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 모두 부동산으로 인한 대출 부실화 뇌관으로 꼽혀
한국 부동산 PF 대출 잔액 130조원…증권사 연체율 두 자릿수
팬데믹 이전보다 공실률 높아진 미국 상업용 부동산
“현재 미국 경제에서 상업용 부동산이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앙리 몽쇼 시즈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지난 3월 미국 CNBC 인터뷰 중)
한국과 미국 모두 부동산 관련 금융이 경제의 ‘약한 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약한 고리’ 이론은 쇠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 하나가 전체 쇠사슬의 강도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경제에서 가장 부실한 요소가 전체 경제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이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한국에는 부동산 PF에 대해, 미국에는 상업용 부동산에 대해 경고했다.
주인공은 다르지만 위험이 작용하는 과정은 비슷하다. 과도한 대출과 이로 인한 부동산 버블,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 후 돌아온 상환 부메랑이 문제다.
경제 상황이 좋으면 금리 인상에도 부동산 개발 사업이 수익을 내며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작년부터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미분양 주택이 늘고 있고 미국은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지면 돈을 빌려준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자본 시장의 윤활유인 ‘돈줄’이 마르면 기업이 돈을 빌리는 채권 시장 경색으로 이어진다. 고금리 속 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고 이는 다시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의 ‘약한 고리’는 경제에 어떤 나비 효과를 가지고 올까. '제 2 코엑스' 4조원대 PF 난기류 만났다 최근 4조원 규모에 달하는 서울 가양동 CJ 공장 부지 개발 사업이 좌초 위기에 봉착했다. 가양동 CJ 공장 부지 개발사업은 서울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인근 11만2587㎡ 부지에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연면적 1.7배 크기의 업무·상업·지식산업센터 등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다. 총사업비만 4조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이다.
이 사업의 PF 브리지론 1조3550억원 중 4300억원의 만기가 올해 상반기에 도래하는데 지자체인 강서구청이 갑자기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강서구청은 지난해 9월 내줬던 건축 협정 인가를 올해 2월 돌연 취소했다. 시행사와 기부채납에 대한 의견 조율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CJ 가양동 부지 개발 사업에는 6개 증권사가 11개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총 1조3550억원의 브리지론을 조달한 상태다. 인허가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면 일부 대주단이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인창개발이 갚아야 할 이자만 한 달에 70억원에 달한다.
시행사와 대주단뿐만 아니라 보증을 선 건설사의 재무 부담이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현대건설은 토지 매입 등에 투입된 브리지론(1조3550억원)에 연대 보증과 자금 보충을 확약했다.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현대건설이 대신 빚을 갚겠다는 약속이다.
업계에서는 ‘지자체 리스크’로 PF 시장뿐만 아니라 채권 시장 전체에 불똥이 튀었던 레고랜드 사태처럼 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IMF도 경고한 한국 부동산 PFPF 대출 자금은 쉽게 말해 부동산 개발을 하려는 주체가 빌린 돈이다. 이때 담보는 필요 없다. 미래 수익성이 PF 대출의 담보다. 그 대신 돈을 빌릴 때 금리가 높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는 돈을 빌려주는 쪽도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로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은 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이 맞물린 데다 물가 상승으로 건설비까지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추가로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거나 갑자기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 PF에는 건설사·증권사·캐피털사·저축은행 등 다양한 기관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금융회사는 단순히 돈을 빌려 주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PF에 대출을 해 주기도 하지만 복잡한 PF 금융 상품에 투자하기도 한다. 수수료 이익을 위해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하면서 증권사가 직접 보증을 서기도 한다. 또 둔촌주공이나 CJ가양동 부지처럼 시행사(부동산 개발 주체)가 공사를 맡긴 대형 건설사가 PF 대출에 대한 보증을 서는 경우도 있다.
