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82%가 비례대표 확대 반대, 소선거구 유지 찬성 많아…의원들 지역구 내려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

홍영식의 정치판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해 선거제 개편 토론을 벌이는 전원위원회가 4월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사진은 전원위원회가 열릴 국회 본회의장 모습. 연합뉴스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해 선거제 개편 토론을 벌이는 전원위원회가 4월 10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사진은 전원위원회가 열릴 국회 본회의장 모습. 연합뉴스
선거제 개편을 두고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 문제를 두고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국회전원위원회가 19년 만에 열렸다. 4월 10일부터 4일간에 걸친 난상토론 결과 어떤 결론을 도출할지 주목된다. 의원마다 의견이 다르고 거론되는 각 제도마다 장단점이 있는 만큼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앞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마련해 전원위원회에 올린 방안은 3가지다. △중대선거구제(도농복합형)+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등이다. 다만 이는 토론 주제로 올렸을 뿐 반드시 이 3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아니다.

크게 나누면 소선거구와 중대선거구제 중 하나다. 어떤 안이든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는 정국 안정을 꾀할 수 있지만 승자 독식으로 인한 지역주의 심화와 진영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득표율 51% 대 49%로 당락이 갈린다면 49%의 민의는 배제된다는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 때 국민의힘은 영남에서 55.9%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86.2%를 차지했고 민주당은 호남에서 68.5%의 득표로 의석은 96.4%를 가져간 데서 소선거구제의 대표성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지역주의 폐해 극복” vs “특정 정당 쏠림 여전”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유권자의 선택 범위가 넓고 사표를 방지할 수 있으며 지역주의를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 공천을 받지 못한 거대 정당 후보자들이 대거 무소속으로 출마해 특정 지역에서 특정 진영이 실질적으로 독식하면 소수 정당이 오히려 불리해지고 지역주의 완화도 어렵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한 5공화국 당시 여당의 2, 3중대 정당이 출현한 적도 있다. 후보들의 수가 많아 선명성 경쟁이 심화되고 그에 따른 포퓰리즘 공약이 난무할 가능성도 있다. 당선자 득표율 간 차이가 커 등가성 문제도 있다. 어느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기 힘들고 군소 정당 난립으로 정치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으며 소수 정당이 연정(聯政)을 무기로 정치판을 흔드는 역(逆)표심 왜곡도 우려된다. 중대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이 전국 어디서든 동반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는 지적도 있다. 2022년 6·1 지방 선거 때 6개 지역 30개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 결과 특정 정당 쏠림 현상은 여전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1994년 중선거구제를 없애고 소선거구제로 돌아섰다.

①중대선거구제(도농복합형)+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농·어·산촌 지역은 현행처럼 1인 선거구제를 유지하고 도시 지역은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인구가 적은 농·어·산촌까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지역구가 너무 넓어 지역 대표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단점 때문이다. 농·어·산촌에 비해 인구 밀도는 높고 지역구 면적은 좁은 도시 지역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서울 강남 갑·을·병을 하나로 묶어 3명을 뽑는 것이다. 서울 마포 갑을과 서대문 갑을 4곳을 합쳐 한 지역구로 만들어 4명을 선출할 수도 있다. 유권자는 기존과 같이 한 명에게 투표하면 된다. 비례대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선출하는 병립형으로 한다. 다만 비례대표를 지금과 같이 정당별 전국 득표율을 기준으로 선출하지 않고 17개 광역시도별 또는 6~7개 권역별로 나눠 뽑는다.

②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제
지역구는 현행처럼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비례대표에는 권역별·준연동형을 도입하는 방안이다. 비례대표 의석은 전국 단위 정당 득표를 기준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전국을 6~7개 권역으로 나눠 뽑는 방식이다. 배분 방식은 비례대표 의석 중 일부를 정당 득표율에 연동해 배분하는 준연동형이다. 그러면 지역구 의석은 감소하고 비례대표는 늘어날 수밖에 없어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거부감이 크다. 다만 지난 21대 총선에 적용한 준연동형 비례대표 산정 방식은 수학자도 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해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사표 방지 명분을 내세웠지만 준연동형비례대표는 결국 위성 정당이라는 왜곡된 정치 환경을 만들어 냈다.

