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발되는 장애 · 비례해 커져 가는 내성 · 반비례해 줄어드는 경각심

다만 약에서 구하옵소서 시리즈 3
18세기 아유베르다 의학 신체
18세기 아유베르다 의학 신체
내친김에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1)다음 중 국제보건기구(WHO)의 국제 질병 분류(ICD)에 공식 등록된 장애는?(복수 선택 가능)
①저장 장애 ②월경 전 불쾌 장애 ③인터넷 게임 장애 ④피부 뜯기(skin-picking) 장애

(2)다음 중 WHO의 ICD에 등록되지 않은 장애는?(복수 선택 가능)
①형제 자매 경쟁 장애 ②폭식 장애 ③적응 장애 ④카페인 의존 증후군

(3)다음 중 WHO의 ICD 지정 인격 장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복수 선택 가능)
①의존성 인격 장애 ②회피성 인격 장애 ③히스테리성 인격 장애 ④편집성 인격 장애

(4)의료계에 널리 장애로 인식되지만 WHO의 ICD에는 증거 및 합의 미달로 미포함된 경우는?(복수 선택 가능)
①부모 소외 증후군 ②셀카 중독 장애 ③(운전 중) 도로 분노 장애 ④계절성 정서 장애
◆사람의 병인가, 사회의 병인가?
정답은 (1)은 ‘전부’, (2) ‘없음’, (3) ‘없음’, (4) ‘전부’다. 즉 (1), (2), (3) 문제에 열거된 예시 12가지 모두가 ICD에 지명된 장애들이다. 웬만한 습관, 신체 현상, 정신적 상태는 현대 의료가 짜 놓은 장애라는 촘촘한 그물을 빠져나가기 힘들다. 실로 장애의 범주는 전 방위적으로 팽창 중이다.

예를 들어 (1)의 ①저장 장애를 생각해 보자. WHO 정신 장애 지정에 막대한 힘을 행사하는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저장 장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물건을 저장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으로 인해 물건을 버리는 데 겪는 지속적인 어려움. 소유물과 헤어지려는 시도에 따르는 상당한 고통으로 인해 결국 소유물 저장을 선택함.’

이 설명에 따르면 물자 귀한 시절 검약 생활이 몸에 익은 우리 부모님들은 대부분 저장 장애 보유자다. 여전히 수십년 된 싸리 빗자루나 석유 난로를 고쳐 사용하는 상당수의 일본인들도 모두 정신과 상담 대상이다.

주변에 종종 있기는 하다. 생활에 불편이 초래될 만큼 많은 물품들을 버리지도 정리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누구인들 특별히 애착이 가는 물품들이 없을까. 때로는 게으름, 때로는 귀찮음, 때로는 아까움, 때로는 물품들에 담긴 기억과 사연의 소중함으로 불편을 감수하고서도 여러 물품들을 보유하려는 습성….

버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너무 자주, 너무 많이 버리는 것 아니었던가. 오만가지 용품을 일회용으로 제조 유통하고 쓸 만한 것들조차 유행이란 시장 조작으로 무용지물화하며 새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소비주의 세계관이야말로 지구의 안녕을 해치는 장애물이 아니었나 말이다.

그것도 부족해 계획된 진부화와 초단기 노후화로 물질들의 수명을 강제 단축하는 자본의 못된 성품. 그 성품으로 인해 지구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아니었나. 정작 병리화해야 할 심각한 문제들은 피해 가면서 왜 삶의 여러 경험들과 정서들만 들쑤시고 다니는지 화가 치민다.일상의 병리화, 정상성의 의료화
화 이야기가 난 김에 (4)의 ③도로 분노를 점검해 보자. 로드 레이지(road rage)라고 불리는 정서적 상태는 2006년 하버드대의 로널드 케슬러(Ronald Kessler) 박사가 의료적으로 진단 가능한 장애(diagnosable disorder)로 처음 명명했다. 그 후 수많은 클리닉과 의료 기관에서 ‘간헐적 폭발 장애’의 하위종으로 분류하며 때로는 뇌장애, 때로는 정신 장애, 때로는 행동 장애로 지명하고 있다.

이 항목이 ICD에 정식 등록된다면 아마도 한국 운전자들의 상당수는 ‘정신 장애자’로 몰려 운전대를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장애로 이름만 올렸지 의료계가 뾰족한 대책이나 치료법을 제시한 것도 없다.

운전은 생명이 걸린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장 일상적인 행위다. 심장 박동 수 증가, 근육 경직, 신경계 예민화가 과학적으로도 측정되는 만큼 위협적 대상에 대한 거친 반응이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물론 구체적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정작 진단받고 개선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도심 진입 정책, 속도 규정, 상습 정체, 불법·위험 운전, 대중교통 접근성 등이다. 그러니 해법도 의료 쪽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정책실에서 나오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개인 정서·태도·행동의 병리화는 이렇게 사안을 전도한다. 본질을 흐리고 더 큰 해악을 백안시하면서 사소한 일로 꼬투리 잡아 병원으로 내몬다. 무엇이 문화의 결이고 일상의 습성이며 또 어떤 것이 질환인지 분별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단 말인가.