결국 지금처럼 사업장에 미분양이 발생하거나 수익이 나지 않으면 시행사가 돈을 갚지 못한다. 이는 고스란히 돈을 빌려준 회사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말 익스포저(대출·보증 등 위험 노출액)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지난해 말 익스포저 규모는 여신 전문 금융사 432.6, 저축은행 249.8, 보험사 204.8, 증권사 167이다. 5년 전보다 위험에 노출된 돈의 규모가 각각 4.33배, 2.5배. 2.05배, 1.67배 불었다는 뜻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1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112조6000억원)보다 17조3000억원(15.4%) 늘었다. 특히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10.38%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금감원은 다만 금융권 PF 연체율이 저축은행 파산 사태가 영향을 준 2012년(13.62%)과 비교하면 매우 낮고 증권사 연체 대출 규모 역시 자기 자본 대비 0.7%에 해당하는 낮은 수준이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오는 6월 ‘브리지론’ 만기가 대거 돌아오면서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브리지론과 본 PF의 만기는 올 상반기 몰려 있다. 브리지론은 올 3월 말 37%, 6월 말 27% 만기가 도래해 약 64%의 브리지론 만기가 상반기에 집중돼 있다. PF는 1분기에 21%, 2분기에 17%로 상반기에 약 38%의 사업장이 만기가 도래한다. 더욱이 올해까지 여전히 브리지론에서 본 PF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면서 브리지론의 만기 연장 비중이 당분간 높아질 것이란 예상이다. 브리지론의 높은 금리를 견뎌야 하는 사업장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금융사들도 PF 부실을 막기 위해 나섰다. 부동산PF를 보유하고 있는 3400여개 금융사들은 지난 달 27일 부실 혹은 부실 우려 PF 사업장 정상화를 위한 'PF 대주단 협약'을 맺었다. PF 대주단은 협약에 따라 공동관리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고 정상화 방안을 수립한다. 만기 연장, 상환 유예, 원금감면 등 채권 재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 등을 의결할 수 있다.미국은 전주들의 ‘디폴트’ 선언 이어져 미국에서는 대형 오피스 빌딩을 담보로 잡은 자산 운용사들의 ‘디폴트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57층짜리 건물 ‘777사우스피게로아’에는 대형 금융사와 로펌이 들어서 있다. 건물도 웅장하다. 벽은 장미색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고 로비는 높고 화려하다.
이 건물의 주인은 전 세계에서 8000억 달러(약 1070조원)를 굴리는 브룩필드 자산운용이다. 그런데 지난 2월 브룩필드가 이 건물과 인근 건물을 담보로 빌린 대출금 7억8400만 달러(약 1조원)에 대해 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브룩필드는 최근에도 워싱턴 D.C. 사무실 12곳을 담보로 대출 상환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대출액은 1억6140만 달러(약 2158억원) 정도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업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핌코의 ‘컬럼비아부동산신탁’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오피스 건물 7개를 담보로 잡고 빌린 17억 달러(약 2조2000억원)의 대출을 제때 상환하지 못했다. 2021년 12월 3% 수준이던 대출 금리가 6%로 뛴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회사 측은 “돈을 빌려준 기관들과 대출 구조 조정 협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뉴욕과 LA 같은 대도시에 있는 멀쩡한 대형 오피스 빌딩들이 잇달아 대출금을 갚지 못한 것이다. 한 가지 이유는 금리 인상이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변동금리 대출이 더 많다. 미국 사무실 공실률, 31년 만에 최고 수준이 와중에 사무실 공실률이 크게 높아졌다. 도심 사무실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건물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글로벌 신용 평가 기관 무디스가 집계한 올해 1분기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19.0%다. 1992년 이후 31년 만의 최고 수준이고 코로나19 사태가 정점이던 때(18.5%)보다 도시가 한산해졌다.
지난해부터 대규모 정리 해고에 나선 빅 테크 기업들이 사무실을 줄이고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사무실이 필요 없어진 게 주요 원인이었다.
공실률 증가는 건물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 사무실 자산의 가치는 지난해 3월보다 25%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리는 높아졌는데 담보 가치가 낮아지면서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적어졌다. 높은 금리로 만기 연장도 어렵고 담보 가치 하락으로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적어지면서 차환(조달한 자금을 갚기 위해 다시 자금을 빌리는 것)마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처럼 미국 상업용 부동산을 담보로 한 채무 불이행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중소형 은행으로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는 중소은행이 도맡아 왔다. 재정 건전성을 우려한 중소은행이 대출을 축소하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연쇄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시장 규모는 5조6000억 달러(약 7282조원)다.
이 중 2025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1조5000억 달러다. JP모간의 총 신 애널리스트는 “중소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축소는 전체 대출 규모를 줄게 해 제2·제3의 신용 경색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부동산 금융으로 인한 나비 효과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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