냐”
SM 인수 "하이브 스럽지 않아서" 포기했다고 말해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답변하고 있다./연합뉴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3월 15일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인수전이 ‘카카오의 승리, 하이브의 패배’로 끝난 직후였다.

방 의장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3월 15일 열린 관훈포럼에 참석해 K팝 산업에 관한 기조연설을 발표했다.이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이번 SM 인수전에서 ‘하이브의 패배’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애초에 기업 인수·합병(M&A)은 승패가 있는 전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저 상장사로서 주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지, SM엔터 인수가 회사의 성장 로드맵에 도움이 되는지만 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SM엔터 인수전 결과만 놓고 보면 하이브의 패배가 맞다. 그럼에도 방 의장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간담회 내내 편안한 태도로 임했고 정제된 수사로 진솔한 답변을 내놓았다. SM엔터 인수 과정에서 이수만 SM엔터 전 총괄 프로듀서(PD)와 나눈 대화, 기업가로서의 고민, K팝 리더로서의 역할까지 명확하게 정리했다.

그는 얼마 전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태도를 보였다. K팝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 방탄소년단(BTS)의 병역 문제, 적대적 M&A 등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앵커에게 영리하고 깊이 있게 답변했다. 200만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 댓글에는 방 의장의 답변과 태도에 대한 감탄이 쏟아졌다.

3월 15일 열린 간담회와 CNN 인터뷰를 보며 하이브가 오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방 의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 몇 가지 있다. 그는 대화 상대로 하여금 현상보다 본질에 집중하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 질문을 던졌는지 명확하게 파악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업의 특성상 문화적으로 울림을 줄 수 있는 메시지 위주로 답변하고 꾸밈없는 태도로 임한다.

단어와 문장에는 꾸밈이 없는데 의미 부여는 탁월하다. 하이브는 글로벌 혁신 기업을 표방한다. 메시지를 통해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가 있었기에 BTS가 탄생할 수 있었고 K팝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방 의장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장면을 정리했다. 1. 약점을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한다“아무리 이렇게 제가 말씀드려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본심을 읽힌 것 같았다. 방 의장은 수려한 말솜씨로 ‘기업 인수는 전쟁이 아니라 합리적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자금력 싸움에서 진 하이브의 패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센 척하려고 하는게 아니다”라고 한 방 의장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금융 투자업계에서는 하이브가 출혈을 피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고 평가한다. 카카오가 3월 26일까지 SM엔터 주식을 15만원에 공개 매수하면 하이브 역시 더 높은 금액에 2차 공개 매수를 하며 맞불을 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하이브가 대규모 유상 증자를 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가용 현금을 모두 사용하면 주주 가치가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었다.

압도적인 자금력을 갖춘 카카오에 비해 실탄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카카오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에서 1조154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카카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의 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4조8000억원이다. 하이브는 카카오에 비해 자금 동원력이 떨어졌다. 현대차증권은 하이브의 자금 동원력이 1조원 후반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하이브는 출혈 경쟁 대신 타협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그리고 이런 결정에 대해 “하이브의 실패가 아니며 아주 만족하는 결과”라고 단언했다. 여기에 하이브가 이번 인수전에서 남긴 성과도 빼놓지 않았다. “K팝은 SM엔터 없이 생길 수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SM엔터가 가진 수많은 지배 구조 논란을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으로서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방 의장은 지금까지 늘 K팝 산업이 가진 기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해 왔다.

2019년 서울대 졸업식 축사에서도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 화내고 싸워서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한 단계씩 변화가 체감될 때마다 저는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방 의장은 늘 K팝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K팝 산업의 태생적 한계와 음악 산업의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해 왔다. SM엔터의 지배 구조 문제를 직접 해결했다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이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됐다./연합뉴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이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됐다./연합뉴스
2. 솔직한 단어로 정제된 수사를 구사한다방 의장은 이날 답변하는 내내 진솔한 태도로 임했다. “이런 자리가 많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솔직하게 답하려고 한다”고 먼저 말했다. 카카오와의 플랫폼 협업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는 법무팀에 “이거 말해도 되는 내용인가요”라고 그 자리에서 자문하기도 했다.

답변은 원론적이었다. “아직 말씀드릴 수 없는 단계다. 다만 빠르게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었다. 이 답을 하기 전에 “저도 웬만하면 편하게 말씀드리고 싶다”고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뤄진 CNN 인터뷰에서도 그는 특유의 솔직함으로 속시원히 답변했다. CNN 앵커는 방 의장에게 “K팝 시스템은 아티스트에게 요구하는게 많아 굉장히 스트레스를 주고 가수들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K팝을 비판할 때 늘 나오는 주장이다.

방 의장은 여유 있게 받아쳤다. “그 질문을 웨스턴 팝으로 돌렸을 때 크게 달라지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웨스턴 팝 아티스트 중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나, 오히려 대부분의 파국이 한국보다 더 크게 온다”고 답했다. 마약 문제와 알코올 남용을 예로 들었다. 상대의 공감을 이뤄낸 후 해결책에 대해 얘기했다. 방 의장은 “예전엔 그런 문제가 분명 있었다”고 인정한 후 “K팝은 시대가 변하면서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BTS의 병역 문제에 대해서도 “개인이 병역의 의무를 다 하는 기쁨과는 별개로 아티스트로서는 분명 타격이 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게 아니라고 한다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3. 진정성을 보이는 태도 방 의장은 ‘SM엔터 인수전’을 두고 사과했다. “싸움에서 져서 미안하다”가 아니라 “아티스트와 팬들에게 괴로운 마음이 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이유였다. SM엔터 아티스트인 보아의 콘서트를 예로 들었다.

경영권 분쟁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보아 같은 아티스트들은 자기 자리에서 가슴앓이를 하며 본업에 충실했고 팬들도 그 자리에서 아티스트들을 지원하고 응원했다며 팬과 아티스트들이 겪었을 피로감에 공감했다.

이어 “우리나 카카오나 아티스트의 더 나은 환경을 생각하며 인수 절차를 시작했지만 실제 인수 과정에서 K팝과 아티스트, 팬들을 배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큰 자산인 팬과 아티스트에게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어 하이브 내부 구성원들을 결속할 만한 답변도 내놓았다. 이번 인수 과정에서 모든 결정이 ‘하이브스러운 선택인가’라는 고민 끝에 이뤄졌다고 했다. 하이브스러움이란 음악을 믿고 음악을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신념이라고 설명했다.

또 구성원이 부끄럽지 않다고 느끼는 선택을 하는 것이 하이브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인인 아티스트와 팬, 소속사 모두에게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방 의장은 이 같은 신념이 하이브의 진정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신입 사원들에게 인적자원(HR) 파트가 항상 전달한다는 문장을 알려주기도 했다.

“아무 말이나 해라. 당신들이 무슨 얘기를 해도 괜찮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