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제가 예민하다고 생각하지만 예민해야 할 사안에 대해 예민하다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지나치지 않을 뿐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불편해 하는 것 같더군요.
예를 들면 제시간에 오지 않는 직장 동료에게 시간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거나, 이어폰에서 듣는 노랫소리가 너무 커 소리를 줄여 달라고 말하거나, 기본 에티켓을 챙기지 않으면 그에 대해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어떤 동료가 그것을 보더니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몰라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말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하면서 제가 프로 불편러 같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 예시들 외에도 불편한 사항들이 많기는 합니다.
그냥 지나치는 게 맞는다고도 생각하지만 제 기준에서 용납할 수 없으면 저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말하는 게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기본이니까요. 다들 알음알음 넘어가는데 또 분위기도 좋으니까 ‘이게 맞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정아(가명) 님, 안녕하세요.
타인에게서 들은 표현이라고 하지만 편지의 첫 줄에서부터 본인을 ‘프로 불편러’라고 표현해 한편으로 뭔가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편지에 담겨 있는 말들을 통해 볼 때 동료들이 ‘프로 불편러’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정아 님 스스로는 이 표현이 싫거나 이로 인해 심하게 괴로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거나 좋은 인상만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보거나 이 지면을 통해 보는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비쳐지기 위해 애쓰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괴로워한 것에 반해 정아 님은 분명 좀 다른 태도를 갖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하나 특별했던 점은 정아 님의 편지의 마지막 부분, 상담자에게 묻고 싶은 질문 난이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자로서 한편으로는 정아 님의 욕구의 방향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정아 님의 마음을 반영해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또한 정아 님도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자신이 바라는 바와 욕구가 무엇인지 한 번 천천히 되새겨 보기 바랍니다.
정아 님은 ‘주어진 일을 제시간에 마친다’, ‘업무의 기본적 규칙이나 프로토콜을 지킨다’, ‘시민 사회에서는 예의와 에티켓을 지켜야 한다’, ‘공적인 일은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등 사회 규율을 신봉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기본’이라는 단어에서 강하게 전해집니다.
이와 함께 정아 님의 솔직한 표현은 갈등이나 차이를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방법입니다. 실제로 장점이 많고 조직 내의 의사소통과 문화 자체가 ‘솔직함’을 허락하고 자신을 그대로 보여줘도 괜찮은 규범이 잡혀 있을 때 통용될 수 있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직장은 서열 문화, 집단주의·인간관계의 가깝고 먼 정도에 따라 협업과 소통이 이뤄지는 관계주의 또한 강해 동료의 행동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거나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그냥 참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즉, 안타깝지만 정아 님의 직접적인 기본 강조와 프로 불편러의 방식은 아쉽게도 현실의 직장에서 수용되기 어려울 때가 많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원칙이나 기본은 의외로 굉장히 이상적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소통과 조율을 통해 좀 더 현실에 가깝게 만들어볼 수는 있습니다. 사건들에 적용해 해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 협업하는 동료가 업무 프로토콜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 : 프로토콜을 지키지 않으면 결과물의 품질과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드백하고자 하는 정아 님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동료는 프로토콜의 중요성을 잘 모를 수도 있고 이를 준수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힘들겠지만 그 동료에게 프로토콜 준수의 중요성, 정아 님의 목표, 줄 수 있는 도움을 설명하면서 맞춰 간다면 협업에 진전이 있을 겁니다.
2) 동료의 이어폰에서 새나오는 소리가 클 때 : 여럿이 모여 일하다 보면 퍼스널 스페이스가 침해되는데, 이를 용인할 수 있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정아 님은 소음에 대한 감각이 민감하고 기준도 엄격한 편으로, 상대가 이어폰을 사용했지만 방해가 된 상황입니다. 그 동료에게 나는 업무 시 집중이 훼손되지 않으면 좋겠고 그런 큰소리는 이어폰을 통해 나와도 힘들다고 이야기하며 조율하면 좋겠습니다. 이때 정아 님이 수용할 수 있는 소리의 한도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는 것이 동료와의 공존에 도움이 될 겁니다.
3) 동료가 지각할 때 : 정아 님의 불편한 사항 중에서 가장 규율적인 사안인 것 같습니다. 다만 권한과 책임 아래 이뤄져야 합니다. 지각한 동료에 대한 지휘권이 정아 님에게 명확히 부여돼 있지 않다면 그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규칙 외에도 협업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거나 업무적 목표 달성에 영향을 받는다면 정아 님의 개인적인(personal) 이유로 동료에게 시간 엄수에 대한 부탁이나 요청을 할 수는 있어요. 이때는 대화하는 태도와 어조가 중요하므로 미리 준비하거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구해 연습한 후 당사자와 대화해 보기를 권합니다.
갈등 상황을 살펴보면서 제가 정말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정아 님이 다른 사람들과의 가치관 차이를 나타내거나 갈등 행동을 가지면서 ‘얻고 있는’ 또는 진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였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정아 님뿐만 아니라 다른 내담자들도 ‘이게 맞는건가…’라는 자기 의심적 질문을 자주 던집니다. 여기에 정아 님의 ‘기본’은 아마도 맞기 위해, 옳기 위해 애쓰는 행동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일이 잘 되는 것(The project is going well)과 일 잘하는 자신(I am good at my work) 사이는 의외로 멉니다. ‘이게 맞는 건가’라는 질문은 보통 일이 잘돼 가는, 즉 사람 사이의 관계와 업무적 목표 등에서 정렬이 이뤄져 협업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경우를 뜻합니다.
하지만 정아 님이 강조하는 ‘기본’은 그것을 잘 지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정아 님의 질문과 답은 실제로는 같은 선상에 놓여 있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함께 일을 잘하는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을 하고 있다고하 할까요. 그것이 잘못됐다는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이중적이고 양가적인 태도는 매우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만 이런 태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이렇게 이중적인 것을 동시에 바라고 있구나’ 하는 자각(self-awareness)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내가 진짜로 바라는 것’들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기본을 잘 지키는 자신이 가장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아쉬움일 수도 있고 ‘내가 조금 민감하거나 날카롭게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나를 호의적으로 대해 주기’를 바라는 애정 욕구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욕구가 어떤 것이든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구가 여러 가지라면 우선순위를 둬 하나씩 만족시켜 가기를 권합니다. 왜냐하면 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다 보면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리는 것처럼 모순적인 행동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변의 신뢰를 받기 어려워집니다.
상담 신청지에서 비어 있던 정아 님의 ‘상담자에게 묻고 싶은 질문’ 난에 먼저 하나의 질문을 채워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이 질문이 적절한가, 옳은가를 판단하지 말고 자기 마음이 원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 그래서 도움 받고 싶은 것들을 적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내가 정말 직장 생활에서- 삶에서-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질문들을 찾아가면 어떨까요. 정답을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정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할 때가 많으니까요. 오늘이 아니더라도 정아 님 마음 속의 질문 난을 채워 가는 날이 오길 바라겠습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하단 링크로 직접 사연을 작성하거나,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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