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플리츠 플리즈는 패션 역사에 신선한 혁명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는 ‘옷을 입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자 했고 인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그 방법은 최소한의 재단으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을 패션 철학으로 생각했다. ‘플리츠 플리즈’는 폴리에스터 원단을 사용해 섬세한 아코디언 모양의 주름을 30톤의 압력과 열처리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1970년대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MDS)를 함께 열었던 소재 감독인 마키코 미나가와와 일본 텍스타일 공장과의 오랜 협업의 결과이기도 하다. 자르고, 열을 가하고, 누르고, 태우고, 용액에 담그는 등 30년 동안이나 옷과 소재에 대한 실험을 계속했다. 이런 이세이 미야케의 행보는 아티스트로서의 한 특징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플리츠 플리즈로 아방가르드 반열 올라 ‘플리츠 플리즈’ 라인은 구김이 없이 일상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고 대부분의 의상들은 단추·지퍼·스냅 등이 없이 디자인됐고 가볍고 세탁이 편리하며 활동성이 좋은 특징이 있다. 또한 가벼우면서 구김이 없어 여행할 때 돌돌 말아 가방에 구겨 넣고 다녀도 불편함이 없고(사진①) 패셔너블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몸판에 절개가 있거나 소매가 조이거나 허리선이 잘룩하게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코디언 주름으로 입는 사람의 체형과 스타일을 잘 만들어 줄 수 있는 것 또한 플리츠 플리즈의 장점 중 하나였다. 이세이 미야케는 최소한의 디테일과 직선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크고 느슨한 의복을 도입했다. 이러한 디자인은 이세이 미야케를 ‘아방가르드(avant-garde : 전위적인 예술)’ 패션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 놓았다. 요지 야마모토, 콤 데 가르송, 레이 가와쿠보 같은 동시대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이 파리에 진출해 세계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오르는 것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아방가르드 디자인을 추구한 것과 함께 일본 텍스타일 산업과 긴밀히 협업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작업 방식을 보여줬다.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인 반열에 잘 오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텍스타일 산업과의 협업 문제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본다. 일본은 수 세기 동안 풍부한 텍스타일 전통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고 놀랍도록 다양한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와 마키코 미나가와의 플리츠 플리즈 컬렉션은 일본 폴리에스터 실험에 큰 획을 그은 것은 틀림없다. 플리츠 플리즈는 첫 판매 이후 4년간 68만 벌이 팔리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1994년 만들어진 플리츠 플리즈 의상은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을 만큼 패션 예술사에서 큰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세이 미야케는 자신이 옷을 100% 모두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늘 강조했다. “나는 옷을 절반만 만든다. 나머지 사람들(소비자)이 옷을 입고 움직여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1976년 이세이 미야케는 마이니치 디자인상을 받았다. 일본에서 패션 디자이너가 이 상을 수상한 것은 그가 최초다. 이는 그가 예술가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에 화답하듯 이세이 미야케는 종종 컬렉션이 아닌 전시나 공연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선보여 왔다. 1976년 시부야 파르코 세이브 극장에서 ‘미야케와 12인의 흑인 여성’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했고 1980년 모리스 베자르 발레 ‘카스타 디바’의 무대 의상 디자인에 참여했다. 1983년에는 ‘보디 웍스(Body Works)’를 발표해 나무·철사·플라스틱 등의 소재와 신체의 관계를 묘사했다. 이는 훗날 예술과 패션 사이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페트병 재활용해 뽑은 실로 원단 만들어 1988년에는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에서 ‘메이킹 싱(Making Thing)’이라는 주제로 퍼포먼스를 보여 줬다. 또 2010년 안도 다다오와 함께 일본 롯폰기가에 만든 21-21 디자인 사이트 전시장에서 132.5 컬렉션을 발표했다. 이는 ‘재생과 재활용’을 주제로 한 컬렉션이었다. 이세이 미야케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뽑아낸 실로 원단을 만들었고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옷을 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필요한 원단의 면적을 정확히 계산해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는 이세이 미야케가 물리학자 마쓰이 다카후미가 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책을 읽은 뒤 기획한 것으로, 낭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재료로 옷을 만드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몇 년 전 서울 강남 거리를 걷다 보면 3초에 한 번씩은 꼭 본다는, 강남 아줌마들의 백으로 통하는 이세이 미야케의 바오 바오(bao bao)백(사진②)은 2000년 출시된 이후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가볍고 실용적이며 삼각형 모양의 작은 조각들이 평평한 표면에 물건을 넣으면 자유롭게 새로운 모양을 만들면서 입체적으로 바뀌는 특징이 있는 바오 바오 백은 플리츠 콘셉트에서 발전한 것이다. 플리츠 플리즈 옷이 입는 사람의 체형에 따라 각각 다른 스타일을 연출하듯이 바오바오 백 역시 가방 안에 어떤 물건을 넣는가에 따라 자유로운 형태를 연출한다.
이세이 미야케는 2022년 8월 5일 간암으로 84세 나이로 영원한 작별 인사를 했다. “소재가 될 수 있는 것, 의복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의 경계는 없다. 어떤 것도 의복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미야케의 작업에는 어떠한 제약도 없었다.
참고 자료=‘최고의 명품, 최고의 디자이너(명수진, 삼양미디어)’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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