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은행 위기로 촉발된 신용 경색 위기 주의해야...금·달러·국채 등 자산의 다변화

[스페셜 리포트]

‘미국발 금융 불안’, ‘변동성 강화’, ‘경기 침체’, ‘바닥 국면’…. 한경비즈니스가 한국의 10개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과의 긴급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장 많이 쓰인 단어들이다. 미국발 은행의 위기로 시작된 증시 불안이 한국 증시의 상승세를 제약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화약고가 터질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변동성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위기 요인① 은행의 위기
우리 앞의 5가지 위기와 플랜B 전략
전문가들이 진단한 첫째 위기는 단연 미국에서 불거진 은행발 리스크다. 김상훈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경기 하강과 긴축의 정점에서는 임계점에 달한 리스크들이 불거져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재는 SVB와 크레딧스위스(CS) 등에서 리스크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SVB 파산 사태는 지난 3월 10일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인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하는 은행이 파산한 사태를 말한다. SVB 파산은 2008년 워싱턴뮤추얼 붕괴에 이어 미 역사상 둘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 촉발 우려를 높였다. 미국 정부가 즉각 사태 해결에 나섰지만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CS 사태도 그중 하나다. 스위스의 세계적 투자은행인 CS는 최근 잇단 투자 실패 속에 재무 구조가 악화한 데다 미국 SVB 파산 여파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위기설에 휩싸였다. 스위스 최대 금융회사인 UBS의 인수로 급한 불을 껐지만 금융 위기설을 잠재우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위기의 점염이다.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글로벌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자산 운용에서 95% 이상의 손실을 볼 수 있는 테일 리스크(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한 번 일어나면 경제나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리스크)로 기존의 인플레이션 고착화(25%)보다 은행의 위험 전이(31%)를 꼽은 매니저가 더 많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은행의 위기를 막기 위해 미 정부와 중앙은행(Fed)의 지원·구제 방안이 논의되겠지만 미 정부의 정책적 오판이나 실기하면 주가 폭락과 연쇄 파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위기 요인② 신용 경색은행의 위험은 신용 경색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경제 위기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지만 향후 (은행) 규제가 강화되고 신용 경색이 발생할 수 있는 점은 여전히 리스크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 센터장은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신용 경색이 발생한다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철수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은행권 사태가 금융 위기까지 악화되지는 않겠지만 대출 둔화 등으로 이어져 경기에 부담이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기업 역시 타격을 입는다. 위기에 놓인 지방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면서 기업의 매출에 악영향을 끼치면 실적의 추가 하향 조정을 야기할 수 있는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 다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조금 더 긴 호흡에서 살펴보면 결국 경기 침체 경로로의 진행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며 “그동안 누적된 통화 정책의 부담과 은행들의 위기에 따른 대출 위축 등은 경기 하강을 이끌 수 있는 부정적 소재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예금 보장 한도를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금액에 관계없이 모든 예금을 보증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야가 예금자 보호 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진 가운데 한국으로 위기가 확산되지 않게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급한 불은 껐지만 활화산처럼 터지는 추가 돌발 변수도 문제다. 특히 주목할 곳은 유럽이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SVB와 CS 이슈처럼 대외 돌발 변수가 리스크 요인으로 추가로 등장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유로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고물가와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부 부채 급증에 따른 후유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 주요국 증시가 신고가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며 “변동성에 취약할 수 있는 환경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또한 “미국 은행의 안정성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유럽 내 부채 비율이 높은 은행들을 중심으로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Fed를 비롯한 주요국들의 정책적 대응에 대한 시장 안정화 흐름을 보면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위기 요인③ 긴축과 금리
우리 앞의 5가지 위기와 플랜B 전략
셋째는 금리다. 3월 22일(현지 시간) Fed는 이번 은행의 위기로 인해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 회견에서 SVB 위기에 “(금리 인상 중단을) 고려는 했었다”면서도 “물가 안정이 너무나 필요하다. 인플레이션을 2%대로 낮춰야만 신뢰를 줄 수 있고 말뿐이 아니라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며 고강도 긴축에서 한 발 물러섰다.

전문가들 역시 긴축 사이클이 예상보다 빨리 끝날 가능성에 주목했다. 김현 센터장은 “미국·유럽 은행과 관련된 정부의 발빠른 대응은 기존에 진행되고 있던 통화 정책 긴축 강도의 완화 기대를 자극하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긴축 강도의 둔화가 증시의 반등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베이비 스텝으로 완전한 긴축의 종료를 논하기는 이르다.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태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0%를 기록했다. CPI는 지난해 6월 9.0%를 정점으로 하락세를 타고 있지만 Fed가 정한 목표치(2.0%)보다 높은 상태다. Fed는 장기적으로 2%의 인플레이션이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을 잡으려는 목표와 가장 일치한다고 보고 있다. 과거 앨런 그리스펀 의장 시절에 이와 가장 유사한 수준에 접근했던 적이 있다.

