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협력 업체 직고용 판결로
유사 소송 중인 현대차·기아도 초비상

[법알못 판례 읽기]
톨게이트에서 운전자가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톨게이트에서 운전자가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통행료 수납원 등을 파견 노동자로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민자 고속도로 운영사의 불법 파견을 인정한 최초의 확정 판결이다.

대법원은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외주 업체를 통해 업무 매뉴얼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용역 업무를 맡은 노동자들에 대한 지휘‧명령을 해 왔다고 판단했다. 노동자 측 승소 사례가 하나 더 늘면서 최근 산업계 전반에서 이어지고 있는 불법 파견 소송전에 더욱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노동자들 직접 고용해야” 결론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023년 4월 13일 신대구부산고속도로의 영업소 등에서 통행료 수납원 등 노동자 1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고용 의사 표시 청구 소송에서 원심 판단을 유지해 노동자 측의 손을 들어 줬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대표를 비롯한 회사 경영진이 정기적으로 운영 실태 점검을 하는 등 영업소 근무자들을 관리·감독했다”며 “사건 기록 등을 살펴본 결과 원고들의 노동자 파견 상태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대구에서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다. 민간 투자 시설 사업을 위해 대림산업·한진중공업·HDC현대산업개발 등 9개 기업이 출자해 설립한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이 도로 및 부속 시설 관리·운영, 통행료 징수 등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설립 당시부터 통행료 수납을 비롯해 교통 안전, 일상 유지 관리, 터널 유지 관리, 장비 관리 등 주요 업무를 모두 외주 업체에 포괄적으로 위탁했다.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 중 다수인 통행료 수납 담당자들은 용역 업체에 고용된 상태로 통행권 발행과 회수 등을 해 왔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는 직접 작성한 업무 매뉴얼을 외주 업체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매뉴얼은 영업소 업무 현황과 특징부터 요금 수납 시스템(TCS), 하이패스 시스템 등의 사용 방법 등을 담고 있다. 노동자들은 매일 근무 확인서와 업무 처리 명세서, 업무 일지 등 각종 보고서를 작성해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소속 직원에게 보고해 왔다.

노동자들은 이 같은 업무 방식을 근거로 자신들을 파견 노동자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2018년 11월 원청을 상대로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법은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로 근무한 직원은 사업주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측은 “외주 업체는 자체 매뉴얼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배포했고 핵심 영역인 최대 개방 차로에 관한 의사 결정을 하고 특별 영업 대책도 세웠다”며 “전문성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요금소를 운영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회사가 고속도로 건설과 운영을 위해 한시적으로 설립됐고 민간 투자법에 따라 사업 시행자로 규정되기 때문에 노동자 파견 판단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불법 파견 소송 더 빗발치나

법원은 잇달아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줬다. 1심 재판부는 “영업소 근무자와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직원은 상호 유기적인 보고와 지시, 협조를 통해 업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었고 본질적으로 원청의 지휘‧명령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통행료 수납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직접적인 지휘나 작업 지시는 필요하지 않아 지침만으로도 업무 수행 자체에 관한 지시를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도 원청의 반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통행료 수납은 전문적이거나 숙련도가 필요하지 않는 단순‧반복적인 업무이며 외주 업체의 특별 영업 대책도 해마다 유사하고 반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독자적인 의사 결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외주 업체가 자체 매뉴얼을 배포한 사실에 대해선 “신대구부산고속도로가 외주 업체에 제공한 영업 업무 매뉴얼은 716쪽에 걸쳐 업무 방식이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며 “외주 업체가 자체 매뉴얼을 뒀다고 해서 독자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산업계 등에선 불법 파견 소송전에서 또 한 번 노동자 측이 승리하면서 비슷한 소송이 더욱 빗발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은 앞서 2022년 7월 포스코에 “광양제철소 협력 업체 직원 59명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 후 포스코 하도급 노동자 2만여 명이 똑같은 소송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는 판결 직후 “지회에 가입된 포스코 하도급 노동자 1만8000여 명이 불법 파견 추가 소송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업계에선 포스코가 모든 하도급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2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외에 현대차·기아·현대제철·한국GM 등도 불법 파견 소송에 휘말려 2심에서 패소한 뒤 상고심을 진행하고 있다.


[돋보기]
서울 강남구 양재동 현대차 사옥.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양재동 현대차 사옥. 사진=연합뉴스
IT 업종까지 번지는 불법 파견 소송

노동자의 ‘불법 파견’ 여부를 다투는 소송은 정보기술(IT) 업종으로까지 번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의 IT 관련 업무를 위탁받은 외주 업체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원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다.

현대자동차 생산관리프로그램(MES) 전산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협력 업체 S사 소속 노동자 39명은 2022년 말 현대차를 상대로 노동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이들 노동자는 조만간 열릴 예정인 1차 변론 기일에서 현대차 측과 법리 다툼을 벌일 예정이다.

개발자 등 S사 노동자들은 “현대차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현대차 정규직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지휘·명령을 받고 있다”며 “하청 업체인 S사 역시 독립적인 기업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불법 파견에 해당하므로 현대차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들은 자신들이 정규직이었다면 받았을 임금과 현재 협력 업체에서 받는 임금 간 차액도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 소송을 계기로 불법 파견 소송전이 IT 업종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대기업 대부분이 현대차처럼 도급 계약을 통해 자신들의 특성에 맞는 전산 시스템이나 ERP, HR 시스템 개발과 유지 보수 등을 외부 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SDS·LG CNS·SK(주) 등 시스템 통합(SI) 계열사를 통해 외부 업체에 업무를 맡기는 곳도 적지 않다. 2022년 8월 국회에서 열린 ‘소프트웨어(SW) 프리랜서의 불법 파견 실태와 노동권 사각지대 해소 방안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SW 프리랜서 3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70.6%가 1차 이하 하도급 업체 소속이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술 발전으로 곳곳에서 신산업이 탄생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불법 파견 소송도 생겨나고 있다”며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이 늘수록 그동안 관련 분쟁이 없던 업종에서도 노동자가 불법 파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