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들은 한 친구의 경험담입니다. 충청남도 어딘가에서 식당에 들렀답니다. 식당 가면 하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겠지요. "사장님 뭐가 맛있어요?" 보통 김치찌개는 어떻고 제육볶음은 어떻고 해야 하는데 이 식당 주인은 달랐습니다. "집 나와서 먹으면 다 거기서 거기쥬. 아무거나 드세유"라고 답했답니다.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아 달라고 하면 "에유 냅둬유. 개나 주게"라고 한다는 것과 비슷한 얘기지요.
오늘의 주제는 ‘질문’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에피소드라 가져와 봤습니다. 질문, 어렵지요. '본질을 묻는다'는 게 질문의 뜻인데 쉽겠습니까.
과거 중소기업을 취재할 때 일입니다. 한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노동자로 시작해 매출 수백억원대 회사를 일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일만 했어요“라고 하고 웃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만 생각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기사를 어떻게 쓰라구요….'
사업 전환에 성공한 다른 사장님에게도 "비결이 뭡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약간 달랐습니다. "척 보면 알아요." 질문을 돌려서 해도 "한 번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는 대번에 알아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잘못된 질문이었고, 솔직한 답이었습니다. 경영학자들은 일만 생각한다는 것을 '몰입'이라고 부르고 척 보면 안다는 것은 '직관'이라고 부릅니다. 솔직하게 핵심을 표현한 답이었습니다.
이후 질문을 바꿨습니다. 한 회장님과 인터뷰. 그는 응급실에 누워 있다가 왔다고 했습니다. 핼쑥해 보였습니다. 마주 앉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낮은 자세로 눈을 맞추고 어릴 적 얘기와 젊었을 때 일을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젊은 시절로 되돌아 간 듯 반짝였습니다. 미국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응용한 전략이었습니다. 노인들이 모여 사는 공간에 젊었을 때 유행한 음악을 틀고 영화 포스터를 붙이고 인테리어를 바꾸면 신체 능력이 좋아지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략은 괜찮았습니다. 인터뷰는 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림 얘기 하나 해볼까요. 15세기 프란체스코 델 코사라는 화가가 그린 수태고지 그림이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실 것"이라고 알리는 장면을 그린 제단화. 그림 하단에 달팽이가 한 마리 나옵니다. 신성한 종교화에 웬 달팽이? 그냥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평론가 다니엘 아라스와 미술사가들은 질문했습니다. ‘코사는 왜 달팽이를 그려 넣었을까.’ '서양 미술사의 재발견'이란 책에서 아라스는 몇 페이지에 걸쳐 설명합니다. 요지는 ‘구원의 역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펼쳐지는 느린 과정이며 신성한 영역이 지상의 영역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돼 있다는 것을 달팽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미술사가들의 질문이 그림을 보는 즐거움을 더해 준 장면이었습니다.
‘서양 미술사의 재발견’이란 책을 갖고 있지 않아 챗GPT에 한글로 대충 물어봤습니다. 답은 "수태고지에는 달팽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달팽이는 프랑스 요리에 사용된다"였습니다. 질문을 영어로 바꿔 자세히 물었더니 책에서 본 내용을 정확히 답해 줬습다. 질문의 형식과 내용이 답의 질을 결정합니다. 기계인 챗GPT는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챗GPT를 사용하는 구체적 방법, 실전편을 다뤘습니다. 챗GPT3가 공개된 이후 레이스라고 부를 만큼 하루가 다르게 서비스가 쏟아집니다. 그 활용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의 질문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질문의 중요성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어제로부터 배우고, 오늘을 위해 살고, 내일을 위해 희망하라.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주변에서 질문 잘하는 사람들을 봤더니 호기심이 많고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지적 욕구가 강하고 이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아 상대방에 대한 공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구요.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무엇이며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인 인문학의 쓸모는 무엇일까?“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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