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메니얼’을 위한 약과 쇼룸
북촌 생과방
약과 구입을 넘어 구경하러 가는 곳
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 ‘할메니얼’은 할머니들이 선호하는 옛날 음식이나 옷을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의 특징은 먹거리에서 잘 나타난다. 마카롱·치즈케이크·브라우니 등 유럽산 디저트 대신 전통 디저트를 찾는다. 그중에서도 할메니얼들의 원픽은 단연 약과가 아닐까. 이들의 욕구를 충족이라도 하듯이 약과 판매를 넘어 전시까지 한 쇼룸이 있다. 바로 북촌에 있는 약과 전문점 ‘생과방’이다.
생과방은 안국역 3번 출입구에서 나와 가회동길로 쭉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아니, 사실 이곳은 그리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낮은 주택과 주택 사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은 골목을 지나야 생과방에 입성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약과의 인기가 아주 높았다. 약과로 인해 물가가 오르고 민생이 불안정해 약과 제조 금지령이 내려졌을 정도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와서 약과는 주로 왕실과 귀족들이 즐기던 귀한 별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도 의례·명절·잔칫상 등에 쓰일 정도로 약과는 귀한 음식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간식으로 여겨졌다. 생과방은 고려 시대 약과를 몰래 만들었다는 사실을 오마주해 비밀스러운 장소에 만들어졌다. 과거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전통 제조 방식을 토대로 약과를 만든다. 생과방은 품질 좋은 약과를 만들기 위해 반죽, 청의 농도는 물론 온도·습도 등을 고려하며 최상의 약과를 한 알씩 빚어낸다. 이 정도가 약과?
약과는 젊은 세대들의 발걸음을 지역 유명 한과 전문점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마저 구입하기가 쉽지 않아 공연 티케팅하듯 구입한다고 해서 ‘약케팅(약과+티케팅)’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도넛 전문점 노티드에서는 궁중 병과 브랜드 ‘만나당’과 협업해 ‘약과 스콘’을 한정 수량으로 선보였다. 던킨 도너츠는 ‘허니 글레이즈드 약과’를 판매해 약과의 식감과 맛을 재해석했다. CJ올리브영에서 판매 중인 벌꿀 약과는 출시 3개월 만에 33만 개를 판매했다. 이제는 약과 특유의 모양과 갈색 빛의 색감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다.
생과방에서는 약과계의 에르메스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고급 약과를 판매한다. 사실 이곳은 약과를 ‘사러 간다’기보다 ‘구경하러 간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멋스러운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이다. 얇은 커튼 속에 숨어 있는 약과는 제사상이나 시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약과가 아닌 하나의 오브제로서 그 역할을 다해 낸다. 약과 종류는 총 네 가지로, 조청약과·현미약과·도라지약과·녹차약과다. 서로 다른 네 가지 맛의 약과는 모두 범상하지 않은 자태를 뽐낸다. 약과는 8구·12구·16구 세트로만 판매 중이고 단품으로는 판매하지 않는다.
쇼룸 가운데 설치된 화면에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약과를 튀기고 조청·현미 등을 묻히는 과정을 담아냈다. 그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과방의 정신을 쇼룸에 온전히 녹여낸 것이다. 입장할 때도 조심스럽고 비밀스럽다. 한 번에 한 팀만 입장할 수 있고 이마저도 입장 대기를 등록해야 한다. 자신의 차례가 됐을 때 마치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생과방에서는 공간을 향유하는 시간도 약과의 가치에 더해지는 것만 같다. 할머니의 마음으로
흔히 잘 알려진 둥근 약과 안에는 국화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물고기·꽃·새 등 다양한 문양을 담아 냈다. 약과에 담긴 여러 가지 문양은 누구에게나 여러 방면에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엄격한 채찍질 대신 한없이 당근만 주는 할머니에 대한 정겨움이 전통 간식에 담겨 있는 듯하다. 외국에서는 할메니얼과 같은 맥락의 할머니(grandmother)와 밀레니얼을 결합한 ‘그랜드 밀레니얼’이라는 용어가 쓰였다고 하니 이는 전 세계적인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은 전통 간식을 찾는 할메니얼에게 든든한 위로를 안겨준다. 누군가와 약과 선물을 주고받게 된다면 생각하자. 서로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을 선물한다고.
이민희 기자 min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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