정신학계의 권위자 알렌 프랜시스는 이런 의료계의 행태를 ‘정상성의 의료화(medicalization of normality)’라고 부르고 또 다른 학자들은 ‘일상의 병리화(pathologization of everyday life)’라고 부른다. 이 개념들과 연계된 논의는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남발된 장애, 강해지는 장애 내성, 퍼져 가는 장애 목록 패러디
이런 장애 딱지 남발은 국가 의료 기관에 의해서도 벌어진다.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는 (4)의 ④‘계절성 정서 장애’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겨울에 증상이 더 심해져 겨울 우울증이라고도 하지만 일부 환자는 여름에 증상이 있다가 겨울에 호전되기도 한다. 주요 증상으로는 활력 부족, 낮 동안의 졸음, 탄수화물 섭취욕과 체중 증가, 집중력 저하, 성욕 감소, 일상 활동에 대한 즐거움이나 흥미 상실, 지속적인 우울함….’ 어처구니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서술된 증상 중 서너 개 정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춘곤증이나 식곤증은 장애가 아닌가. 또 그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졸림·하품·트림·방귀는? 이런 냉소와 야유는 실제로 온라인에서 현실화됐다. APA와 WHO의 몰지각한 장애 부풀리기를 조롱하면서 ‘추천 장애’ 패러디 리스트’들이 떠돌아다닌 것이다.

(1)의 ①저장 장애에는 재활용 집착증과 분리 배출 기피증을, (1)의 ④피부 뜯기 장애에는 손톱 물어뜯기 장애, (2)의 ②폭식 장애에는 적정량 섭취 강박증, (2)의 ④카페인 의존 증후군에는 스타벅스 의존 증후군을, 그리고 위에 언급하지 않은 일중독증에는 출근 기피증 등을 추가 목록으로 올린 것이다. 이 밖에 문자 미확인 분노증, 택배 주문 조절 장애 등 그럴싸한 패러디들이 다수 있다. 실로 이들 항목이 ICD와 DSM 정식 목록이라고 해도 그리 의심되지 않을 듯하다.

패러디는 질병에 대한 비하나 고통에 대한 무지로 비쳐질 여지도 있다. 하지만 ICD와 DSM을 향한 야유에는 정작 질병과 장애의 무게를 경박하게 만드는 주체는 의료집단이라는 예리한 시선도 담겨 있다. 그래서 장애와 고통에 대한 의료계의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촉구하는 풍자로 읽는 것도 가능하다.

문제는 장애의 희화화가 아니라 이런 패러디가 벌어질 만큼 장애의 심각성이 저하됐다는 데 있다. 따라서 그 책임 소재는 냉소적인 네티즌들이 아니라 그들의 야유를 유발한 의료 집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용과 남용이 생기면 약효 만큼이나 쉽게 떨어지는 것이 권위다. 남발되는 장애, 이에 비례해 커져 가는 내성, 또 그와 반비례해 줄어드는 경각심. 이런 부작용들에 대해서는 또 무슨 장애 프레임으로 대처할 것인가.
◆보르헤스의 지도와 현대 의학의 허욕
로윗츠 (G.M. Lowitz)가 1746년 만든 세계지도
로윗츠 (G.M. Lowitz)가 1746년 만든 세계지도
보르헤스의 지도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이 극한 정밀성에 집착해 실제 영토 크기와 똑같은 지도를 만들고 말았다는 황당한 이야기. 사실 이 우화의 교훈은 이야기 속에 있기보다 그 이야기와 대비되는 제목과 글의 길이에 있다.

보르헤스는 정밀에 대한 집념이 만들어 낸 무용지물을 조롱이라도 하듯 이 심오한 유비를 단 130개의 단어 단일 문단으로 압축해 버렸다. 거대를 압도하는 간결의 힘, 그것이 본시 지도의 용도였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풍자 방식은 지도 제작자들의 욕망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모방을 통한 조소다. 제국의 허영과 지도쟁이들의 우둔을 향하던 그의 조소는 소설의 제목을 통해 방향을 급선회한다.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현대 과학의 거만한 태도를 조준한다.

작가는 서사와 제목, 이야기와 스타일 간의 의도적 충돌을 통해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지도는 지도인가’, ‘그 지도는 어떤 용도를 지니는가’, ‘부질없는 욕망에 빠진 제국과 과학은 과연 우리에게 유익한가’라는 복수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이야기 속 과학을 현대 의학으로 환치해 보자. 현대 의학은 완벽이라는 무모한 관점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완벽에 대한 집착이 실제 영토 크기의 지도로 귀결됐듯이 무결점을 향한 의학의 오만은 인간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장애 덩어리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의료화와 정상성의 병리화는 신기루의 지도법이다. 존재하지 않는 땅을 지도에 담는 일은 실물 크기 지도 제작보다 더 무모한 일이 아닐까.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