파월 의장 또한 3월 23일 “올해 연말까지 금리 인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경기 둔화를 감수하고서라도 금리를 올리겠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Fed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목표치인 2%에 다다르려면 기준금리를 최대 7%까지도 올려야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물가 안정을 위해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긴축을 견뎌내는 국면이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센터장은 “올해 하반기는 인플레이션이 재차 가속화되거나 경기 회복의 강도가 지금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지수를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철수 센터장 역시 “일단 긴축이 마무리될 필요가 있고 이후 경기와 실적 개선 기대감이 확산되기 전까지는 추세장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위기 요인④ 레버리지고금리의 장기화가 예상되면서 그간 저금리 환경에서 발생한 레버리지 투자도 또 다른 리스크로 터질 가능성이 높다. 즉 가계 대출과 부동산 문제다.

코스피지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을 풀기 직전 수준으로 내려왔지만 시장의 대표적인 레버리지 자금으로 볼 수 있는 신용 융자는 2배 언저리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한국인들의 재산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도 좋지 않다. 전국 미분양이 2021년 9월 1만3000여 건을 최저점으로 2023년 1월 7만5000건까지 올라온 상태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자산 가격 상승이 어려워진 상태”라며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차입한 자금에 대한 비용 상승으로 가계 부담이 예상되고 자산의 연쇄적 롱 스퀴즈(매입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이 하락장에서 손해를 줄이기 위해 매도하는 현상)가 일어나는 사태의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경고했다.위기 요인⑤ 중국의 늑장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중국도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현재 투자자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경제 정상화(리오프닝)에 기대를 걸고 있다. 중국이 일어나면 동아시아 경제 회복을 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기 회복 효과가 미미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대중국 수출은 반도체(-39.0%)를 비롯해 디스플레이(-43.5%), 석유화학(-29.5%)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급감했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서 한국산 제품이 팔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경기 부진 탓이 크다. 중국 내 모바일 수요 부진, 중국 부동산 경기 부진 등으로 수요가 급감했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대책 없는 탈중국 선언과 중국이 자국산 제품 공급에 방점을 두는 등 내수 회복에 집중한 것도 리오프닝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잃게 하고 있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한국은 2분기 이후 수출 증가율 반등을 기대하는데 이는 중국의 경기 회복이 진행돼야 가능하다”며 “만약 중국 경기 회복세가 명확하지 못하다면 한국 수출 부진과 이에 따른 원화 약세 등 한국 주식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승현 센터장 또한 “한국에는 중국의 리오프닝 기대감이 경기 회복에 주요한 근거인데 중국이 성장에 집중하지 않아 강도가 예상보다 작다면 수출과 실적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 큰 변수”라고 덧붙였다.자금 피난처복합 위기 속에서 투자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할까. 위기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리서치센터장들이 우선 주목하는 상반기 투자 전략은 자산의 다변화다.

첫째는 금·달러·국채 등 안전 자산이다. 단기적으로는 성장에 대한 기대보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포트폴리오에서 안전 자산을 높이는 전략이다.

오태동 본부장은 시장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 한국거래소(KRX) 금현물 등 금 관련 상품의 포트폴리오 편입을 추천했다. 황승택 센터장 또한 원자재 시장에서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며 금 선호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Fed의 금리 인상 폭이 제한되며 금값을 지지할 것이란 분석이다.

강달러 흐름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달러 비율을 확보하라는 조언도 있다. 김현 센터장은 “금융권 전반적으로 유동성 확보 우려가 큰 상황에서 달러의 강세 흐름이 나타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중·장기물 중심으로 금리의 하락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장기 국채와 금에 대한 관심이 제고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서철수 센터장도 자산 배분의 관점에서 채권 상장지수펀드(ETF)와 금으로의 다변화를 추천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안전을 중시하는 투자자라면 태풍이 다가올 때 바다에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이경수 센터장은 “정책이 증시 하방을 막았지만 상방도 제한돼 큰 변동성 국면을 지나는 중”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금리 매력이 높은 채권 자산으로의 편입이나 예금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말했다.

반면 불확실해도 좋으니 수익을 위해 얼마든지 위험을 감수하는 유형이라면 주식과 채권의 비율을 높이는 전략도 추천한다. 실제 주식과 채권이 동반 부진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주식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사이클이 당초 예상보다 빨리 끝날 가능성에 기댄 것이다. 김상훈 본부장은 “올해 물가 안정이 명확해지면 긴축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기업 실적 측면에서는 2분기에 저점을 형성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추천하는 유망 업종은 반도체·소재·산업재 등 사이클을 타는 업종들이다.

유종우 센터장 역시 “미국발 은행 위기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나 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아 주식 투자를 회피할 필요는 없다”며 “추후 각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가 임박한 상황이어서 주식 시장의 투자 심리도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고금리 상황에서 유동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어 수익성과 안정성이 높은 대형주에 관심을 가질 것을 추천했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3~4월 중 코스피지수 하락 추세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하며 변동성을 활용한 주식의 비율 확대 전략을 제안했다. 변동성이 커질수록 비율 확대 강도를 높여 가는 전략이 다. 그가 추천하는 유망 업종은 재고 축소와 2024년 구조적 공급 부족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반기 가격 반등이 예상되는 반도체, 주가 고점 대비 낙폭 과대로 가격 매력도가 높아진 인터넷 성장 흐름이 지속적으로 예상되는 2차전지와 신재생에너지, 신냉전 시대에 돌입하면서 더 각광받고 있는 방산 등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