③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제
지역구는 4~7인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비례대표는 전국구·병립형으로 선출하자는 것이다. 지역구는 각 정당이 순위를 정하지 않은 후보자 명부를 먼저 제출하고 유권자는 정당 기표란과 정당이 추천한 후보 중 지지 후보에게 각각 투표한다. 지역구 의석수는 정당별 득표율에 비례해 배분되고 해당 정당 내 후보자 득표순으로 당선인이 확정된다. 예컨태 5인 선거구를 하는 A지역구는 득표율에 따라 B당 3석, C당 2석으로 나눈다. 그다음 B당 후보 1~3위, C당 1~2위 후보가 당선되는 식이다. 비례대표 의석은 현행과 같이 전국 단위로 선출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지역구 의석 자체가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만큼 비례성이 대폭 강화된다. 이 때문에 사실상 전면적 비례대표제라고 볼 수 있다.
현행보다 복잡…의원 기득권 내려놓기 선언부터 해야

정개특위가 제안한 3가지 방안 모두 현재보다 국회의원 선출 방식이 매우 복잡하기 짝이 없다. 어떤 안이든 비례대표가 늘어나는 만큼 현역 지역구 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느냐와 지역 주민들의 수용이 관건이다. 국민 10명 중 8명이 비례대표 확대에 반대하고 있고 소선거구 유지가 중대선거구제 도입보다 많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있다. 제도 변경보다 현행 유지가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제도를 변경하면서 위성 정당을 낳는 등 지난 총선 때를 보면서 정치 불신을 드러낸 것이다.

정개특위가 당초 마련한 3개안 중 2개는 의원 50명 증원을 전제로 한 것이었지만 여론에 밀려 철회했다. 하지만 정개특위 안은 하나의 예시일 뿐 전원위 논의의 가이드라인이 아니라고 해 의원 증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김진표 국회의장부터 비례성 강화를 위해 증원을 주장하고 있고 일부 야당 의원들도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국회가 대표적인 고비용·저효율 집단으로 지탄 받아 온 마당에 민의에 대한 배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비례대표가 자칫 지역구 탈락 의원들의 자리 챙겨 주기용이 될 우려가 커 비례대표제 취지에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정개특위안에는 의원 증원을 빼면서 의원 세비 및 인건비 동결과 특권 제한 방안도 삭제해 버렸다. 선거 때마다 불체포·면책 등 100개가 넘는다는 국회의원 특권을 폐지하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더니 이번에도 어물쩍 하고 만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이 정치 개혁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현역 의원들이 기득권과 특권부터 내려놓겠다고 선언해야 진정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돋보기 : 전원위원회란
국회 각 상임위보다 심도 있는 의안 심의를 위해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 토론해 결정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17세기 초부터 유래된 제도다. 당시 튜더 왕조 시대엔 의회 의장은 군주의 신하로 군주의 이익을 옹호해야 할 의무를 띠고 있었다. 이런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군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의장은 퇴장한 가운데 모든 의원들이 심의에 참가하는 전원위원회가 1621년 처음 개최됐다. 요컨데 왕권을 견제할 수단으로 도입된 것이다. 지금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캐나다·뉴질랜드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선 1948년 제헌국회 때 이 제도를 도입해 6번 실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전원위원회가 의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도구로 활용되는 등 비효율적인 문제 때문에 1960년 폐지됐다가 2000년 2월 재도입됐다. 2003년 3월 이라크 파병안 심사를 위해 두 차례 열렸다. 이듬해 12월 파병 연장 동의안은 개의만 선언하고 곧바로 산회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및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