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떨어진다는 한국의 ‘부모 급여’…남성 육아 휴직으로 ‘다자녀’ 기대하는 일본

[글로벌 현장]
‘소멸 위기’ 놓인 한국과 일본, 저출산 대책 살펴보니[글로벌 현장]
소멸 위기를 맞은 대표적인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이 지난 3월 말 사흘 간격으로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대책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 회의를 주재한 것은 7년 만이다. 일본은 3월 31일 ‘차원이 다른 저출산 종합 대책 초안’을 발표했다. 1월 23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정기 국회 개원 연설에서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지 3개월 만에 등장한 구체안이었다.

두 나라는 백화점식 정책을 남발하지 않고 효과적인 저출산 대책을 골라 선택과 집중하겠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년간 280조원을 쏟아붓고도 저출산을 해결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돌봄과 교육, 일·육아 병행, 주거, 양육비용, 건강 등을 저출산 정책의 5대 핵심 분야로 선정했다. 670조원의 연간 예산 가운데 저출산 대책에 40조원을 배정하기로 했다.

일본은 젊은 세대의 소득 증가, 사회의 구조·의식 개혁, 모든 육아 세대 지원이라는 3대 대책을 3년간 집중 실시한다. 2020년 일본은 가족 관련 사회 보장비로 10조7536억 엔(약 107조원)을 썼다. 기시다 총리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의 실현을 위해 관련 예산을 두 배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두 나라 저출산 대책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보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지만 한국은 중점 분야가 5개이다 보니 3개로 좁힌 일본에 비해 전방위 대책이란 인상을 준다. 한국이 처한 현실이 선택과 집중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소멸 위기’ 놓인 한국과 일본, 저출산 대책 살펴보니[글로벌 현장]

고령화와 저출산, 두 가지 문제와 싸우는 한국

한국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은 취업난, 집값 폭등,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낮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 그 자체와 다를 바 없다. 반면 일본은 한국보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 쉬운 여건이다.

취업난이 없고 주거 형태가 주로 월세 임대여서 내 집 마련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고등학생의 절반(2019년 53.7%)만 대학에 가다 보니 일부 계층을 제외하면 사교육비 부담에서도 자유롭다. 또 일본은 저출산에만 대책을 집중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싸운 지 30년을 넘기면서 고령화는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노인 국가라고 하지만 2044년이면 한국의 고령 인구 비율이 일본을 앞설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은 앞으로 고령화는 관리만 하고 저출산 대책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과 이제부터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는 고령화와 동시에 싸워야 한다.

두 나라의 저출산 대책을 분야별로 살펴보자. 한국의 ‘양육 비용 지원’은 일본의 ‘젊은 세대 소득 증가’와 같은 항목으로 볼 수 있다. ‘돌봄 지원’은 ‘모든 육아 세대 지원’에 해당할 것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사회의 구조·의식 개혁’과 맞물린다.

한국에만 있는 대책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주거 지원이다. 신혼부부의 공공 주택 분양, 대출 기준 완화 등에서 보듯이 내 집 마련을 돕는 정책이다. 수억원씩 하는 내 집 마련을 돕자면 한국은 5대 저출산 대책 가운데 가장 많은 예산을 주거 지원에 투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4대 정책에는 예산을 충분히 배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일 양국 저출산 대책의 핵심 분야는 소득 증가와 일과 가정의 양립 두 부문으로 압축된다.일본은 저출산과 싸운 지 30년이 넘은 국가답게 저출산의 원인을 제대로 짚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돈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출산을 포기하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만 0∼1세 아동의 부모에게 ‘부모 급여’를 지급한다. 올해는 0세와 1세 부모에게 각각 월 70만원과 35만원을 지급하고 내년부터 액수를 각각 100만원과 50만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부모 급여를 한 살까지만 지급하는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가 클수록 돈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아동 수당 및 출산·양육 지원 체계 발전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 1인당 월평균 지출 비용이 0∼2세 57만원, 3∼5세 68만원, 6∼8세 77만원, 9∼11세 77만원, 12∼17세 104만원이었다.

일본은 반대로 육아 수당을 지급하는 대상과 액수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2세까지 월 1만5000엔, 3세부터 중학생까지 월 1만 엔(셋째 아이부터는 월 1만5000엔)씩을 지급했다. 연간 수입이 1200만 엔 이상인 고소득자는 육아 수당을 받을 수 없었다.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통해 일본은 육아 수당을 지급하는 대상을 중학생에서 고교생(18세)까지 늘리고 소득 제한을 없애기로 했다. 지원 금액도 큰 폭으로 늘릴 계획이다. 첫째 아이는 월 1만5000엔, 둘째는 월 3만 엔, 셋째부터는 월 6만 엔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자녀가 셋인 가정이라면 월 10만5000엔, 넷이라면 월 16만5000엔을 받는 셈이다.

양국 모두 육아 휴직 제도는 유명무실

두 나라의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분야는 일과 가정의 양립 부문이다. 한국에 비해 일본이 가장 공을 많이 들인 분야이기도 하다. 일본의 정책은 제도 자체보다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느냐에 포커스를 맞췄다.

2019년 유니세프는 보고서를 통해 육아 휴직을 사용하면 반년 동안 기존 임금의 67%를 지급하는 일본의 제도가 41개 가맹국 가운데 1위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육아 휴직 제도는 일본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과 일본 모두 세계 최고의 육아 휴직 제도를 갖고 있지만 문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이 육아휴직법을 시행한 것은 무려 30년 전인 1992년 4월부터다. 그런데도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률은 오랫동안 1% 미만이었다.

일본 정부가 2025년까지 남성 육아 휴직 사용률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나서야 2021년 사용률이 13.97%까지 올랐다. 하지만 사용 기간이 1일에서 2주 미만이 대부분이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이달부터 기업이 매년 1회 이상 남성 육아 휴직 사용률을 공시하는 조항을 의무화했다. 노동자 수 1000명 이상의 기업이 대상이다.

남성 육아 휴직 사용률 목표치는 2025년 50%(기존 30%), 2030년까지 85%로 높였다. 거의 모든 아빠가 육아 휴직을 쓰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부모가 모두 육아 휴직을 사용하거나 단축 근무를 해도 소득의 100%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현실적으로 육아 휴직을 쓰기 힘든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도 경제적인 지원을 한다.

일본은 왜 남성 육아 휴직 사용률에 목을 맬까.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와 가사를 분담할 수록 둘째와 셋째를 갖는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인 부부의 평균 자녀 수는 1972년 이후 40년 가까이 2명 이상이었다. 2010년 1.96명으로 2명 선이 처음 무너졌다. 1982년에는 아이가 한 명인 부부의 비율이 9.1%, 두 명은 55.4%였다.

2015년에는 아이가 1명인 부부의 비율이 18.5%로 33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그래도 아이가 2명인 비율은 54.1%로 33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일본인들은 ‘자식은 두 명’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것이다.부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의 수가 2.32명으로 2명 이상을 유지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남편이 가사와 육아만 분담해 주면 기꺼이 둘째, 셋째를 낳아 출산율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자녀가 셋 이상인 가정에 주거를 지원하고 육아 수당을 파격적으로 높여 주는 정책에서 보듯이 일본의 저출산 대책은 둘째와 셋째를 많이 갖게 하자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